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새 연구 제 6 장 바벨론의 멸망(단 5장)
 ⑥ 오피스를 점령한 페르샤 군사는 아무 저항 없이 539년 10월 11일 유프라테스 강변의 요충 도시 시파르(Sippar)에 진입했다. Ibid., 49. (98.34)
 ⑦ 위급해진 나보니더스는 그 전 날인 10월 10일 Wood, 130. 남쪽으로 도망쳐, 보르시파(Borsippa)성에 들어가 성문을 닫았으며, Josephus, Against Apion, I. 21. 벨사살은 시파르에서 남쪽으로 35마일 아래 쪽인, 바벨론 본성으로 들어가 방어에 임했다. (98.35)
 ⑧ 이 절박한 상황에서, 벨사살은 그 견고한 네 겹의 성벽과 위기에는 주변의 지방들을 물로 잠기게 하여 침입자들이 성에 이르지 조차 못하도록 설계된 운하망으로 보호된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을 철석 같이 믿고, 오히려 자만심에 넘쳐 있었다. SDABC. vol. 3, 49. 다음은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터스와 크세노폰의 기록이다. (98.36)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의 성벽들 밖에 진을 치고서 그(고레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도시로부터 멀지 않은 장소에서 한 바탕의 싸움이 벌어졌으나 바벨론 사람들은 페르샤 왕에게 패하여 자기들의 방어시설을 철수시켰다. 그들은 바벨론 성안에 들어 박혀서 그의 포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는 그들이 고레스가 한 나라씩 한 나라씩 정복해 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가 그 정복을 결코 멈추지 않고, 마침내는 자신들의 차례가 오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 공격에 대비한 준비로 여러 해를 위한 양식을 저장해 놓았던 것이다. Herodotus, Persian Wars, Bk I, ch. 190. (98.37)
 「성벽들 안에 들어 앉은 그들은 이 봉쇄를 비웃었는데, 이는 그들이 약 20년 동안의 필수품들을 스스로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 . .고레스는 바벨론 성안에서 어떤 축제가 벌어지고 있어, 온 바벨론 사람들이 밤새껏 마시고 흥청거린다는 사실을 들었다.」 Xenophon, On the Institute of Cyrus, Bk. Vll, ch. V. (98.38)
 「오래지 아니하여 불운이 닥쳐왔다. 바벨론은 메대와 페르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메대 사람 다리오의 조카인 고레스에 의하여 포위를 당하였다. 그러나 그 견고한 성벽들과 구리문들을 가진 난공불락(難功不落)인 것처럼 보이는 성채 안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의해 보호되고 넉넉하게 식량을 비축해 둔 주색에 빠진 군주는 안전하게 느끼고, 환락과 주연으로 시간을 보냈다」(선지자와 왕, 500) (98.39)
 가) 공포를 달래는 잔치
 이 위태로운 순간에, 왜 이렇게 엄청난 술 잔치가 베풀어졌을까. 주연이 베풀어진 때는 539년 10월 13일 밤이 되는데 이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요새인 시파르(Sippar)가 함락된 10월 11일 다음 날인 것으로, 벨사살의 부와 나보니더스는 전투에서 패하여 바벨론 남쪽에 있는 보르시파(Borsippa)에 피신하고 있는 터였다. (98.40)
 참으로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나라와 자신과 아들을 위해 앞서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패하여 보르시파 성에 갇힌 채 불안에 떨고 있는 때, 파렴치하고 몰지각한 아들은 평안하고 안전한 바벨론 성안에 들어앉아 술과 여자로 뒤범벅이된 술잔치를 벌이다니! (98.41)
 혈연을 같이 한 아버지가 적군으로 둘러 싸인 성 밖에 있고 생사조차도 분명치 않은 때, 부량자요, 불효인 벨사살이 취한 이 경망한 태도야말로 오늘날 얼마나 많은 현대의 벨사살인 불량한 자식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는 정신인가.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 나가 자식들을 위해 혼신(渾身)의 힘이 진하고 몸의 피가 마르도록 수고하는 부모님들의 노고(勞苦)를 아랑곳하지 않는 자식들이야 말로 「말세에 고통하는 때」를 이 땅에 이르게 하는 바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한 목석(木石)같은 사람들인 것이다(딤후 3:1-3). (98.42)
 왜 이러한 잔치를 이런 때에 베풀었을까. 아마도 긴박한 상황 때문에 점증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진정시키고 연전연패(連戰連敗)로 인하여 떨어질대로 떨어진 사기(士氣)를 진작(振作)시키기 위한 것임에 틀림 없다. Wood, 132. 무엇보다도 제사장들을 비롯한 지도 계급이, 이미 이전부터 나보니더스-벨사살 체제에 대해 가져온 노골적인 불만과 불평을 달래야 했을 것이었다. 본성 바벨론을 버려두고, 외유(外遊) 만을 즐기며 그토록 중요한 바벨론의 신년 축제도 걸르기가 일쑤고, 주신인 마르둑을 경시하는 듯한 나보니더스의 태도는 특히 그랬다. 겨우 페르샤의 공격이 있기 직전에 돌아와 제대로 싸움도 못하고 도망친 부왕과, 바벨론이 적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기까지 변변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벨사살에 대하여, 백성과 지도 계급 특히 제사장들이 가진 불신감은 대단하였음에 틀림없다. (98.43)
