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 3:13) (85.3)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지금, 현재에 우리는 형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서로 권면하라’는 권고에는 서로 용기를 돋우고 격려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형제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는 것은 나와 형제가 함께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죄의 유혹에 굴복할 때마다 마음은 점점 완고하게 하고, 딱딱하게 되어 점차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85.4)
이스라엘은 광야 길을 걸었지만 그곳에서도 죄는 때때로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다 실패한 발람은 모압의 신접한 여자들의 죄를 매력적으로 포장함으로 이스라엘을 범죄로 끌어들이는데 성공을 거두었다. 모압의 미희들을 동원해 신전의 제의에서 춤추도록 하여 이스라엘을 유혹하고 그 음행에 동참하게 하였다. 결국 제의에 참여한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다. (85.5)
아간은 아이성 정복 때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수 7:21)과 금 은 덩어리에 마음을 빼앗겨 범죄하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그의 마음은 강퍅해져서 후에 회개할 기회를 얻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가락이 그것을 지적하실 때까지도 회개하기를 거절함으로 결국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침을 당하였다. (85.6)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86.1)
처음에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할 때에 큰 구원을 맛보았다.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에 구원함을 받았고,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넜으며,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을 앞서 인도할 때 그들의 확신과 사기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러나 광야 여행이 길어지면서 그들은 처음의 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들은 처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붙잡는데 실패하였다. (86.2)
바울 당시에도 주님께로부터 직접 들은 제자들과 초대 교회의 확신 있는 기별로 확증을 받았던(2:3) 성도들의 믿음은 충만했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었다”(2:4). 그러나 그들은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점점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게”(2:3) 되었다. (86.3)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히 3:16-18) (86.7)
16~18절에는 “누구”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자들로서, 하나님이 듣고 격노하신 자들이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세하신 자들이다. 왜인가? 어째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는가? 그들은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안식”(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선고를 받고 말았다. 여기에서 “그의 안식”은 가나안 땅의 안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87.1)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9) (87.2)
그들의 불순종은 그들의 불신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은 능히 “들어가지 못 하였다”. 어디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인가? 가나안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7~28) (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