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초기교회
 속사도 시대의 교회는 죄에 대한 공식적인 교리를 곧바로 체계화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경우에, 성경의 간명한 진술에 위배되는 사상이나 주장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대응으로 교리적인 체계가 발전되었다. 예컨대, 영지주의자들이 죄를 필요악으로 제시하고 그 기원이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는 어떤 원인에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런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교회가 분기하여 죄는 필요악이 아니라 우리의 첫 부모가 자유의지를 행사함으로써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 것이다. 초기교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만으로 족했다. 즉 모든 인간이 죄인이고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점에서 죄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로부터의 구속이 가능케 되었다. (315.1)
 이레나이우스(115년경-202년)는 “하나님의 형상(image)”“하나님의 모양(likeness)” 구분했다. 그는 전자를, 아담이 타락 후에도 유지했던 이성적인 정신 곧 자유의지라는 선물로 정의했다. 그에게 후자는 타락 후에는 상실했으나 성육신을 통해 나타난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된 성령의 생명이었다. 하나님이 죄된 인간 존재들에게 내려오심으로 그들이 하나님께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셨다. 오리게네스(185-254년경)는 선재성에 관한 플라톤의 이론을 따라 인간의 영혼이 선재하는 삶에서 죄를 지었고, 따라서 모든자가 죄된 상태로 세상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갇혀 있으므로, 복음을 받아들일때 하나님께 돌아가는 순례 곧 구원과 회복의 과정을 시작한다. (315.2)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영지주의와 논쟁을 벌일때 죄 문제를 다르게 접근했다. 동방교회는 인간을 더 낙관적으로 보고, 타락의 결과로 자유의지도 상실되지 않았고 타락으로 후세대에게 죄책을 물려주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죄의 결과로 순결이 상실되어 죄를 하나의 박탈로 볼 수 있지만 그 박탈이 악으로 기우는 성향을 의미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좀 더 비관적인 견해를 견지했다. 즉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죄를 짓고 악의 성향을 물려받았다. (315.3)
 B.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죄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제안했을 때 두 개의 상이한 이해를 대표한 것이다. 이들이 그리스도교 사상에 끼친 영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16.1)
 1. 펠라기우스
 펠라기우스(350년경-425년)는 영국의 수도사로, 그의 생애의 후반부 동안 로마에서 가르쳤다. 진정으로 인간이라면 책임성 있게 선택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그의 신학이 출발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락 이전의 아담의 상태, 곧 무죄하며 물려받은 타락한 성향이 없는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따라서 인간 존재는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그랬던 것만큼 완전하게 하나님께 순종할수 있다. 그러나 물론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 펠라기우스는 이런 사실을 인정했으나, 전가나 유전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모방하는 나쁜 본보기의 힘이라는 것으로 범죄를 설명했다. 따라서 개인은 자신이 직접 의식적으로 저지른 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 펠라기우스는 육체적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아담이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든 그는 결국 죽게 되어 있었다. 그는 물질적으로 창조되었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고 그의 후손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침례 받지 않고 죽은 유아들도 원죄에서 정결케 될 필요가 없었으므로 영생이 허락되었다. (316.2)
 펠라기우스주의는 카르타고 종교회의(418년)에서 단죄 받았다. (316.3)
 2. 아우구스티누스
 힙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죄에 대해 폭넓은 글을 썼다. 그는 인간에게 완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반박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인간의 노력으론 완전을 이룰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께 죄되고 그분을 거스르는 존재이며 자신의 도덕적 상태를 바꿀 능력도, 바꾸고 싶은 욕망도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316.4)
 아우구스티누스는 타락 전에 아담은 제한된 자유, 즉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이미 결정된 선택 사항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아담이 죄지을 힘을 행사하기로 선택했을때 그는 죄를 짓지 않을 능력을 상실했다. 그는 더 이상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그는 오로지 악을 행하는 것만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악을 행할 때마다 완전히 부패하여 악만을 갈망하게 된 그의 의지를 행사함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316.5)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가 단순히 아담만의 죄가 아니라 전 인류의 죄였다고 가르쳤다. 모든 인간이 “생식(生殖)적으로” 아담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랬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전 인류가 그 안에서, 그와 함께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죄악 중에 잉태한다(시 51:5). 인류를 퍼뜨리는 수단은 원죄를 퍼뜨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타락한 인간 존재가 경험하는 성적인 욕망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죄된 것이다. (316.6)
 인간이 정욕에 빠지는 것은 피할수 없는데, 도덕적인 순결을 선택할 자유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 존재는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써만 구원받을 수 있다. 개인의 중생은 오직 성령의 초자연적인 사역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죄인은 이런 사역에 협력할 수조차 없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자비와 예지로 주어진 순전히 그분의 선물이다. (316.7)
 C.중세
 중세에도 죄의 본질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었다. 특별히 중요한 점은 죄를 치명적인 죄와 경미한 죄로 구분한 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명백하게 의지의 동의로 하나님께로부터 고의적으로 돌아선 것을 말한다. 그것은 거룩하게 하는 은혜의 상실을 야기하므로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두 번째 것은 영혼에게서 거룩하게 하는 은혜를 완전히 박탈하진 않았다. 금식, 매질, 순례 그리고 기타 금욕 같은 고행이 그런 사람의 잘못을 속죄하고 죄로 이끄는 정욕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고행은 시간을 많이 빼앗아 일상의 활동을 방해했기 때문에 “대체 지불”(종종 돈으로도 지불함)이 그것을 대신했는데, 그중 가장 노골적인 형태가 사람들이 아직 저지르지도 않는 죄에 대한 형벌의 대가를 미리 지불하도록 허락해 준 “면죄부”의 전신이었다. (316.8)
 1. 안셀무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1033-1109년)는 원죄를 각인이 마땅히 지녀야 할 “선(善)의 부재”로 정의했다. 13세기의 스콜라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을 따라, 추가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타락 시에 인간은 영적인 본성의 전적인 부패를 겪지 않고 다만 거룩, 불멸, 지혜, 통치 같은 몇몇 선물만을 상실했다. 이들은 죄는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범죄이며, 따라서 무한한 만족(배상)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317.1)
 2.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1224년경-1274년)는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을 구분했다. 그는 형상을 이렇게 정의했다. 형상은 주로 개인의 지성으로 구성되는데, 그 속에는 합리성이라는 덕성, 덕을 행할 능력, 하나님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한 적합성 등이 내재돼 있다. 타락 시에 아담은 이 형상을 상실하지 않았다. “모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으로 이뤄진 “은혜라는 초자연적인 선물”을 나타낸다. 이것은 타락 시에 상실 되었고, 따라서 침례를통해 회복된다. (3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