 이리하여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서 불신감을 해소하고 불평과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술과 여자와 우상숭배 의식까지 곁들인 환락의 잔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메대와 페르샤의 대군에 의해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어 불안하고 동요하는 백성들에게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듯, 태연하게 잔치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려는 제스쳐일 수도 있다. Ibid. 고조되는 불안을 잊고 진정시키기 위해, 여럿이 한 대 어울려 술을 마셔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사람이 바로 벨사살이었다. (98.44)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할고 ∙∙∙ . 네 힘을 여자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그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그 고통을 기억지 아니하리라」(잠 31:2-7). (98.45)
 나. 술과 여자와 우상의 제전(祭典)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 천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명하여 그 부친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취하여 온 금 기명을 가져 오매 왕이 그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로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고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5:1-4). (98.46)
 가) 환락의 밤— 술과 여자
 1868년 마취(Daniel March) 박사가 슨 감명깊은 책「성경의 밤 장면들」 (Night Scenes in the Bible)에는 「벨사살의 밤 잔치」가 쓰여 있다. Strauss, 145. 끝가지 버티던 인간의 교만이 마침내 꺾이고, 인간의 황금 꿈이 진흙 속으로 빠져 버리는 순간이다. 고대의 대제국들이 큰 잔치를 벌이는 것은 상례였다. 고대 희랍의 역사가 테시아스(Ctesias)의 기록에 의하면 페르샤의 왕은 매일 15,000명을 그의 식탁에서 먹였고, Wood, 132, citing Athenaeus, Deipm., iv. 14. 알렉산더 대왕의 국제적인 결혼 축하연에는 10,000의 하객(賀客)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Wood, 132, citing Niess, Griech. Geshuch., I, 165f. (98.47)
 한 때 앗시리아의 수도였던 님루드(Nimrud)의 고대 궁전 폐허에서 발굴된 비명에 의하면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가 궁전 낙성식을 할 때, 열흘 간 69,574명을 먹이고 수용했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주석, 130. 성경에도 페르샤왕 아하수에로가 180일 동안 엄청난 잔치를 베풀었다는 기사가 있다(에 1:3-9). 벨사살의 잔치에 초청된 사람들은 귀인 일 천명이었다. 이곳의 귀인(貴人)은 “라브르반”(rabreban)으로 어떤 직책보다는 그들이 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 때문에 분류되는 지도급의 중요 인물(V.I.P.)인 것이다. (98.48)
 당대의 습관대로 먼저 식사가 끝나고, 술이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 특히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5:2) 라고 강조한 것은 고대 동방의 궁중잔치 관습에 따라 왕이 일반과 분리된 테이블에 앉아서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마시도록 되어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이교 국가라해도 여자들이 이런 공공연한 궁중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격식(格式)이 아니었다. Wood, 134. 게다가 왕의 부인으로 분류되는 후궁(後宮)들 외에도 처첩(妻妾)들까지 왕상 11:3의 비빈들. 불러들인 것은 예외적인 처사였기 때문에 그들의 참석이 거듭거듭 지적되고 있다(5:3, 23). 예외였던 증거로 에 1:9-11, 마 14:1-12의 경우. (98.49)
 과거의 모든 나라와 사회와 개인의 불행과 종말을 가져 온 징후(徵候)인 술과 여자가 예외 없이 바벨론의 마지막 밤을 노크한 것이다. 이미 동방을 거침없이 제패한 페르샤의 고레스도 속수무책이었던 난공불락의 바벨론 성이 바야흐로 술에 의하여 함락되고 있었다. 벨사살은 그 저녁에 마신 술에서 깨어나기 전 그의 나라와 함께 자신의 최후를 맞은 것이다. 꼭 같은 일이 216년 뒤에 같은 장소,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30세가 되기 전에 근동의 세계를 제패한 승승장구의 정복 왕 알렉산더가 그의 생애의 절정에 바로 이 바벨론 성에서 자신의 무패(無敗)의 전적(戰績)을 찬양(讚揚)하며 승리를 만끽하면서 마구 마시며 흥청거리더니 주연(酒宴)의 날들 후에 습지열(濕地熱)에 걸려 쓰러지고 만 것이다. 난공불락의 인간 알렉산더도 술에 의하여 정복되고 말았다. (9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