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6 장 바벨론의 멸망(단 5장)
 그 날밤 벨사살은 하나님의 손가락만을 보고서는 그토록 두려워했다. 왕과 참석자들이 아직 한마디 진상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손가락 앞에서 왜 이토록 두려워했는가? 엘리야는 간절한 기도 후에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왕상 18:14), 용기백배했는데 왜 벨사살은 그 손가락의 나타남을 승리의 표적으로 해석하지 못했을까? 양심은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죄 짓고 있는 사람은 미지(未知) 의 모든 것을 두려워한다(The man in sin is afraid of anything unknown). 오랫 동안 수배(手配)를 받고 숨어 살다가 마침내 자수한 어느 범법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 여러 해 동안 나는 문두드리는 소리와 보도 위를 걸어 오는 발자국 소리에 공포를 느껴 압도된 채 살아 왔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죄책감(罪責感)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Criswell, 87, 88. (98.69)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는 예수님의 소문만을 듣고도 무서워했다. 동생의 아내를 취한 자신을 정죄한 침례 요한을 목베이고 난 뒤, 그의 양심은 편한 날이 없었다. 그는 예수님도 믿지 않고 부활도 믿지 않았으나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이는 침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이런 권능이 그에게서 운동」한다고(마 14:1, 2) 믿었다. 그것은 그의 양심의 벽에 쓰여진 불가해(不可解)한 글씨를 읽었기 때문이다. 죄수로 잡혀 나온 바울의 말을 들으며, 두려워하는 총독 벨릭스의 모습에서 우리는 같은 진리를 본다(행 24:24, 25). (98.70)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98.71)
 라. 벽 위에 쓴 글자
 가) 신령한 기별 — 벽에 쓴 글자
 공포에 질렸던 왕은 가까스로 입을 열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5:7)하여,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보이라고 요청했으나 그들이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게 하지 못하는지라. 그러므로 벨사살 왕이 크게 번민하여 그 낯빛이 변하였고 귀인들도 다 놀라니라」(단 5:8, 9). 무슨 글자로 어떻게 쓰였기에 당대 세계 최고의 석학들인 바벨론의 박사들까지도 이를 해독하지 못했을까? (98.72)
 그 말이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공용어였던 아람어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낱말 수가 너무 적어 그 뜻이 다 드러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낱말의 뜻은 알았어도 문장의 뜻은 분명치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술과 여흥으로 혼란해진 시야에 이 광채로 번뜩이는 글자들이 바르게 드러나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다니엘서 주석, 133. (98.73)
 분명한 사실은 오직 하나님의 사람(the man of God)만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해석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의 혀는 그의 학식이나 경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별을 이해하고 전달하기에 전혀 무기력하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것이다(고전 1:21). 또한 하나님의 기별은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므로(고전 2:4, 5),「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는 것이다(고전 2:13). (98.74)
 나) 신령한 사람 — 다니엘
 수라장이 된 왕궁의 잔치 소식을 듣고 태후(太后)가 황급히 들어왔다. 태후(queen)는 왕후나 왕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를 가리킬 수 있는 광범위한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왕의 어머니나 할머니를 가리킴에 틀림 없다. 왜냐 하면 왕후들은 이미 술잔치에 예외적으로 초청되어 참석하고 있었으며(5:2), 또 왕의 앞에 함부로 나설 경우에는 목숨까지 위태로웠으나(에 4:11, 16) 태후 만은 자유롭게 나설 수가 있었다. Ibid (98.75)
