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6 장 바벨론의 멸망(단 5장)
 벽에 쓴 글자를 가리키며 다니엘은 이제 방금 후면 종말을 고하게 될 대제국 바벨론과 벨사살을 위한 최후의 설교를 시작했다. 주변의 혼란과 소요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의 기별은 흐트러진 데가 없이 정연(整然)하고 명백했다. 그는 먼저 선왕 느브갓네살의 자서전적인 일생을 회고하며 그의 번영과 발전(progress)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못박았다(5:18). 다음에 그는 느브갓네살이 누린 엄청난 권세(power)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때에만 유효했음을 상기시켰다(5:19). (98.84)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모든 사실을 망각한 느브갓네살이 자만(pride)에 빠짐으로써 왕의 자리에 합당치 않게 되었음을 알렸다(5:20). 교만해진 왕은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님을 최고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했으므로 적절한 징계(punishment)를 받아야만 했음을 지적했다(5:20). 여기까지 이야기함으로써 서론을 끝낸 다니엘은 이제 단도직입적(單刀直入的)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98.85)
 나) 단도직입적인 본론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 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금, 은, 동,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단 5:22-23). (98.86)
 느브갓네살의 일대기를 회고한 다니엘은 벨사살을 그와 견주며 변명할 여지가 없는 논리로 죄상을 밝히고 있다. 느브갓네살은 그토록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심을 품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책망을 받을 때는 즉시 이에 합당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런데 벨사살은 그만큼 위대하지도 못하고, 교만해야 할 아무 조건도 없으면서, 그토록 방자(放恣)히 처신했음은 묵과(黙過)할 수가 없는 터였다. 무엇보다도 큰 죄는 벨사살 자신이 「이 것을 다 알고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공공연히 모독하고 거역했다는 사실이었다. 벨사살은 느브갓네살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그의 후계자로서 그가 마땅히 따라야 할 교훈이 무엇임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죄가 죄지만 죄책에 따른 심판과 형벌은 그가 아는 것에 비례하는 것이다. (98.8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98.88)
 느브갓네살은 모르고 교만했지만 벨사살은 알고도 교만했으므로, 그의 죄는 더욱 무거운 것이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롬 1:21), 모든 증거와 징조가 분명한데도 자신들의 주장과 거짓 이론을 내세워 진리를 「부러 잊으려」하는 사람들(벧후 3:5)의 책임은 어떠한가. 다음 번으로 다니엘이 지적한 벨사살의 죄상(罪狀)은 그의 종교였다. 이 문제야말로 벨사살은 물론 바벨론의 뿌리가 되고 있는 근본 문제였다. 자신의 호흡과 생명을 주장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멸시하고 벙어리요, 소경이요, 귀머거리인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일이야말로 인간 도리의 배반이요, 개인과 국가의 불행이요, 수치요, 파멸인 것이다(행 17:24-29). 신 4:28, 시 115:5-7, 135:16, 17, 사 44:9, 계 9:20. 게다가 느브갓네살에 거듭거듭 주어진 교훈인 단 2:20, 21; 4:17, 25, 35.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권을 무시하고 이를 훼방한 죄는 정죄받아야 했다. (98.89)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신」(행 17:30, 31) 바, 이 날이 벨사살에게는 개인적으로 이른 것이다.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한」것이다(5:24). (98.90)
 다) 본문의 내용
 「기록한 글자는 이 것이니, 곧 메네(MENE), 메네(MENE), 데겔(TEKEL), 우바르신(UPHARSIN)이라.」(단 5:25, 26) מְנֵא מְנֵא תְּקֵל וּפַרְסִֽין (98.91)
 네 낱말로 이루어진 본문이다. 그러나 처음 낱말인 「메네」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실상은 세 마디의 본문이다. 메네(MENE)는 “세다”(to number) 혹은 “계산하다”(to count)는 뜻의 아람어 동사의 수동분사 형태인데 뜻은 “헤아려지다”(numbered) 혹은 “계산되다”(counted)는 뜻이다. 이 말은 수학적인 정확함을 나타내는 말로 하나님께서는 개인과 국가를 심판하심에 있어서 부주의하고 부정확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인 정확함을 가지시고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는 것이다(2:21, 4:17). 레 15:13, 28, 23:16, 시 90:12. 이 말이 반복된 것은 강조를 위한 것으로, 바벨론에게 할당한 시간이 끝장났음을 힘주어 선언한 것이다(The number was up!). 곧 다니엘의 설명대로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 것을 끝나게 하셨다」함이다. (98.92)
