십자가와 그림자 제9편 이스라엘의 지파들 제 50 장 상실된 지파들
 이스라엘의 상실된 지파들에 대하여 많은 것들이 언급되고 기록되었으며, 그들에 대한 다수의 환상적인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주장들 중의 어떤 것을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실된 지파들 자체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366.1)
 우리는 앞의 장(章)들에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그리고 므낫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한 부분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이름은 불멸의 이름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토록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에브라임과 단의 이름은 망각 속에 묻히고 만다.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상실된 지파들이다. (366.2)
 어찌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권력을 잡았던 당당한 에브라임 지파와, 약속된 땅에 들어갈 때 유다 다음으로 용사가 많았던 단 지파가 이스라엘이 지파들로서 모이는 마지막 대회집에서 빠지게 되었는가? (366.3)
 우리가 볼 수 있는 기록에 의하면, 에브라임은 우상숭배자였던 애굽 공주의 아들이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출 1:8)이 일어나기까지 에브라임이 그의 오만한 측근 연고자들과 더불어 고센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많은 교제를 가졌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애굽인들과 함께 보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므낫세도 같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부조 야곱의 축복 가운데 첫째 자리를 에브라임이 차지했다는 사실은 에브라임의 마음을 교만으로 채우고 그의 생애를 다른 형태로 꼴 지어 나갔을 것이다. 에브라임이 야곱의 축복을 받았을 때는 약 21세였다. 요셉이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볼 때까지 생존하였으므로, 그는 에브라임에게 오랫동안 아버지로서의 경건한 모본을 보였을 것이다(창 50:23). 맞도록 갗 닻 낯도록 에브라임의 개인적인 생애에 대해서는 오직 한 가지만이 언뜻 나타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에브라임의 아들들이 원정을 나가, 가드 사람들에게 속한 짐승을 약탈하였으며, 가드인들은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대상 7:21~22). (366.4)
 에브라임이 잃어버린 아들들로 인하여 슬퍼하는 동안, 그에게 다른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집이 재앙을 받았으므로”(대상 7:23~24) 그 이름을 “브리아”“재앙”이라 하였다. 신기한 것은 브리아에게서 그의 자손들 가운데 가장 출중한 자, 곧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나온 것이다(대상 7:27). “눈의 아들 호세아”는 12명의 정탐꾼들 가운데 하나로 뽑혔으니(민 13:8, 4~16), 그의 믿음이 시험을 받은 다음,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도움”이라는 뜻의 “여호수아”로 바뀌었다. 개명(改名)하는 일은 고대에 흔히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름이 그 소유자의 개성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약속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이 되었고, “빼앗는 자”라는 뜻의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던 밤이 지난 후 “하나님의 왕자” 또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의미의 “이스라엘”이 되었다(창 17:5; 32:28). (367.1)
 브리아의 또 다른 훌륭한 자손은 그의 딸 세라였는데, 그는 두 도성을 건축하였다(대상 7:24). (368.1)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도 에브라임 지파였다(삼상 1:1). 한나가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맡긴 곳은 실로에서였다(삼상 2:24~28). 사무엘은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무엘만큼 길고도 유용한 생애를 보내면서 많은 직분을 수행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했으나 제사장은 아니었다(삼상 7:9). 그는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고(삼상 7:15), 또한 그는 위대한 교육자로서 선지자 학교들을 설립하였다. 어린아이에 불과할 때 그는 예언의 영을 받았으며(삼상 3:1~21), 성경의 한 부분을 그가 기록했을 것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368.2)
 한 지파로서의 에브라임은 많은 유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유익을 얻지는 못했다. 그들은 열심도 많고 시기심도 많았으며, 사소한 일에 늘 민감하였다(삿 8:1; 삼하 19:41~43). (368.3)
 솔로몬의 사후에 왕국이 분열되자 그때로부터 에브라임의 역사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가 되었다. (368.4)
 그들의 첫 번째 임금 여로보암은 에브라임인이었다. 왕국을 찢어내어 열 지파를 에브라임에게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으며(왕상 11:29~31), 만일 그가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했더라면 에브라임에 대한 전혀 다른 역사가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의 지파의 역사를 망친 것은 시기와 의심의 정신이었는데, 이러한 정신이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우도록 영향을 끼쳤고, 이리하여 우상숭배 제도를 세우게 되었다(왕상 12:26~33). 여호와께서는 경고의 기별을 보내셨고, 심지어 그 왕의 일신(一身)에 이적을 베풀기도 하셨다(왕상 13:1~6).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였다(왕상 13:33). (368.5)
