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6 장 바벨론의 멸망(단 5장)
 워터루의 (Waterloo)명장 웰링톤장군이 나폴레옹의 군대와 대전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다가 진로에 포도주 단지(團地)가 있다는 정보에 접하자 선발대를 보내 이를 완전히 훼파한 후에야 그의 군대를 통과하게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웰링톤 장군과 워터루에서의 마지막 결전을 앞둔 전 날 밤, 나폴레옹의 네이(Ney)장군은 늦게까지 포도주를 기울이다가, 다음 날 무력하게 망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프랑스 범죄자의 80퍼센트가 음주에 기인되어 범죄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Criswell, vol. 2, 37.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다.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98.51)
 「결혼 피로연 자리에서 미국의 한 신부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신랑과 그의 새 가정을 위해 포도주로 축배(祝杯)를 들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부는 이를 거절했지만 아버지가 더욱 야단스럽게 권하자, 마침내 이 어린 신부는 포도주 잔을 높이 쳐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포도주의 색깔과 거품은 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이혼한 남편과 마음이 상한 아내와 근심하는 어머니와 그늘지고 슬픔에 잠긴 우리 가정을 봅니다.’Criswell, vol. 3, 73 ,74. (98.52)
 참으로 술은 개인을 망치고 가정을 깨뜨리고 사회를 금 가게 하며 나라를 파멸케 하는 것이다. 「마셔 넘기는 술잔 속에 아내 눈물 고여 있고, 씹어 삼키는 안주 속에 자식 원한 섞여 있다」는 금주 표어가 음주하는 가장(家長)이 있는 집집마다 게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98.53)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 .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 . .이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怪異)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 23:26-35). (98.54)
 나) 우상의 제전과 신성모독
 술과 여자로 뒤범벅이 된 밤 잔치는 마구 마신 술 기운이 돌면서 의식이 몽롱해진 벨사살이 「예루살렘 전(殿)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 오」라고 명함으로써 신성 모독과 우상의 제전(祭典)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주귀(酒鬼․alcohol demon)의 지배를 받게 되면, 거짓으로 담대해지고 자제력이 약화되고 흐려지면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러한 과정이 벨사살에게서 연출되었는데 그의 부절제(intemperance)는 부적절(impropriety)한 행동을 하게 했으며 그 결과로 불경건 (impiety)한 행동을 서슴치 않아 하나님을 모독하여 우상숭배(idolatry)를 자행하게 했다. (98.55)
 벨사살의 이러한 어리석음의 극치는 예루살렘 성전의 거룩한 기명(器皿)으로 감히 술을 마시는 만행(蠻行)으로 나타났다. 일반 다른 종교의 성물(聖物)을 모독하는 것이 당대 동방의 습관이 아니었거든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의 거룩한 기명을 가장 불경한 왕이 가장 거룩지 못한 자리에서 가장 저속한 목적을 위해 손을 댄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곳의 성전 기명들은 세 차례 즉 기원전 605년 (단 1:1, 2), 597년(왕하 24:12, 13), 그리고 586년 예루살렘이 마지막 함락될 때 옮겨 온 것들이었다(왕하 25:13-17). 에스라의 기록에 의하면, 그 숫자는 5400개였다(라 1:7, 8, 11).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은 이미 예언된 바로서(렘 27:7, 51:39, 40, 57), 벨사살 당시까지 거의 70년 가까이 마르둑의 복합 신전 어느 부속 건물, 아마도 왕궁 박물관에 유다와 그들의 신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는 증거물로 전시되었던 것이었다. (98.56)
 취기가 돌면서 대담해진 왕은 그의 조부 느브갓네살은 이것들을 가져 오는데 그쳤지만 자신은 감히 이것들로 술을 마실만큼 유대인의 하나님을 경멸할 수 있으며 담력이 있음을 과시하려 한 소치였다. 그러한 증거로 그는 하나님 만을 섬기는데 쓰기 위해 만든 기명들에 술을 부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나서, 이번에는 바벨론의 주신인 마르둑을 비롯하여 나보니더스에 의해 바벨론성에 총집결된 각 지방의 잡다한 신들, 곧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불경건한 태도였으며 극도에 이른 신성모독 행위였다. 이러한 고대 바벨론의 참람된 죄악이 또 다시 현대 바벨론을 대표하는 큰 음녀(淫女)의 소행에서 다시 나타난다. (98.57)
 「. . .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고대 바벨론성이 유프라테스 강 위에 건설되었음을 상징했으며 현대 바벨론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계 17:15) 위에 군림했음을 뜻한다.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 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 . . 내가 보니. . .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보석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 17:1-4). (98.58)