 데겔(TEKEL)은 무게를 “달다”(to weigh)는 뜻의 아람어 동사에서 나온 수동분사로 “달리다”, 혹은 “저울질되다”(weighed)는 뜻이다. 모음은 명사형(teqel)의 모음이나, 구조는 수동분사(teqil)의 모음을 쳤어야 한다. 다니엘서 주석, 137. Wood, 149. 이 말은 고대의 상거래(商去來) 수단으로 공정한 저울추를 가진 저울을 써서 무게를 정확히 계량(計量)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판단은 공정(公正)하시다.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정확히 달아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삼상 2:3). 이러한 사실은 「내가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하나님이 나의 정직함을 아시게 되기를 원하노라」(욥 31:6)고 고백했던 욥의 경험에서도 나타난다. (98.93)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개인과 나라의 행실을 달아보시는 심판의 저울을 가지고 계시다. 이 하늘 성소의 저울은 공평(公平)할 뿐더러 정확하여서 아무도 속일 수가 없다. 개인과 나라에게 부여된 모든 축복과 편의와 특전에 따라 어떻게 이에 상응하는 처신을 했는가의 여부가 저울의 평형(平衡)을 좌우할 것이다. 바로 이 저울(天秤)에 벨사살이 달려 중량(重量) 미달이 되었으며, 벨사살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다. (98.94)
 다니엘은 이 말을 벨사살에게 확대하여 풀이하면서,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5:27)라고 적용했다. 참으로 영원한 운명이 선고되는 순간 하늘 법정으로부터 부족하다는 선언을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받기 위하여(전 12: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롬 14:10). 나는 그 심판의 저울에 달리울 때 동기까지 보시는 하나님에 위하여 부족하다는 두려운 선고를 받지 않겠는가. (98.95)
 「나는 한 천사가 손에 저울을 가지고 서서 하나님의 백성 특히 젊은이들의 생각과 관심을 달아보는 것을 보았다. 저울(天秤)의 한 쪽에는 하늘을 향한 생각과 관심이 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세상에 대한 생각과 관심이 놓여 있었다. 이 쪽 저울에는 소설을 읽는 것과 의복과 외모와 허영과 교만들에 관한 생각이 실려 있었다. 저울을 가진 하나님의 천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즉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각을 달아보는, 아! 이 순간은 얼마나 엄숙한가! 세상에 대한 생각과 허영과 교만으로 채워진 저울판은 그 저울판에서 무게가 자꾸 흔들려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밑으로 쑥 기울어졌다. 하늘로 향한 생각과 관심이 실린 저울판은 반대편 저울판이 내려감에 따라 위로 쑥 올라갔다. 아! 이 것은 얼마나 가벼운지! 나는 이 사실을 내가 본대로 진술할 수는 있지만, 저울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각과 관심을 달아보는 천사를 보는 때, 내 마음에 받은 그 엄숙하고 생생한 인상은 결코 표현할 수가 없다. 천사는 말하기를 ‘이러한 사람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아니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소망은 헛된 소망이니 그들이 속히 회개하고 구원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라’ 하였다.」 (1T, 124, 125) (98.96)
 우바르신(UPHARSIN)은 “와” 혹은 “과”(and)를 뜻하는 “웨”(we), 여기서는 “우”(U)로 표현된 접속사와, “부분”(share) 혹은 “조각”(portion)을 뜻하는 “베레스”(peres)의 복수형인 “바르신”(PHARSIN)이 합쳐진 말이다. 그러므로 “우바르신”의 뜻은 “그리고, 조각들”(and pieces)이 되는 셈이다. 이상은 이 말을 명사형으로 본 경우이고, 앞의 단어처럼 동사형으로 보아 “쪼개지다”, “나누어지다”를 뜻하는 동사 “페라스”(Peras)의 수동분사로 볼 때는 “쪼개어진”, “나누어진”을 뜻하게 된다. Wood, 150. 특별히 복수일 경우에는 페르샤 사람들”(Persians)이 된다. (98.97)
 다니엘은 이 말을 주석하면서,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라고 했다(5:28). (98.98)
 이리하여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네 마디의 선고는 벨사살과 그의 나라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을 만큼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가치가 떨어져 하나님께서 이를 끝내시고 그 대신 성 밖에 대기 중인 메대와 페르샤에게 나라를 넘기시겠다는 최후의 통고였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그 잔을 채우기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을 허락하지 않으셨다(창 15:15, 16). 그러나 이제 바벨론은 벨사살의 술 잔치와 함께 죄악의 잔을 채워 마침내 지체되어 온 심판을 집행하셨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술을 마시는 것도 억지로 제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들로 죄악의 잔이 찼을 때 심판으로 응징하셨다. 오늘날 이 세상의 개인들과 국가들이 그들의 죄악의 잔을 급속히 채우고 있음은 두려운 일이다. (98.99)
 이리하여 시작할 때는, 그토록 경망(輕妄)스럽고 희희낙락(喜喜樂樂)하던 술 잔치는 이제 수라장이 된 채, 절망과 비탄(悲嘆)의 아우성 속에서 황급히 끝나 버린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한 모든 개인과 국가의 종말인 것이다. (98.100)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모든 나라와 모든 개인에 대하여 당신이 가지신 큰 계획 가운데서 각각 일정한 자리를 지정해 주셨다. 오늘날 국가도, 개인도 틀림이 없으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저울추에 의하여 계량(計量)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고 계신 것이다」(교육, 232). (98.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