 거만하고도 시기심이 많던 에브라임 족속이 성공의 정점(頂點)으로부터-그들의 지도자가 전 국가의 지도자였고, 예배의 중심지인 실로는 그들의 경계 안에 있었다-끊임없이 내리막길을 걸음으로써 마침내 갑작스럽게 포로가 되고 완전한 망각 속으로 빠져듦으로써 그들의 종말을 고하게 된 것보다 더 애통한 일은 없다. (369.1)
 여호와께서는 에브라임 족속에게 가장 애처로운 기별을 주셨다. 호세아서의 전체 증언 가운데 대부분이 에브라임이 회개하기를 탄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호 11:3~5). (369.2)
 호세아는 에브라임의 멸망 원인을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호 7:8)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은 전적으로 별개의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에브라임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물에 대한 철저한 경험을 갖지 못하였다. 아무도 세상의 부와 명성을 추구하는 데 힘을 소비하며 세상 사람들 가운데 섞여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일원이 될 수는 없다. (369.3)
 여호와께서는 에브라임에게 호소하셨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 11:8).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호 8:12). (370.1)
 우상숭배는 에브라임의 큰 죄악이었다.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물들을 식별하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호소를 거절한 후에 임한 말씀은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호 4:17),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니”(호 9:17)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370.2)
 오늘날 세상에는 에브라임이 걸었던 것과 같은 길을 걷는 우상숭배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금속이나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들을 섬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의 인기 있는 신들은 그러한 형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상은 돈, 부, 쾌락, 높은 지위, 등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고 계시지만 그들은 에브라임처럼 그들의 우상과 합하였다. 그들은 고대 에브라임처럼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지만, 그들에게는 극장과 유흥가가 기도의 집보다 더 매력적이고, 세속적인 사교가 성도와의 친교보다 더 즐겁게 여겨진다. 그들은 언젠가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왕들보다 더 크신 왕에 의해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왕들 중에 가장 위대하신 왕께서 일어나사 무섭게 땅을 진동시키실 것이다.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우상과 금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장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사 2:20~21). (370.3)
 단은 야곱의 다섯째 아들이며, 그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의 강한 지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에는 64,400명의 용사들이 단의 깃발 아래 모여 전열을 가다듬었다(민 26:42~43). 어떤 연고가 있었는지 큰 지파인 단에게 분깃의 가장 작은 몫 중의 하나가 주어졌고, 때맞춰 그들은 북으로 진격하여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다(수 19:40~47).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들을 만들어, 하나는 에브라임 영토 내의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 도성에 두었는데, 이리하여 단 자손도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여로보암 이전, 사사시대에도 단 자손은 새긴 우상을 섬겼음을 볼 수 있다(삿 18:30). (371.1)
 광야에 회막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의 오홀리압에게 지혜를 주셔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였으며(출 31:3~6), 같은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출 35:34). 이 재주를 계속 소유하고 있던 단 자손은 부요한 도성 두로에 매력을 느껴 그 거민들과 혼인하게 되었다(왕상 7:13~14). (371.2)
 여러 해가 지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두로 왕 히람은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금과 은과 놋 일을 공교히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선조들에게 주신 재능을 그때까지 소유하고 있던 단의 자손 한 사람을 보냈다(대하 2:13~14). (371.3)
 단 지파는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자기 위치를 여전히 지키고 있었으나(대상 27:22), 그 후로는 지파를 가리키는 이름으로서는 사라졌고, 북쪽에 위치하여 그 이름으로 불리는 도성을 가리킬 때를 제외하고는 그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3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