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인류를 위한 재림의 소망 제 2 장 구약과 재림소망
 “모든 민족에 대한 우주적인 축복은 그러한 약속을 성취시킬 더 위대한 사람의 출현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또한 아이크로트(Walter Eichrodt)가 언급한 것처럼 “모든 역사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강한 뜻”2을 표현하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 4장 13~16절갈라디아서 3장 16~18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약속을 믿는 신앙은 그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오실 구속주의 인격(person)을 믿는 신앙을 포함하고 있었다. (32.4)
 5. 강림하실 통치자에 대한 소망
 유다의 축복. 이삭(창 15:1~7)과 야곱(창 27:27~29)을 거쳐, 약속의 계보는 야곱의 아들 유다에게로 좁혀진다(창 49:8~12). 아브라함의 축복과 같이 유다의 축복도 두 요소, 즉 민족적인 것과 종말론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첫번째 요소는 민족의 주역으로서의 유다 지파의 지도적인 역할을 가리킨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 49:8). (32.5)
 축복의 두번째 요소는 에덴의 풍요로운 세대를 설립하기 위해 강림하시는 승리의 통치자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이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 ”(창 49:10, 11). (33.1)
 실로(Shiloh). 비록 고대 랍비들이 실로의 어원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지만 그 용어를 실제적으로 메시야께 적용하는 것에는 모두 동의했다. 예를 들어,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던 아퀼라(온퀼로스—Onkelos)의 탈굼(Targum)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미치리니, 그 왕국은 그에게 속해 있으며, 모든 민족이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3 창세기의 이 구절들은 강림하시는 구속주에 대한 소망이 시초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최초의 본보기를 제공한다. 국토와 이상적인 왕에 대한 예언들과 기대들은 모든 인류를 위한 장래의 구원과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더 큰 소망을 구체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33.2)
 6. 모세와 같은 선지자에 대한 소망
 해방자와 전달자.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와 하나님의 뜻의 전달자로서 모세의 출현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날 것이라는 말 속에서 고대하던 구속주가 어떤 분이 실지에 대한 소망을 더욱 구체화시켜 주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신 18:15, 18). (33.3)
 “나와 같은 선지자”란 말은 한 특정 선지자를 언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일으키실 한 선지자일 수도 있다. 문맥은 본 해석을 지지하는 데, 그 이유는 “그 선지자”(20~22 절)가 다시 단수로 사용되지만 그것은 총괄적으로 개별적이거나 모든 거짓 예언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에 비견할 만한 한 선지자가 오리라는 이 예언을 구원자인 위대한 선지자의 출현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33.4)
 요한의 복음. 예수에 대한 요한의 묘사는 종종 모세에 대한 구약의 묘사와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에 대한 유대인의 기대의 배경에서 제시된다. 예컨대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요 1:45)라고 말했다. 예수님 자신도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고 말씀하셨다. 떡을 증가시키는 기적을 보고 백성들은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요 6:14)고 소리 질렀다. 그리스도를 고대하던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표현한 유사한 암시가 요한복음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1:21~34, 4:19~26, 6:69, 7:40, 52). (33.5)
 오실 구원자에 대한 기대의 형태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시사되었는지는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있어서 국토에 대한 약속은 인류에 대한 우주적인 축복의 기대감을 예표하는 데 기여했다. 모세의 경우에서는 그의 선지자적 역할과 지위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강림할 위대한 선지자의 원형(prototype)이 되었다. (33.6)