 하나님 성전의 금잔으로 우상을 경배하는 자리에서 포도주를 부어 마시는 이 행위는 고의로 거룩한 것(聖)과 속된 것(俗)의 구분을 짓밟아 없애는 최악의 신성모독이다. 그것이 고대 바벨론의 최대의 죄악이요, 현대 바벨론을 파멸시킬 죄악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두 가지 점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거룩함(사 57:15, 43:15)에 관련되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인 성소(聖所)와(출 29:43),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이었다(출 20:9). 그러므로 성소봉사에 쓰여지는 모든 물건은 거룩했으며(聖物)(출 29:37, 학 2:12). 성소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과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사람(聖民)이었다(사 52:11, 고후 6:17). (98.59)
 이러한 근거 때문에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인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하여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고전 3:16, 17, 고후 6:16). 음행과 우상숭배와 음주 흡연을 비롯한 모든 부절제가 하나님의 전인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다.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에 대하여 같은 의미가 부여됨은 당연하다. 안식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인 거룩함의 개념을 짓밟는 것은 곧 바벨론의 죄악인 것이다. (98.60)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不淨)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겔 22:26). (98.61)
 그런데 이러한 현대 바벨론의 죄악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형성되는가 벨사살의 잔치와 운명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그 두 뿔 가진 짐승이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계 13:16, 17). 그런데 세째 천사의 기별에는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세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라고 하였다」(각 시대의 대쟁투, 하권 222). (98.62)
 고대 바벨론의 경우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타락한 교회가 국가 특히 미국의 힘을 빌어 고대의 모든 다신교 종교의 상징인 일요일을 드높이기 위해 안식일을 무시 하도록 법적규제를 가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상징인 안식일을 짓밟게 하는 행위에서 현대 바벨론이 벌여 놓은 금잔에 부은 음행의 포도주 잔치를 보게 된다(계 17:4, 18:3). (98.63)
 다. 하나님의 손가락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단 5:5). (98.64)
 벨사살의 극에 달한 고의적인 반역과 신성모독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셨는가. 죄악의 잔이 막 그 한계를 넘친 그 순간 곧 「그 때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난 것이다. 손가락이 나타났다는 것을 그 손가락의 주인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보통 사람의 손가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인 것이다. 일찌기 출애굽 당시에 바로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고의적으로 항거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재앙들을 보내셨는데 술사들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바로에게 고했다(출 8:19). 얼마 후 이집트에는 재앙을 내리셨던 하나님의 그 손가락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증거의 두 돌비에 새겨진 거룩한 십계명을 주셨는데, 「이는. .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난 하주)」친히 쓰신 것이었다(출 31:18). (98.65)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하나님의 손이었으며 (눅 11:20),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앞에서 스스로 의로운 체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거짓과 죗됨을 드러내시기 위해 땅 바닥에 글을 쓰신 것도 「하나님의 손가락」이었다(요 8:1-9, 렘 17:13). 이제 벨사살은 하나님의 그 손가락을 본 것이며 그 손가락만으로도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는 선언을 읽은 것이다. (98.66)
 침체된 사기를 앙양시키고 하나님을 모독하면서까지 추락된 자신의 위신을 추켜세우기 위해 벌인 값 비싼 잔치는 정반대 결과를 거두었다. 술취한 남녀들의 환락의 웃음 소리가 일시에 그치고 우상을 찬양하던 떠들썩한 고함도 멎었으며, 오직 바다 밑같은 죽음의 정적이 넓은 홀을 메웠다. 술과 환락으로 촛점을 상실했던 왕의 눈이 촛점을 맞추며 맞은 편 분벽에 글자가 쓰여지는 것을 보는 동안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혀」(5:6)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술잔이 그의 손에서 떨어졌다. 왕은 술과 환락에서 깨어났으나 너무 늦게 깨어난 것이다. (98.67)
 벨사살의 마지막 잔치가 열렸을 장소로는 느브갓네살이 세운 가공원(架公園)에 연해 있는 남궁(南宮)으로 생각된다. 이 곳에서 모든 국가 의식이 거행되었으며 중앙에는 보좌가 있는 넓은 홀이 있었는데 길이가 173피트, 폭이 57피트, 높이가 66피트나 되어, 이 곳 밖에는 1000명 이상의 손님을 치를 만한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조로 보아 긴 편으로 나 있는 중앙 출입구 맞은 편에 보좌가 놓인 벽감(niche)이 있었을 것이며, 벽은 구운 백색 석고로 발리웠다. 보좌 가까이에는 기름을 가득히 넣은 등대(燈臺)들이 휘황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을 것이며, 그 건너 편 높다란 석고 분벽에 신비한 손이 나타나 광채나는 글씨를 썼을 때 왕과 참석자들은 쉽사리 바라볼 수가 있었을 것이다. (9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