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2 장 구약과 재림소망
 구약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는 여호와의 날의 이중적 기능을 아래와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 4:1, 2). (37.7)
 2. 예언적 전망 가운데 나타난 소망
 예언적 전망. 어떤 사람은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이나 혹은 주변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적인 형벌의 배경 가운데서 주의 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에 있는 그날을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한다. 예컨대 이사야 13장은 메대(Medes)에 의한 갑작스런 바벨론의 파멸을 여호와의 날로 부른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사 13:6). (38.1)
 이러한 반대가 갖는 약점은 예언적 전망(Prophetic Perspective)이라고 바르게 불리웠던 것이 구약과 신약 모두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이것은 선지자들로 하여금 가까운 역사적 사건과 먼 여호와의 종말의 날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예언적 전망이 선지자들로 하여금 임박한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지막 형벌을 묘사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고 말할 수 있다. (38.2)
 이사야 13장은 우리에게 적절한 본보기를 제공한다. 여기서 선지자는 메대에 의한 바벨론의 멸망의 배경에서 여호와의 마지막 날을 기술하고 있다.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사 13:9~11). (38.3)
 당면한 것과 최종적인 것. 이 묘사는 분명히 우주적인 심판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선지자가 바벨론에 임한 역사적인 심판과 인류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 마치 하나님의 하나의 형벌, 곧 여호와의 바로 그날인 양보는 것이다. 임박한 역사적 장래와 역사의 궁극적인 완성을 병합시키는 것은 정밀한 한 연대기의 순서에 익숙해 있는 현대인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현대인의 관심이 가까운 미래를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의 일부분으로 보는 예언적 전망 속에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38.4)
 죠지 엘돈 래드(George Eldon Ladd)는 적절히 묘사하기를 “대체로 선지자들은 배후에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의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에 뜻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엄격한 연대적 차이를 두지 않고 궁극적인 미래에 의하여 가까운 장래를 내다보았으며, 이 땅에서 그리고 현재의 당신의 백성을 향한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다.”5고 했다. (38.5)
 이러한 현상은 앞서 생각해 보았던 예언적으로 이상화된 왕의 모습과 어느 정도 흡사하다. 역사적인 왕이었던 다윗이 이상적인 구주이신 왕의 출현을 내다보도록 한 것처럼 임박한 하나님의 역사적인 임재는 때때로 선지자들에 의해 여호와의 마지막 날의 전조 또는 그 한 부분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연구하게 될 신약에 있는 몇 예언의 구절에서도 나타난다. (38.6)
 주의 최종적인 강림이 신자들에 의해 그렇게 멀지 않은 역사적 사건으로 종종 제시되었던 것은 현재의 질서를 영원한 왕국으로 변형시킬 주님의 강림의 소망이 얼마나 깊이 다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강림의 소망은 똑같이 신약에서도 중심이 되는 바, 이것이 세계적 종말의 소망, 믿음, 그리고 운명과 함께 양 세대에 있는 신자들을 결합시킨다. (38.7)
 3.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소망
 궁극적인 하나님의 승리. 주님의 최종적인 강림의 소망은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주제로 구약에 나타난다. 구약에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하나님의 생각이 이스라엘의 왕과 세상의 왕으로 자주 나타난다(신 33:5; 사 43:15; 시 29:10, 47:2; 사 6:5; 렘 46:18). (39.1)
 비록 하나님이 이미 이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의 왕이지만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통치와 왕국이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설립될 그날, 곧 여호와의 날을 내다보고 있다. 예를 들어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천하에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눅 14:9; 사 24:23; 습 3:15 참조)라고 말한다. (39.2)
 다니엘서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왕국의 도래에 대한 소망이 특별히 다니엘서에 표현되어 있다. 2장에서 선지자는 세계 네 제국(2:39)을 나타내는 큰 신상의 네 부분을 해석하며, 그 후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 2:44)고 말한다. (39.3)
 유사하게 7장에서도 다니엘은 하늘의 구름과 함께 인자(人子)가 오시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건설되는 것을 보고 있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 14). (39.4)
 다니엘이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에 의해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설립될 것을 예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왕국을, 구름을 타고 오실 선재(先在)하시는 하늘의 인자와도 관련을 짓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같은 묘사가 신약에서는 거의 축어적인 말로서 나타나며(막 13:26; 마 24:30 참조),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설립하기 위한 하늘의 인자의 오심에 대한 역사적인 기대감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39.5)
 심판과 강림. 역시 다니엘서에서 인자의 오심이 “영생”으로 부활할 자와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자를 결정하기 위해 하늘 법정에서 시작된 조사 심판 뒤에 온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단 7:9~14, 21, 22, 26, 12:1, 2; 사 25:6~8, 26:19 참조). 하나님의 심판과 재림시의 부활과의 관계가 신약에 나타난다(딤후 4:1, 2; 고후 5:10; 살후 1:5~10). 이러한 사건들은 뒤에서 연구하게 될 것이다. (39.6)
 현재로서는 이 세상에 자신의 왕국을 설립하기 위해 여호와의 강림에 대한 열렬한 기대가 구약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족하다. 심판, 인자의 오심, 그리고 죽은 자의 부활이 이 마지막 사건의 한 부분으로 보였다. (39.7)
 4. 새 땅에 대한 소망
 주님의 마지막 강림에 대한 소망은 구약에서도 이 지구와 인간의 생명의 궁극적인 회복과 관련을 짓고 있다. 에드몬드 제이콥(Edmond Jacob)이 예리하게 주석하고 있는 것처럼 구약에서 “야훼는 이 세상이 끝마쳐지기 때문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림은 이 세상을 끝내기 위해서,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여타의 사건들 가운데서, 이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가 뒤따르게 하기 위해서 오신다. 그리고 야훼는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종말론의 대 격변의 양상이 자신의 강림의 최종적인 말이 결코 될 수 없다. 새 창조와 회복에 대한 개념이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6 (40.1)
 구약의 최종적 회복. 말세의 회복에 대한 구약의 소망은 인간과 유인(類人-subhuman) 모두의 전체적인 창조를 담고 있다. 선지자들은 헬라 사상과 어떤 기독교 형태에서 제시되고 있는 물질계(物質界)와 영계(靈界), 그리고 몸과 영혼 사이에 있는 이원론(二元論)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전체적 견해는 인간과 자연을 동반자로 본다. 자연이 인간의 반역의 결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으므로 인간의 회복과 궁극적인 화목에 동참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회복한다는 소망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특히 안식일의 기별과 경험으로 고양된 메시야의 시대에 대한 기대와 관련을 맺고 있다. (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