 이 태후(queen-mother)는 벨사살의 할머니 즉 나보니더스의 어머니도 아니었을 것인데, 이는 그가 이 일이 있기 8년 전인 기원전 547년에 시파르(Sippar)의 위의 두르 카라슈(Dur Karashu)에서 별세하여 굉장한 궁중 장례가 베풀어졌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Wood, 140. 그러므로 이 곳의 태후는 벨사살의 어머니 즉 느브갓네살의 딸로 나보니더스의 왕후가 된 니토크리스(Nitocris)일 것이다. Ibid 그는 느부갓네살 생전에 다니엘의 신분과 명성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혼란에 빠진 왕 앞에 거침 없이 나아가 확신을 가지고 다니엘을 소개할 수 있었다. 이때 쯤 다니엘은 관직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느브갓네살의 치세와 연관지어 회상되고 있었다(5:11, 12). (98.76)
 이토록 불안한 현실과 불길한 미래에 압도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리에, 이때를 위한 기별을 가진 사람 즉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5 :11). 수라장이 된 벨사살의 술 잔치의 마지막과 같은 오늘날의 불안한 세상의 뛰어난 지식과 공교한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는 하나님의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오늘날 누가 신문 지상과 TV 화면에 나타나는 그 불안한 시대의 징조를 바르게 읽고, 바르게 해석하여 올바른 기별을 전할 수 있겠는가. (98.77)
 마침내 이 때를 위한 사람 다니엘이 불려와서 왕 앞에 인도되었다. 그때의 다니엘은 84세나 되는 고령의 노인이었으나 건강의 습관으로 다져진 건장한 몸과 풍상(風霜)을 겪으며 완숙해진 백발의 위엄은 하나님의 사람다운 지혜와 근엄으로 빛나고 있었다. (98.78)
 술취한 채 겁에 질려 낙엽처럼 나딩굴어져 있는 군중들 앞에 곧곧이 서 있는 우아한 노인 신사 다니엘을 상상해 보라. 극도의 초조와 불안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초췌한 왕 앞에 용기와 확신으로 빛나는 얼굴과 안정과 침착으로 망울지어진 눈매로 왕을 바라다보는 늠름한 다니엘을 연상해 보라. 그토록 무관심하고 싶었고 할 수만 있으면 끝까지 거역하려 했던 다니엘의 하나님을 벨사살은 지금 이 괴로운 순간에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된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기별을 끝까지 외면하고 회피할 수 만은 없는 것이다. (98.79)
 「네가. . . 그 다니엘이냐」(5:13) 는 벨사살의 말은 그가 다니엘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공적인 교제가 없었음을 뜻한 말로 오히려 「당신이 ······· 그 다니엘이구려」 개역표준성경(RSV)에는 “You are that Daniel”로 번역됨. 라고 함이 더 타당하다. 느브갓네살의 사망과 함께 그의 후계자들이 선왕(先王)에게 다짐하신 하나님의 정책을 좇지 않고 거역하자 정계에서 물러나 사인(私人)이 된 다니엘이 이제 다시 옛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98.80)
 너무나도 늠름하고 신뢰하고 싶은 선왕(先王)의 위대한 수석 보좌관이었던 다니엘을 바라보며 왕은 그가 이전의 느브갓네살을 여러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처럼 지금은 자신을 그렇게만 해 준다면, 최고의 명예와 지위를 상징하는 자주옷과 금사슬을 하사하고, 자기 다음 번의 자리인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겠다는 약속을 즉석에서 내놓았다(5:16). 그러나 다니엘의 대답은 어떠했는가. (98.81)
 「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예물은 왕이 스스로 취하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시게 하리이다」(단 5:17). (98.82)
 그러나 다니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발람처럼 재물과 명예로 고용하거나 매수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뜻을 정함으로써(1:8), 원칙에 강철만큼이나 굳세게 서서 80여 성상을 살아 온 다니엘은 모세처럼(민 16:15), 사무엘처럼(삼상 12:3), 바울처럼(행 20:33), 그리고 모든 참된 하나님의 종들처럼(딤전 3:3, 벧전 5:3), 하나님의 일을 삯꾼의 정신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오히려 엘리야처럼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왕하 5:26)고 부르짖어야 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니엘은 아첨도, 불경도 없이 하나님을 고의로 모독한 불경한 왕을 마주 대하여 아직도 벽면에 그 광채를 발하고 있는 하나님이 써 주신 본문(本文)을 가지고 주석 설교를 해야 했다. (98.83)
 마. 다니엘의 주석 설교
 가) 역사적 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