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역사와 신학 제 1 장. 안식일:인간의 뿌리에 대한 기쁜 소식 II. 안식일의 기원에 관한 이설(異說)들
 안식일이 에덴에서 시작되었다는 성경 기사의 폭 넓은 함축을 생각하기에 앞서 우리는 지난 세기(世記)까지 안식일의 기원으로 활발히 주장되어온 여러가지 이설(異說)들을 공명정대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역사 학자들은 성경 기록의 적절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한 성경 이외의 다른 자료에서 안식일의 기원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역사 학자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보다는 그들이 볼 수 있는 것들을” 더 신뢰한다고나 할까? 이러한 노력들의 결과는 결코 한결같지가 않다. 이제 우리가 곧 검토하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제시되어온 여러가지 가설들은 확신을 주기에 미흡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가설들의 실패 자체가 성경 기사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결과가 되고 있다. (16.1)
 이 중에 중요한 이설들이 저마다 주장하는 안식일의 기원 연대를 살펴보면

   (1) 모세의 시대 또는 그 이전

   (2) 가나안 정착 이후

   (3) 바벨론 포로 기간 또는 그 이후로 나뉘어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주요 이유들은

   (1) 점성술적, 천문학적 이유

   (2) 사회 경제적 이유

   (3) 마술적, 상징적 이유들로 분류될 수 있다. (16.2)
 1. 모세 시대 또는 그 이전(以前) 설(說)
 토성 (Saturn:土星). 모세 시대에 안식일이 시작되었다는 설(說)은 안식일이 토성, 또는 달의 위상(位相), 혹은 메소포다미아의 7일 제도 따위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역사가 길 뿐만 아니라 지금도 흔히 듣게되는 한 설(說)은 모세가 미디안으로 도망했을 때 장가를 들어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겐 족속(Kenites:사 4:11, 17)의 토성 신(神)의 날(日 )에서 구약의 안식일이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9 추측되고 있기로는 토성 신(神)의 날은 금기(禁忌)의 날로서 금속 세공인들이었던 겐 족속들이 그 날은 풀무에 불을 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겐 족속의 이 금기일(禁忌日)을 채택하여 그 금기일의 규칙들을 가정의 일상 허드렛 일에 까지 확대 적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불도 피우지 말라는 성경의 금지(출 35:3, 민 15:32~36)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금지 규정은 토성의 이름들이라고 하는10 식굿(Sakkuth) 과 기윤(Kaiwan) (암 5:26)에 대한 조상 대대의 경배와 관련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6.3)
 이 가설의 주요 약점은 겐 족속이 각기 성신(星神)들에게 바쳐진 7일의 주일(週日)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가정 위에 이 가설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훌륭한 연구 성과에 따르면 혹성 주일(惑星週日) 제도가 소개된 때는 겐 족속의 때로 부터 상당히 내려온 기독교의 발생 시기 부근인 것으로 되어 있다.11 그 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나 고대 유대 문헌에는 안식일이 토성을 위한 신성한 날로 여겨진 일이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12 이밖의 여러가지 반론들도 제기됨으로써 이제 겐 족속과 관련 시키는 안식일 기원설은 사실상 모든 학자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다.13 (17.1)
 달의 위상(位相)들: 안식일의 기원을 달의 네 위상들과 관련된 날들이나 또는 만월일(滿月日)과 연결 시키고 있는 달(月)의 이론이 더 큰 인기를 누려왔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러한 날들이 다소의 종교적 의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날들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1869년 대영(大英)박물관에서 앗시리아학(學) 학자 조지 스미드(George Smith)가 설형문자 점토판들 속에서 하나의 앗시리아 달력을 찾아 냄으로써 제시되었다.14 (17.2)
 이 달력은 이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바벨론의 달력의 사본으로 보이는데,15 13월 또는 윤달의 서른 날들을 기재하고 있으며 제 7일, 제14일, 제19일,16 제21일, 제28일들은 우메 렘누티(Ûmê lemnûti) 즉 흉일(凶日, dies nefasti)로 표시되어 있다. 이 날들에 국왕과 제사장들과 의사들은 신(神)들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 몇가지 특정한 일들을 삼가해야 했다.17 어떤 사람들은 이같은 흉일들의 기원이 대략 7일의 간격으로 나타나는 달의 네 위상(位相)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18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의 안식일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달 위상주기(位相週期)에 그 기원을 두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이다.19 안식일의 기원이 이처럼 달의 위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옹색한 변명으로서는 월삭(月湖)과 관련하여 언급되고 있는 안식일 관계의 구약 성경절들이 제시되고 있다.20 (17.3)