 7. 구속주이신 왕에 대한 소망
 다윗의 통치. 군주 정치의 확립은 강림하시는 구세주에 대한 기대에 새로운 차원을 더해 주었다. 무정부 상태와 절망 가운데 있었던 족속들에게 전대 미문의 안정과 번영을 가져다 주었던 다윗과 솔로몬의 찬란한 통치는 구속주이신 왕(The Redeemer-King)의 출현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는 데 기여했다. 선지자 모세의 출현이 미래의 구원자를 한 선지자로 선포하는데 기여한 것처럼 지금은 군주 정치제도의 설립이 고대했던 구세주를 왕으로 선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34.1)
 다윗의 통치가 어떻게 해서 메시야적 표현의 수단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적 · 종교적인 개혁을 단행한 이 왕의 중요한 역할을 주목해야만 한다. 다윗은 야훼에 대한 예배를 증진시키고 성전 건축을 계획하므로 유명해졌다(삼하 7:1~17).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이 너무나 두드러졌고 그 결과로 인한 공의와 번영이 너무나도 명백했으므로 그의 통치는 강림하실 이상적인 왕에 대한 모형과 기대(anticipation)가 되었다. (34.2)
 나단의 예언. 다윗이 그의 전속 목사요 상담자인 선지자 나단에게 성전을 건축하고 싶다는 그의 갈망을 털어 놓았을 때, 그 선지자는 왕에게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2, 16)고 말했다. (34.3)
 이 예언은 한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메시야적 계시의 기초가 되었는지에 대한 좋은 실례(實例)가 된다. 솔로몬을 다윗의 보좌의 계승자와, 성전의 건축자로 지정한 것은 영원히 지속될 하나의 왕국과 보좌를 하나님께서 설립하실 것을 가리켰다. 그와같이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은 미래의 메시야적 왕국의 원형이 되었다. (34.4)
 왕의 이상화(理想化). 미래의 메시야적 구원자의 상징으로서 다윗왕을 이상화한 일이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구약에 표현되어 있다. 예컨대 사무엘의 모친인 한나는 자신의 예언의 말씀 속에서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삼상 2:10)고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왕은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그분의 도구라는 것이다(참고: 삼하 23:1~7). 또 다른 곳에서 그 왕은 주님에 의해 그분의 아들(삼하 7:13)로 입양되었으며, 영원한 왕국이 보증 되었으며(삼하 7:12, 13 ; 시 89:20~29, 34~37),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지혜와 권능이 부여되었다(삼상 10:6, 7). (34.5)
 왕의 역할에 대한 이같은 이상화는 단순히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정치적인 포부의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평화와 의를 설립하기 위해 오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행위에 대한 믿음의 예언적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특히 그러한 예언적인 믿음이 소위 “왕의 시편”(Royal Psalms)과 많은 선지자의 글 속에 나타나 있다. (34.6)
 왕의 시편들. “왕의 시편들”(시 2:21, 45, 72, 110)에서는 왕이 하나님에 의해 지상에 있는 모든 왕국의 아들과 대리자로 입양된다(시 2:7, 8). 그는 백성을 의로 심판하고(시 72:2, 7, 12~14), 찬란한 위엄 중에 신실한 자들에게 나타나며(시 45:3, 4, 110:3), 그의 출현으로 원수를 불로 소멸한다(시 21:9, 10). 그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시 110:4) 이었다. 그의 “보좌는 영영하며”(시 45:6), “그 이름이 해같이 장구하며”(시 72:17), 모든 민족이 그를 축복하고 찬양하며(시 45:17, 72:17), 땅은 풍요로운 수확을 냄으로 그의 통치를 축복한다(시 72:17, 3). (34.7)
 메시야이신 왕. 선지자들의 기별은 메시야이신 왕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해주었다. 예컨대, 아모스는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암 9:11)라고 선포했다. 고대했던 메시야가 여기서는 무너진 “다윗의 천막”회복시키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모스는 이상화된 다윗의 통치를 사용하여 비할 데 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기로 기술된 메시야의 때를 묘사하고 있다(암 9:13, 14). (35.1)
 미가는 메시야이신 통치자의 출생지 즉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리(미 5:2)로 알린다. 그가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미 5:4)게 할 것이다. 스가랴는 다윗의 약속에 대한 성취를 다음과 같은 찬양의 말로 예언하고 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 ”(슥 9:9, 10).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