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1. 연대 신학
 연대(連帶) 신학(federal theology)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요한네스 코케이우스(1603-1669년)에게서 비롯되었는데, 아담이 인류의 자연적인 머리였을 뿐 아니라 인류의 연대적인 대표자였다고 주장했다. 아담의 죄는 곧바로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었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1647년)이 이런 입장을 지지했다. (319.3)
 연대 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에 의해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자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언약 속에는 모든 인류가 포함되었다. 하나님은 순종의 조건으로 아담에게 영생을 주기로 동의하셨고, 따라서 모든 인류에게도 그렇게 하신 것이다. 불순종에 대한 형벌은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에게 임한 부패와 죽음이었다. 모든 사람이 부패한 채로 태어난 것은 그들이 아담의 죄와 죄책에 연대적으로 결속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연대적 결속이 죄로 기우는 타고난 성향의 뿌리이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된 행위로써 확증하는 연대적인 관계이다. (319.4)
 2. 간접 전가
 간접 전가는 17세기 프랑스의 조수아 플라케우스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플라케우스는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부패한 본성을 이어받았으며, 아담의 본성이 아니라우리의 그런본성이 인류에 대한정죄의 근거가 된다고 가르쳤다. 샤랑통 회의(1644년)는 그런 입장을 배격했다. 플라케우스는 원죄가 사실상 유전적인 부패 그 이상의 것이지만 원죄의 전가는 간접적인 것이어서 육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부패한 상태로 태어난 인간 존재가 지은 사실적인 죄를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대응했다. 따라서 그는 간접적인 전가와 직접적인 전가를 구분하고 전가가 직접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부정했다. (319.5)
 3. 존 웨슬리
 감리교의 창설자인 존 웨슬리(1703-1791년)는 하나님이 인간 존재에게 선행적 은혜, 곧 하나님 앞에서의 영혼의 부패한 본성으로 그가 정의한 원죄에 대한 해독제인 신성의 불꽃을 주셨다고 주장했다. 인간 존재는 이런 자기 결정의 능력으로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복음이 전달될 때 인간존재는 그 구원의 소식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거나 그것을 거절할수 있는 입장에 있다. (319.6)
 웨슬리는 죄를 처리하는 데 칭의와 성화가 필수적인 것이라고 가르쳤다 칭의는 우리가 의롭다는 그리스도의 사법적 선언이고 성화는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과 자유롭게 협력하도록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된 구원을 받아들인 후에 인간 존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웨슬리에게 그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었다. 완전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기질과 말과 행동을 다스리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그는 보았다.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피할 수 없는 육체적 불완전으로 인해 부활 시에 최종적이고 완전한 변화가 있을 때까지는 육체의 무죄한 완전에 도달할수 없다. (319.7)
 웨슬리는 본질적인 죄와 비본질적인 죄를 구분했다. 본질적인 죄는 알려지고 의도적인 것이고, 반면 비본질적인 죄는 말과 행동에서 있어서 실수나 무지나 연약성으로 이뤄진다. (320.1)
 4. 새 학파 신학
 새 학파 신학(New School Theology)은 죄와 예정에 대한 전통적인 칼뱅주의 교리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어졌는데, 19세기 초 뉴잉글랜드의 신학자 나타니엘 테일러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학파는 연대 신학을 부인하고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전가되는 것을 부정했다. 이 학파는 중생하지 않은 인간이 성령이 첫 번째 단계를 취하도록 기다리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희생에 반응할수 있다고주장했다. 찰스 피니나 리먼 비처 같은 부흥운동 지도자들이 19세기 중반에 이런 견해를 대중화했다. (320.2)
 5. 실재론 학파
 이 사상 학파는 본질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속한다. 이 학파는 19세기 중반에 융성하였다. 이 학파의 주창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윌리엄 G. T. 셰드는 하나님이 아담의 후손 각각에게 죄책과부패와 사망의 형벌을 전가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인류가 생식적으로, 아직 분배되지 않는 형태로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개인화될 수 없는 연합체이며, 따라서 그것의 전체가 아담 안에 존재하였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아담 뿐 아니라, 그런 개인화될 수 없는 연합체로 인해 세상에 나온 각인 역시 죄를 지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담과 함께 죄를 지은 협력자이기에 우리 첫 부모가 그들의 후손보다 더 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기에 우리의 죄가 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죄가 본래 우리의 죄였기에 그것이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다. (320.3)
 실재론 학파에 따르면, 죄는 자기 추구와 더불어 시작했고 교만이 모든 죄의 어머니였다. 부패는 물려 받은 것이며 죄책과 동의어이다. 죄의 결과는 적개심, 증오, 고집 같은 악이다. (320.4)
 G. 20세기
 18세기부터 합리주의는 죄와 형벌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했다. 루소(1712-1778년)같은 이들은 사람이 속을 수는 있지만 부패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창세기의 문자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죄를 보편적인 하나님 의식에 대한 저항(쉴라이어마허, 1768-1834년)으로 그리고 이기심과 무지의 산물(리췰, 1882-1889년)로 보았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죄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역설하는 신정통주의, 사회복음, 해방신학이 일어났다. (320.5)
 1. 신정통주의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전통적 신학이 지지해 온 타락과 죄의 국면들을 도외시했다 카를 바르트(1886-1966년)는 종교개혁과 성경에 대한 그의 의존을 선포하면서 죄를 “무(無)”, “하나님의 적극적인 의지에 반하는 것과 거룩한 언약을 어기는 것”으로 정의했다. 각 사람은 에덴의 이야기를 재연하면서 패역과 부패를 깨닫는다. 인간 존재의 어떤 국면도 죄에 영향을 받지 않은 데가 없다. 인간 존재 안에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거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하나님을 수용할 자리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가 믿음을 찾을 수 있으려면 성령이 접촉점을 만들어야한다. (320.6)
 에밀 부룬너(1889-1966년)는 원죄론이 성경적 사상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람이 각기 개인적으로 죄를 짓고 각자 안에는 복음을 이해하고 그것에 반응할수 있는능력이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전도를 위한 접촉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3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