 일견 설득력이 있어 뵈이는 이 이론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적어도 세개의 약점들을 간파할 수 있다. 첫번째 약점은 태음력의 한 달 기간이 28(4x7)일로 되어 있지를 않고(정확히 7일의 4주(週)로 끊어 떨어질 수가 없는) 29일 이상으로 되어있기 때문에21 그 달의 위상들과 제칠일을 관련시키는 일은 일차적인 전개(展開)로서 가 아니라 2차적인 전개로서 생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번째 약점은 만약에 바벨론 사람들이 흉일들을 민간의 “주일”(Weekly) 주기(週期)에 적용했다면(결코 사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함)22, 이 주기는 매월 초마다 중단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월 초의 첫 흉일은 그 전 (前)달 마지막 흉일(28, ûme lemnu—7th day)로 부터 8일 또는 9일 후가 되기 때문이다. (17.4)
 8일 또는 9일로 날 수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지난 달의 날 수가 혹은 29일이 되기도 하고 또는 30일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태음력 달(month)의 시작과 함께 묶이어 있는, 이와같이 불규칙적인 주기가 달(moon)이나 태양의 주기와 상관없이 항상 일정한 7일의 주기를 가지고 있는 히브리의 칠일 제도의 기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세번째 약점은 바벨론 사람들이 세속적인 목적으로 모든 기간을 “7일” 주기로 구분하기 위하여 흉일들의 주기를 이용했다는 증거를 상형문자 서판들 속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흉일들을 위한 규칙들은 단지 국왕과 제사장들에게만 관계된 것이었고 전체 백성들과는 상관이 없었다.23 또 바벨론 사람들은 칠일의 주기 말고도 한 달을 6일씩으로 구분하는 주기와 5일씩으로 구분하는 주기들을 사용하고 있었다.24 이와는 대조적으로 히브리의 거룩한 안식일(흉일이 아니고)은 종교와 세속적인 용도로 기간을 7일씩으로 구분한 유일의 날로서 그리고 공동사회 전체가 지키는 하나의 축일로서 사용되었다. (17.5)
 사밧투 (Sabbattu, Sabattu).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아카드(Akkad) 문서들 속에서 삽바트(Sabbath; Sabbat)라는 히브리어와 너무나 흡사한 사밧투(Sabattu)라는 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낱말은 그 달의 제15일 즉 만월 일(滿月 日)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략 아브라함의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라고 하는 바벨론의 유명한 창조 서사시(15:18)속에 한 실례가 나타나고 있다. 말둑(Marduk) 신(神)이 달에게 말한다; “그대는 이 달 벽두에 땅 위로 솟아 올라 빛나는 별들을 가지고 여섯 날들을 나타내어라. 제칠일에 그대는 면류관〔반월〕이 될 것이다. 보름인 사바투(Šabbatu)에는〔태양의〕반대편에 서라.”25 (18.1)
 그 같은 날에는 어떠한 의의가 부여되어 있었는가? 분명한 것은 만월 일인 사밧투(Šabbatu) 가 바벨론 만신전(萬神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월신(月神) 신(Sin)을 위한 신성한 날이었다는 것이다.26 여러 서판들에서 사밧투(Sabattu)는 통상 “심령의 휴일” 또는 “위무(慰無)의 날”로 해석되고 있는 움 누 립비(Ûm nûh libbi)로 정의되어 있다.27 이로 미루어 볼 때 사밧투는 신(神)들을 위무하는 보름 날인 것이다.28 삽바트(Šabbat:안식일)라는 히브리 단어와 사밧투(Šabbattu)라는 아카드 단어 사이에 있는 모양과 소리의 유사성 그리고 구약 성경에 나타난 안식일과 월삭과의 연관성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안식일이 본래 7일에 하루 씩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번 있는 만월 축제일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월 1회의 축제일이었던 안식일이 1주(週) 1회 축제일로 변경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로서 에스겔이 휴일의 필요성에 부응하여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29 (18.2)
 이 학설의 탁월한 교묘성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근한 예로서 칼 부드(Karl Budde)는 에스겔서에 안식일의 새로운 기념 형태를 지시하고 있는 말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같이 근거없는 주장을 펴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있다. 도리어 에스겔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러 해에 걸쳐 옛 방식대로 안식일을 지켜오지 못했음을 끊임없이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20:12ff; 22:8, 26; 23:38; 44:24).30 (19.1)
 만월설(說)의 주창자들은 에스겔 보다 2세기나 앞선 시대에 벌써 안식일을 언급하고 있는 왕하 4:23; 왕하 11:4~12와 같은 오래된 성경 구절들까지 무시 하고 있다.31 그뿐 아니라 이 학자들은 어떻게하여 “월 1회의 안식일”이 만월일(滿月日)과는 상관없이 주(週) 1회의 예배일과 휴일로 지켜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만월일(滿月日)을 지켜 왔었다면 어찌하여 그런 일에 대한 기억이 될만한 것이 후기 시대에 하나도 남겨있지 않은 것일까? 예컨데 히브리어로 보름은 “삽바트”(Ŝabbat)라고 부르지를 않고 케제(Kese; 시 81:4)라고 부르는데 케제의 단어 형태에서는 사밧투(Gabattu)라는 아카드어의 파생어일 가능성 이나 그밖의 관련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바벨론의 태음력(흉일과 만월일을 포함하여)이 히브리 안식일과 역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는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점은 유대 달력의 달(month) 명칭들과 바벨론 달력의 달 명칭들 사이에 유사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로서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32 (19.2)
