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히 3:11) (83.1)
맹세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맹세하셨다.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겔 20:6). (83.2)
그러나 그 맹세는 이스라엘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8:9)하므로 성취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고 범죄 하여 반역이 극에 달하였다. 그들은 여행 내내 그들의 목전에서 원수를 물리치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모세는 고별설교에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셨다”(1:2)고 지적하였다. (83.3)
이제 축복 대신에 언약 저주가 그들에게 임하였다. (83.4)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민 14:29) 곧 하나님을 원망한 악한 세대는 광야에서 죽게 되리라고 선고가 내려졌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맹세로 선포되었다.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9~30) (83.5)
왜 이토록 비참한 결과가 초래 되었는가? 에스겔은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주된 원인을 지적하였다. “율례 ··· 규례”(겔 20:11)를 멸시하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겔 20:13)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광야 길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안식’을 주시기를 원했다. 가나안 안식은 결국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함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안식’의 모형이었던 것이다. (83.6)
내 안식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계명을 순종함으로 얻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만이 ‘가나안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가나안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방법을 이스라엘에게 교훈하는 모형이요, 표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84.1)
또한 가나안 안식은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 구속받은 자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안식’의 모형이었다. 모세는 너희가 기업으로 얻을 땅은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신 25:19)시는 땅이라고 말하였다. (84.2)
안식의 땅을 향해 갈 때 이스라엘은 대적의 칼에서 벗어나는 안식을 그리워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안식을 주기를 원하셨다. (84.3)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 31:2~3) (84.4)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멜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 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4:19) (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