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행위나 하나의 원리일 뿐 아니라 속박하는 세력이다. 그것은 분리일 뿐 아니라 속박이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고 말씀하셨다. 마치 열매의 성격이 나무의 성질에 달려있는 것처럼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마음으로 결정된다(마 12:33-35). 죄의 행위들은 우리의 감정과 사고와 의지 그리고 행동하려는 힘을 사로잡고 있는 내적인 질병의 외적이고 가시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우리를 노예처럼 속박하는 것은 이런 내적인 부패 곧 죄로 기우는 내적인 성향이다. (306.1)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죄의 힘과 장악력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다. 그는 죄를 다스리는(“왕 노릇하는”) 세력으로 말한다(롬 5:21). “다스리다”라는 말은 “왕”을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 바실류스에서 나왔다. 죄는 왕이고 인간은 그의 비참한 종이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죄의 종이라고 말한다(롬 6:6, 7). 죄는 주인으로서 권력과 소유권을 행사하여 우리의 죽을 몸을 다스림으로 우리의 정욕에 굴복하게 한다(롬 6:12). 죄의 속박하는 힘은 이처럼 치명적이고 압도적이며 또한 죄는 삯을 갚는 데 너무도 충실하므로(“죄의 삯은 사망”), 바울은 죄인의 유일한 탈출구가 “하나님의 은사”“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롬 6:23)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탄원한다(23절). (306.2)
 바울은 인간의 삶에서 죄의 속박하는 면에 가장 큰 강조점을 둔다. 바울 당시에 널리 알려졌던 노예 이미지는 그가 죄의 권세를 의인화할 때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죄인으로 죄의 속박과 권세 아래 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죄를 하나의 세력 즉 통치자로 여긴다. 죄는 우리에게 통제권이 있어서 우리가 어떤 때는 죄를 짓고 다른 때는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사도는 죄를 주인으로 간주하며, 따라서 우리는 죄의 노예들이다. 죄는 세력이고 우리는 그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우리가 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속박 상태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는가? 우리 스스로는할수 없다. 예수님이 해답이다. “인자가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참조 막 10:45). (306.3)
 뤼트론(“대속물”)은 노예를 되사기 위해 지불하는 속전을 가리킨다. 어원적인 개념은 분명하다 죄의 속박하는 세력이 인류를 너무도 강하게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의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여기서는 속전이 누구에게 지불되었는지 언급되지 않지만, 예수님은 죄의 속박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그리고 속량을 위한 비용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보여 주신다. 바울은 구속(속량)에 대한 그의 설명에서 동일한 사상을 전달한다(롬 3:24-31; 고전 1:30; 엡 1:7, 14; 골 1:14). 바울의 부담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죄에 대한 속전이 지불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의의 나라가죄의 옛왕국을 대치했음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예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는다(롬 6:6).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지배가 끝나고(12절), 죄의 속박하는 권세는 깨어진다. 과거에 죄의 노예였던자들이 이젠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고 죄가 그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13, 14절). (306.4)
 I. 죄책과 호염으로서의 죄
 죄가 개인적인 행위 곧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볼 때 거기에는 징벌을 받아야 할 죄책이 포함된다. 그러나 죄가 인간 본성 안에 자리 잡고있는 어떤 원리라고 보면, 거기에는 오염이 포함된다. 성경은 죄인에게 죄책이 있고 그에 마땅한 징벌을 받아야 하는 개인적인 행위에 대해 말하며(마 6:12; 롬 3:9; 엡 2:3), 인간 본성을 부패시킨 오염에 대해서도 말한다(욥 14:4; 시 51:2, 7; 사 1:5; 엡 4:20-22). 이 오염은 마음을 부패시키고 “만물보다 거짓되”게 하고(렘 17:9) 이해력을 어둡게 한다(엡 4:18). 또한 그것은 마음의 생각을 악하고 허망하게 하며(창 6:5; 롬 1:12) “더러운 말”(엡 4:29)을 내고 마음과 양심을 더럽히고(딛 1:15) 사람을 “허물과 죄로 죽”게 한다(엡 2:1). 바로 이것이 자연적인 인간의 상태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건전한 생각이나 애정, 고상한 말이나 지성적인 이해력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겐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과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306.5)
 성경은 죄책과 모염으로서의 죄의 개념에 덧붙여 불결과 부정의 개념을 말한다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죄와 더러움”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슥 13:1). 구약의 성소 봉사 전체는 이스라엘에게 생긴 집단적 및 개인적 죄와불결과 부정을 처리해야 했다. 신약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고 말한다(롬 1:24). 다시 사도는 성적인 죄를 “부정과 불법”으로 말하면서, 새로 침례 받은 신자들에게 이런 부정과 불법에서 돌아서서 “의와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고한다(롬 6:19). 데살로니가전서 4:7, 8“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이를 무시하고 부정한 행위에 빠지는 자는 누구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경고한다(살전 4:7-8). 개인과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죄의 심각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죄와 불법과 부정 같은 용어들은,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킬 뿐 아니라 화목과 구속을 이루는 과정에서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 1:7; 참조 성소 I. C. 2). (307.1)
