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히브리서 연구) 제 3 장 하나님의 안식 (1부)
우리의 믿는 도리
 ‘우리가 믿음을 고백(인정, 공인)하는’의 뜻이다. (76.5)
사도
 ‘보내심을 받은 자’란 의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표자로 세상에 오셨다. “영광의 광채요 그 본채의 형상”(1:2)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요 14:9)다고 말씀하셨다. 신성이시지만 신성을 인성 안에 감추시고 오직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셨다. (77.1)
 “나는 나의 원대로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고로”(요 5:30) (77.2)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77.3)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곳은 유일하게 그리스도를 “사도요 대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사도”가 하나님의 대표라면 “대제사장”은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5:1)이다.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사람을 동시에 대표하는 인물임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서 나셔서 “혈육에 함께 속하”(2:14)시고 인생이 걸어가는 모든 길을 걸으시며, 시험을 받으시는 모든 경험 속에서 승리하신 분이시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2:10) 되시고,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2:9)셨다. 그렇게 아담이 잃어버린 존귀와 영광을 회복하신 분으로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고난 받을 때에, 외로울 때에, 고통 받을 때에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경험을 이해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77.4)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히 3:2) (77.5)
 본 절은 모세의 충성과 그리스도의 충성을 비교하고 있다.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모세는 위대한 존재였다.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자, 하나님의 율법, 성소, 희생제도를 받아 전달한 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모세의 사역 모두는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모세와 그리스도를 대조하는 의도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77.6)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을 지도하고 돌보는 일을 통해 하나님 앞에 충성했지만 “사환”(종)으로서 충성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3:6)로 충성하였다. 여기에 쓰인 “집”을 나타내는 헬라어 ‘오이코스’는 함축적으로 ‘일가족’, ‘가정을 형성하는 모든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전 장에서 믿는 자들을 “내 형제들”(2:12), “자녀(들)”(2:13), “아브라함의 자손”(2:16)이라고 지칭한 표현들을 생각해 보면 모세가 온 집에서 충성하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된다. 여기 집이란 단지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요 대가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에 바울이 사용한 단어 하나 하나가 얼마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친밀한 관계임을 표현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78.1)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 3:3-4) (78.2)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일부 구성원이었다. (78.3)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 즉 “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셨다. (78.4)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피조물인 모세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돌려야 하였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옛 제도에 집착하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집을 지은 자인 동시에 집 맡은 아들이었다. 특별히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그의 집 맡은 아들”(3:6)로 충성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로 무너뜨린 집을 집 맡은 아들이 되어서 다시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도 그 집은 계속 세워져가고 있다. 바울은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엡 2:21) 간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속에는 구속 받은 자들이 영원토록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78.5)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 3:5-6) (79.1)
 두 절을 대조해 보라! (79.2)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의 종이었다. vs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온 집 맡은 아들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일부였다. vs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지은 자였다. (79.3)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의 모형이었다. 장래에 말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집 맡은 아들”을 통해 말씀하실 것을 말한다. “집 맡은 아들”의 신분이 무엇인가? 집을 상속할 아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의 집인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시작할 때에 확실했던 소망의 담대함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한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중간에 포기하거나 실족하지 말아야 한다. 실족한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79.4)
 바울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자랑과 긍지 속에 있는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임을 말한다. 모세는 종으로서 상속권이 없지만 아들은 상속권이 있기 때문이다(갈 3:29; 4:30 참고). 우리는 ‘종’(옛 제도)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아들에 속한 자이다. 이 사실을 아는 자들에게는 소망의 담대함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롬 8:17), “만유의 후사”(히 1:2)가 되는 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우리는 그의 집의 구성원이다. 집은 부모님이 계시고 쉼이 있는 안식처이다. 우리는 그 집의 안식에 들어가야 한다. (7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