 바벨론의 사밧투(Ŝabattu) 즉 흉일들과 히브리의 삽바드(Sabbath)사이에 있는 형태상의 유사성은 셈(Semitic) 문화라는 공동유산을 토대로하여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바벨론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 양면에 있어서 히브리인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민족이다. 따라서 이 두 민족은 같은 출처에서 창조의 안식일을 배우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같은 창조 설화와 길가메쉬 서사시(Gilgamesh Epic)와 같은 홍수 설화의 경우에서와 같이 안식일도 와전되어 거룩한 날이 달의 위상(位相)들과 연관된 흉일들로 바꾸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현상은 태고의 안식일의 파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저질화를 뜻하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바벨론의 사밧투나 흉일들에는 성경적인 안식일에 표현되어 있는 숭고한 목적들과 인간의 가치들이 전혀 나타나있지 않다. (19.3)
 7일 기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문서들 속에는 7일간의 연속적인 행사나 의식에 대한 언급들이 나온다. 비근한 예로서 B. C 21세기에 메소포타미아의 한 도시 국가인 라가쉬(Lagash)를 다스린 국왕 구데아(Gudea)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의 비문에는 7일 동안 계속된 한 성전의 봉헌식과 또 역시 7일동안 계속된 돌비석의 낙성식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다.33 메소포타미아의 홍수설화에서는 폭풍우의 기간이 7일로 나와있고 배가 산 위에 내려 앉은지 7일째 되는 날에 첫번째로 새를 날려 보냈다고 되어 있다.34 (19.4)
 이것들과 그밖의 유사한 실례들을35 근거로하여 일부 학자들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구약 성경의 안식일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7일 체도에서 연유되었다고 주장하였다.36 그러나 이같이 대담한 주장은 사실 보다는 공상 위에 기초되고 있는 면이 더 많다. 고대 바벨론에 7일제도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고고학자 시그프리드 H. 혼(Siegained H. Hórn) 박사가 옳게 강조한 바와 같이 “메소포타미아 골짜기에서 발굴된 수십만개의 설형 문자 서판들을 고려해서 생각할 때 실로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만약 고대 수멜인들, 바벨론 사람들, 혹은 앗시리아 사람들이 성경시대에 히브리인들이 지키고 있던 것과 동일한 주일 제도를 가지고 있었거나 또는 그러한 주일이 제칠일에 특별한 신성성을 주었다면 그들은 그러한 사실에 대한 좀더 명확한 기록을 틀림없이 남겼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이다.”37 (19.5)
 왕들이 성전을 봉헌하는 기간으로는 7일 외에도 이 보다 길거나 짧은 여러 형태의 기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현존하고 있다. 때문에 7일간의 성전 봉헌 주간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7일의 주일제도가 존재했다는 증거로 삼기는 어렵다.38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설화들에 언급된 7일의 기간들은 성경의 홍수 시기에 7 일의 주일 제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희미한 회상으로는 볼 수가 있지만 이러한 설화들이 기록되던 당시의 이 두 사회가 모두 7일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어야할 까닭은 없다. (20.1)
 노아의 홍수에 대한 성경 기사에는 7일 기간들에 대한 언급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데(창 8:8~12) 이것은 주석가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듯이, 7일 제도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다.39 상형문자로 기록된 대 홍수의 설화들은 비록 변질된 것이고 전설적인 윤색의 것이긴 하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에 남겨있는 대 홍수의 설화들보다는 성경의 기사에 훨씬 가깝다.40 이 유사성은 7일 보다 짧은 “주일”41의 존재에 서 알수 있듯이 민간에서 7일 제도의 사용이 외관상 폐절되기는 했지만 7일 제도의 성경적 개념이 저작물들에서 비뚜러지게 되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혼 박사가 적절히 말했듯이 이제 “논리적인 결론은 7일 제도가 한 때 존재했었으나 역사적인 기록이 보관되기 전에 폐절되었고 오직 그 제도에 대한 불분명한 기억만이 남게되있다는 것이다.” (20.2)
 2. 가나안 정착설(說)
 사회제도. 성경 학자들은 성경 이외의 자료에서 안식일의 기원에 대한 만족할만한 설명을 얻지 못하자 구약 성경에서 안식일의 기원을 추적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구 끝에 일부 학자들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 처음으로 안식일이 등장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42 안식일이 생기게 된 이유로 제시된 것들은 주로 사회 경제적인 배려로 인한 것들이었다. 노동자들에게 휴일을 주어 일할 필요와 생산물들을 사고 팔 장날의 필요성이 “일하지 않는 날”로서의 안식일을 제정하게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43 그후 안식일은 노예 및 교역을 위한 사회적인 제도에서부터 야웨 하나님을 위한 종교적 제도로 진화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변모에 주역을 담당했던 자들은 다름아닌 바벨론 포로 기간에 안식일의 종교적인 준수를 심화시키기 위하여 안식일 신학을 발전시킨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라 한다.44 (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