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원하는 것은, 사람은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요 살기 위해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498.1)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놓여 있는 환자의 머리맡에 모여서 애타는 심정으로 주치의에게 애걸하는 가족들, 무서운 병마와 싸우는 환자의 모습은 일단 생명이 떠나면 다시 만나지 못할 영원한 이별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498.2)
그래도 행여나 살아나실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안았던 그들의 가슴에 죽음의 그림자가 던져 지고 마지막 긴 한숨을 내쉬는 것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비통함은 이 세상의 아무것에도 비할 데가 없다. 싸늘하게 식어 가는 시체에 매달려 “아버지!”“엄마!” 하고 울부짖는 철부지 어린 것들, 아내는 땅을 치며 통곡한다. “우리들은 어떻게 하라고 혼자만 가시는거요! ”(498.3)
“여보, 나 혼자 남겨 두고 먼저 가면 이 어린 것들 데리고 어떻게 하라는가” 하고 목메여 울던 그때가 어제 같은데. 어언 40년이 지났다. 믿어지지 않던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길거리에서 뒷모양이 비슷만 해도 뒤따라가 보다가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서길 몇 번이나 하였던고. (498.4)
이러한 안타까운 심정은 실지로 자신이 맛보지 않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가던 가정도 한 번 죽음이 망치질을 하면 산산조각이 나고, 아름다운 모든 꿈들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만다. (498.5)
인간 가족에게 죽음이 없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랑하는 가족에게 조만간에 또는 불의의 사고로 죽음이 습격해 오는것이 이 세상이 아닌가 싶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서 어떠한 일로 졸지에 생명을 잃게 될는지 전혀 알 수가 었다. 그것은 우리가 갖가지 사고가 많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적은 사고 또는 대형 사고로 순식간에 떼죽음을 당한다. 아무런 예고 없이. (499.1)
’85년 8월 12일, 일본 동경에서 대판으로 가던 비행기가 추락해서 5백 20명이 참사하는 가운데 4명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실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새롭다. (499.2)
원자탄이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에 낙하되어 10여만 명이 일시에 사라지고 수십만 명이 부상당한 것이 전세계에 보도될 무렵, 미국의 한 국민학교 학생에게 “너는 장차 커서 무엇이 되려느냐?”고 질문했더니 대답하기를 “나는 다만 살고 싶어요”라고 했다한다. 어린 마음이지만 생명의 존엄성과 귀중함을 간파한 솔직한 대답이다· (499.3)
사람들은 건강하게 사는 동안에는 죽음이란 문제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병들어 죽게 되어야 비로소 심각하게 생각한다. (499.4)
사람은 자타를 막론하고 조만간에 한 번은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란 풀잎에 반짝이다 사라지는 이슬처럼 덧없는 것이다. 그래서,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 한다. (499.5)
아무리 분주하게 정신 없이 핑핑 돌아가는 생활 속이라 하더라도, 죽고 사는 생사의 문제에 부딪히면 누구나가 다 할것 없이 숙연해지고 자못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죽음으로 인생의 모든 계획과 찬란한 희망도 종지부를 찍어야 하고 자신이 가졌다고 자부했던 수만금의 재산, 명예와 욕망이 일시에 손에서 떠나가고 말기 때문이다. (499.6)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디모데전서 6:7). (500.1)
그러나, 인생은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 영원히 누리지도 못할 것을 위해서 왜 그렇게도 허겁지겁 안달하며 정신 없이 쫓아다니는 것인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한복음 6:27)고 부탁하셨다. (500.2)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 나 자신은 죽음에 대 하여 한 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는가? “ 그런 기분 잡치는 말하지 마라. 죽는 때는 죽는 것이요 살아 있을 때는 재미나게 사는거지, 뭘 그런것 가지고 걱정해” 하고 일축해 버릴는지도 모른다. (500.3)
잠 안 오는 밤, 이리 뒤척저리 뒤척하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문득 ‘내가 만일 죽는다면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렇게도 사랑스런 아내, 귀여운 애기들, 그들은 어떻게? 자신도 모르는 새에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500.4)
혹시나 해서 옆에 누운 아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린 것들이 차낸 이불을 덮어 주는 순간, 무엇인가 가슴속이 뭉클함을 느낀다. 아냐, 나는 힘차게 살아야 해!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이와같이 다짐하면서 다시 잠을 재촉했다. (500.5)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지난 밤의 그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왜, 어디 편치 않으셔요? 무슨 걱정 거리라도 생겼어요?” 아내의 물음에 일부러 태연한 태도를 가지려 했으나, 머리한 쪽을 얻어맞은 양 잊을래야 잊을 수 가 없다. 밥상을 대할 때도, 길을 가면서도,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마치 그림자와도같이 따라다니는 그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500.6)
그러나, 이 생각이야말로 진실된 마음에서, 참으로 가정을 사랑하는 순진한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의문들이다. (501.1)
그는 죽음이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전에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물어 보았다. 친구들은 이구 동성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지 뭘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라고들 했다. 시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남편의 동정을 살피던 아내가 다그쳐서 묻는 바람에 사실을 털어놓았다. 처음에, 아내는 남편을 위로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걱정하셔요 당신도 이렇게 건강하고 애들도 다 튼튼하쟎아요.”(501.2)
그러나, 그 날밤, 아내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렇지, 지금은 건강하나 만일 사랑하는 남편이 죽는다면 우리들은 어찌 되나?’ 이 생각을 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두 뺨을 흘러내려서 모르는 새에 베개가 흥건히 젖었다. 밥상을 차리면서도, 빨래를 할 때도, 장을 보러 갈때도, 그 생각은 언제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항상 쫓아 다니곤 했다. (5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