 J. 의무 태만으로서의 죄
 죄에 대한 성경의 묘사에는 작위(범죄 행위)와 부작위(태만)가 다 포함된다. 앞의 죄는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데, 아담과 하와가 고의로 하나님의 표현된 명령에 불순종하고 그분의 뜻을 거역하였다. 대부분의 죄는 그런 성격의 죄이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적대하는 행위를 함으로 관계가 단절된 상태이다. 후자의 죄는 의무 불이행의 죄로 창세기 4장에 예시돼 있다. 그 장에는 주로 작위의 죄 곧 아벨을 살해한 죄가 포함돼 있지만, 의무 태만의 죄도 나타난다. 가인이 자신의 아우를 지키는 자가 아니라고 한 점(4:9)은 역사 이래로 보편적인 의무 태만의 죄로드러난다. (307.2)
 인간은 서로 친교를 맺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범죄 행위와 의무 태만으로 말미암아 그런 친교가 깨어진 곳에는 깨어진 정도만큼 죄가 지배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훼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아니냐”(미 6:8). 예수님도 마태복음 25장에서 동료 인간에 대한 도덕적 및 영적 의무와 관련된 유사한 관심을 나타내시면서, 그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신다. 야고보도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고 쓰고있다. (307.3)
 K. 요약
 성경에 계시하는 바에 비추어 볼 때, 죄는 하나님이 인간 존재들로 당신 자신과 맺도록 하신 관계에서 벗어난 것으로 정의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창조와 타락의 기사에서부터 죄는 “불법”(요일 3:4)이라는 간단한 정의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자료 전체는 죄를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의 특정한 상태와 행위로 규정한다. 이런 기본적인 개념으로부터 몇 가지 구체적인 정의가 드러난다. (307.4)
 1. 죄는 하나님에 대한 항거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하셨지만 그들이 전적으로 자율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계획되지 않았다. 인간은 그들의 창조주에 대한 의존 및 그분과의 친교의 관계 안에서, 그분이 세운 규범에 종속된 존재로 창조되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이런 계시된 뜻을 거역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래서 죄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자신의 뜻을 첫째요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다(신 9:7; 사 1:2; 롬 8:7). (308.1)
 2. 죄는 깨진 관계이다. 상태일 뿐 아니라 행위로서의 죄는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켜, 하나님이 그분의 피조물과 더불어 누리기를 원하시는 근본적인 관계의 파열을 야기한다. 이런 관계에는 인간 공동체 내에 있어야 할 친교 및 자아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포함된다. 죄는 모든 국면 곧 수직적, 수평적 및 내면적 국면 등에서 관계의 파열을 말한다(창 4:8-10; 사 53:6; 59:2; 렘 17:9; 롬 7:5-10). (308.2)
 3. 죄는 인간 전존재에 스며들어 있는 상태이다. 그것은 인간의 맘속에 자리 잡고 인간 존재의 인식과 감정 그리고 육체적 및 영적인 국면을 통제한다. 창조주가 인간 존재에게 부여한 놀라운 재능들은 죄의 지배력 아래 있으며, 그 죄가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왕이다. 이것이 바로 죄된 행위를 낳는다(마 15:19; 7:15-20; 8:2, 6). (308.3)
 4. 죄는 구체적인 악한 행위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표준을 빗나간 행위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율법을 어김으로 인간의 의지가 자행한 구체적인 행위가 포함된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 기원과 동기가 마음을 다스리는 왕인 죄에 있으며 그것이 외적으로 표현된다(레 5:5, 16; 시 51:4; 갈 5:19-21). (308.4)
 5. 죄는 하나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그 지위는 하나님의 이상 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도덕적,영적 및 관계적 표적을 빗나갔다(사 1:2; 롬 3:23; 고전11:7). (308.5)
 6. 죄는 불법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전혀 모호하지 않는 표현으로 그리고 전 인류에게 도덕법의 본질적인 부분인 십계명 곧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으로 구체화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을 말한다(눅 10:27; 롬 5:13; 살후 2:7, 8; 요일 3:4). (308.6)
 7. 죄는 이기심이며 교만이다. 죄는 루시퍼와 우리의 첫 부모의 경우에 모두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자기추구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기 위해 피조성과 의존성을 부인하려는 자기주장이 곧 죄이다. 자기중심성은 하나님에 대한 적대심이며, 교만과 자만심으로 표현된다(잠 11:2; 16:18; 눅 17:33; 롬 1:21-23; 3:27; 8:7; 갈 2:20; 빌 2:3; 딤전 3:6; 약 4:6). (308.7)
 8. 죄는 속박하는 세력이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 죄의 속박과 세력은 죄인을 무력하게 만들고 의에서 멀어지게 하므로 그가 그리스도, 곧 죄의 속박하는 권세를 깨뜨리고 그 세력 아래있는 자들에게 구속을 제공하시는 분에게 오기 전에는 스스로 죄의 지배력과 소유권에서 해방될 수 없다(마 20:28; 막 10:45; 롬 3:24-31; 6:6, 7; 고전 1:30; 엡 1:7, 14). (3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