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6 장 바벨론의 멸망(단 5장)
 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강포(强暴)와 혹독(酷毒)은 적절한 징계를 위하여 그분의 백성을 바벨론에 맡기신 하나님의 본 뜻을 거스리는 바가 되었다(사 47:6, 렘 50:11, 17, 18). (98.117)
 ⑥ 그분의 백성을 포로로 보내심으로써 바벨론을 구원하시려 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계획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거절한 결과로 종말을 맞게 되었다(렘 51:9). 하나님께서는 2장의 신상을 통하여, 3장의 풀무불 사건을 통하여, 4장의 느브갓네살의 경험을 통하여 세 차례나 참 하나님과 참 신앙에 대한 충분한 기별을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함으로써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렘 51:24, 단 5:22, 23). (98.118)
 이상의 몇 가지 현상이 고대의 대제국 바벨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졸지에 파멸에 이르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세상은 어떠한가. 그 때의 바벨론과 비교해 볼 때 조금이라도 나은 데가 있는가. 바벨론의 박사들과 모사(謀士)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지녔던 태도보다 조금도 나은 데가 없는 불신적이고 오만불손(傲慢不遜)한 현대의 석학들과 지성인들, 당시의 거짓된 종교 지도자들처럼 사람의 영혼을 오도(誤導)하는 퇴폐적이고 우상 숭배적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경시하고 안식일을 유린하는 오늘날의 종교계, 음란(淫亂)과 패륜(悖倫)과 부절제가 난무하는 사회상등 모든 것이 현대 바벨론의 파멸을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98.119)
 나. 바벨론 멸망의 구속사적 의의
 ① 하나님께서는 불순종과 우상 숭배로 인하여 그분의 백성은 70년간 포로될 것과 예루살렘이 황폐하여질 것에 대하여 훨씬 이전에 예고하셨다(렘 25:11, 대하 36:21). 이일은 느브갓네살에 의해 기원전 605년부터 시작되어 그로부터 70년 후인 536년 쯤에는 마치게 되어 있었다. (98.120)
 ② 그러나 70년 기간이 끝나 포로의 마감 연대가 가까와도 바벨론은 유대인들을 석방시킬 의향도 없었고, 아무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공공연한 적대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98.121)
 ③ 기원전 551년에 해당하는 벨사살 3년에,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의 일정표가 되는 2300주야에 관한 계시를, 다니엘을 통해 공개하시고, 이 기간의 시작이 예루살렘의 중건과 포로 석방에 직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셨으나 바벨론은 백성을 포로에서 풀어 줄 의향이 전혀 없었고, 아무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오히려 하나님을 적대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98.122)
 ④ 551년에 해당하는 벨사살 3년에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경륜의 대 일정표가 되는 2300주야에 관한 계시를 다니엘을 통해 공개하셨는데, 이 기간의 시작이 예루살렘의 중건과 포로 석방에 직결되어 있음이 분명해졌다(단 8:1, 14). 즉 유다의 포로들이 속히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성소 봉사를 회복함으로써 이러한 상징과 예표(豫表)의 실상(實像)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실 수가 있으셨다(학 2:6, 7). (98.123)
 ⑤ 구속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을 저지(沮止)하기 위해 사단은 바벨론을 장악하여 유다의 포로들을 석방시키지 못하도록 안간 힘을 썼다. (98.124)
 ⑥ 그러나 하나님의 명예와 인류의 구원이 걸린 구속의 경륜은 아무 세력이나 국가에 의해서도 방해받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계획이기 때문에 이에 도전하는 국가나 세력은 하나님과 맞서야 했다. (98.125)
 ⑦ 하나님께서는 70년의 포로 기간이 2년 남짓한 기원전 539년, 끝까지 버팀으로써 죄악과 불순종의 잔을 채운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협력할 새로운 세력인 페르샤의 고레스를 권좌에 앉히셨다(사 41:2-4, 25, 45:1-7). (98.126)
 ⑧ 이와 같이 바벨론의 멸망은 구속의 경륜의 진전을 위해 필수적이었으며 여기에 진정한 역사철학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단 4:25). 이리하여 잠시 과도적(過渡的)으로 메대의 다리오가 바벨론을 대신했다가(단 6장), 곧 이어 페르샤의 국부(國父) 고레스가 즉위하여 그의 통치 원년 즉 기원전 537년에 석방령을 내리고 다음 해인 536년부터 포로되었던 백성들이 돌아감으로써 70년 포로기간은 정확히 끝나고 구속의 경륜은 계획대로 진전(進展)될 수 있었다(다리오의 신원에 대해서는 6장에서, 2300주야 기간에 관한 의의와 배경은 8장에서 상세히 다루고자 한다.) (98.127)
 다. 인생과 역사의 무상(無常)
 가) 인생의 무상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밤은 그토록 불경건하고 교만했던 왕 벨사살의 마지막 밤이 되었으며, 동시에 고대 세계의 우상 숭배의 종주국(宗主國)으로 영원한 대제국을 구가(謳歌)하던 바벨론의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벨사살을 비롯하여 아무도 그 마지막 밤이 그렇게 갑자기 그리고 속히 이르러 올 줄을 도무지 예기하지 못했다. (98.128)
 하나님께서 마지막을 선언하신 개인과 나라를 파멸에서 지켜 줄 아무 높은 성벽도, 군사력도 있을 수가 없다. 「벨(Bel :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이여, 왕을 보호하소서(Bel, protect the prince)」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벨사살도 그의 신으로부터 자신의 파멸을 보장받지 못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불신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비웃으려 해도 그것은 벨사살이 그렇게 하다가 속절없이 「그 날 밤」을 당한 것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다. (98.129)
 세상의 모든 나라와 모든 개인에게는 틀림없이 마지막 밤이 있다.그 밤이 언제일는지 모르는 것 뿐이다. 하나님과 영원한 사물을 무시하고 자신과 현실만을 위해 살다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눅 12:20)하신 선고를 듣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자신의 마지막 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평안히, 그리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생애를 산 사람임에 틀림없다. 반면에 자신의 구주를 배반한 채 성만찬의 빵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일러라」(요 13:30)고 기록된 유다의 마지막 밤을 맞는 사람은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유 13). (98.130)
 「순교자 마르퀴스(Marquis)는 자신의 사형 통지를 받고나서, 한 잠 깊이 자고 깨어난 후에 순교를 당하였다. 영국의 순교자 리들레이(Ridley)는 그가 순교하기 전 날 밤에 동생이 찾아와서 위로하며, 그 날 밤만이라도 함께 지내자고 할 때에 이를 거절하면서,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고 했다. 보헤미아의 토기장이 한 사람은 화형장에 나가 순교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결혼할 때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가진다’고 하였다.」 박윤선, 시편강해, 71. 나의 마지막 밤을, 세상의 마지막 밤을 나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98.131)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to number our days)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0-12). (98.132)
 「그 날 밤에 갈대아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한 것 외에도 대제국 바벨론도 영원히 함께 죽었다. 성경과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 볼 때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일어났었는가. 고대의 히타이트 제국, 이집트 왕조, 앗시리아 제국, 신바빌로니아, 페르샤, 메대 제국들, 그리이스와 로마 제국들이 역사의 무대 위에 나타났다가 신속히 역사의 지평선(地平線)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등이 일어나 세계 역사의 주름을 잡으며 역사의 지평선에 신속히 등장했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는 이 모든 나라들도 이전의 나라들처럼 다시 하나님이 금그어 놓으신 역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주권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시 62:11), 하나님만이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단 14:17). 하나님께 속한 주권을 잠시 차지한 인간들이 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만과 불경에 빠져 버리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98.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