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4 장 유월절 어린양을 예표(豫表)하는 번제단과 물두멍
 (1) 종살이로부터의 해방과 구속으로 얻은 안식을 기념 (78.3)
 무교절은 니산월 15일(서기 31년, 성력 1.15)로 “유월절 다음 날 ... 애굽의 모든 사람의 목전(目前)에서 큰 권능으로 나”(민 33:3)온 “그 날을 기념”(출 13:3)하는 무교병을 먹는 날이었다. 이스라엘은 7일 동안 누룩 없는 떡을 먹음으로 애굽의 종살이에서의 해방과 자유를 축제로 기념하였다. 이스라엘은 또한 무교절(1.15~21)의 첫 날(1.15)과 끝 날(1.21)을 “아무 일도 하지 말”(출 12:16)고 “안식일”(레 23:11)로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절기 안식일들은 고달픈 종살이로부터의 안식을 얻은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십자가로 성취되는 죄로부터의 안식을 예표(豫表)하는 것이었다. (78.4)
 (2) 죄로부터의 구원의 안식은 영원한 창조의 안식에 들어가는 경험이다. 무교절의 더 깊은 의미는 십자가에서 죄의 누룩을 제거하실 “그리스도의 몸”(히 10:10)을 예표(豫表)하였다. 바울은 이것을 “새 덩어리”(고전 5:7)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으로 인류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시는 일 즉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단 9:24) “죄들을 종결시키”(제임스왕역, 단 9:24)는 역사를 이루셨다. 자신의 생애에 죄가 없으심 같이(히 4:15) 인류의 죄를 도말하신 최초의 순전한 새 덩어리 무교병이 되셔서, 인류를 자기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인류에게 죄로부터 해방과 안식을 주신 것을 기념하여 하루 동안 무덤에서 안식하신 것이다. 이 얼마나 절묘한 그림자와 원형의 만남인가? 얼마나 극적인 성취인가? 예수님께서 무교절의 안식이 예표(豫表)하였던 것처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요 23:56)셨다. 이날은 절기 안식일의 그림자가 제7일 안식일과 같은 날로 만나 구속의 의미를 극대화시킨 “큰 날”(요19:31) 안식일이었다. (79.1)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해방의 안식, 구원의 안식은 우리에게서 죄의 종살이로부터의 구원의 안식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러므로 모세는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고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의 안식은 “창조할 때부터 ...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히 4:3~4)시며 모본을 보이신 그 안식에 들어가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이 안식일은 영원히 폐지되지 않는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 66:22~23). (79.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경험하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애 속에서 즉시 죄의 누룩을 제거하고 무교병이 그리스도의 죄 없음과 죄 없이함을 예표(豫表) 했던 것처럼 성화의 생애를 유지해야 한다. (80.1)
 B. 번제단과 물두멍은 그리스도의 모형임
 1. 번제단은 유월절 희생과 죄의 누룩을 제거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임
 성소 제도에서 심대(甚大)한 구속사역의 국면들을 연구하는 신자들은 유월절 양의 희생과 무교병의 죄의 누룩을 제거하는 두 그림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취되었다는 확신할 것이다. 사도 바울도 십자가의 사건이 성소의 번제단으로 상징되는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히 10:10)의 모든 모형을 이루시는 사건이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히 10:5~10).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셨음”(히 10:8)을 확고하게 해두자. (80.2)
 2. 물두멍은 첫 열매로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임
 니산월 16일(서기 31년, 성력 1.16)은 요제절로 “안식일 이튿날”(레 23:11) 보리의 첫 수확단을 하나님께 흔들어(요제) 드리는 의식이 있었다.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감사하는 의식이었다. 첫 열매를 드리기 전에는 곡식밭의 수확을 할 수 없었다. 리즐리 하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한다. “추수꾼은 증인들이 보는 앞에서 밭에 내려가 보리 세 줌을 잘라서 하나의 큰 단으로 묶는다. 제사장은 이것을 성전으로 가지고 와서 아론의 자손 중 하나에게 준다. 그러면 큰 제단 앞에서 위 아래로 여호와 앞에 흔든다. 이것은 곡식단이 하나님께 드려졌다가 다시 제사장에게 돌아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양육하시고 축복하기 위해서 다시 돌려주는 것이었다. 모든 물질적인 축복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6 (80.3)
 3.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들을 예표 하는 첫 열매
 이 요제절의 “첫 이삭”(레 23:10)은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부활할 자들 가운데서 첫 열매로 인류의 장자가 되신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하였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신 다음에 제칠일 안식일에 무덤에서 안식하셨다. 그리고 구속의 시간표에 따라 “안식일 이튿날”(레 23:11)인 성력 1월 16일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요 20:1)에 보리단을 흔드는 것 같이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마 28:2)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15:20)가 되셨다. (81.1)
 바울은 주님의 부활과 그분의 백성들의 부활을 말하면서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고전 15:23)라고 한다. 추수하기 전에 거두어 요제(搖祭)로 드려진 처음 익은 곡식단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부활의 때에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가게 될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추수에 있어서 처음 익은 곡식이시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제의 곡식단이 표상한 실체(實體)로서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고전 15:20), 곧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빌 3:21)실 분으로서, 또한 모든 의인들의 견본으로 부활하셨다.7 그러므로 첫 열매는 다시는 죽음을 맛보거나 슬픔을 체험하지 않게 될 자들을 의미한다. (81.2)
 4. 홍해의 침례(물두멍)를 통해 첫 열매가 된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시고 애굽에서 불러내실 때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를 모형적으로 예표(豫表)하는 민족이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홍해의 경험을 민족적 침례(물두멍, 요제)의 경험으로 설명하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 신령한 음료를 마셨느니라”(고전 10:1, 4). 열국 중의 첫 열매인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성까지의 경험은 일련의 구속사적 경험이었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모형적으로 보여주는 일련의 성소 경험이었다. 다시 말해 출애굽의 경험은 번제단(유월절과 무교절)의 경험이었고 홍해의 경험은 민족적 침례를 통한 물두멍의 경험이었다. 홍해를 건넌 날인 1월 16일부터 49일 만에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들여 50일째 되는 날에 화목제의 피를 단과 백성에게 뿌림으로 언약의 백성이 된 것 역시 오순절에 “새 소제”(레 23:16)로 드려진 성령 충만함을 받을 사람들을 예표(豫表) 하는 첫 열매였다. (82.1)
 5. 요제절의 부활은 침례와 세족 예식으로 기념됨
 이와 같이 요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다. 바울은 “침례”(KJV, 롬 6:3)를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롬 6:5)는 의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벧전 3:21; 요 13:9, 10; 딛 3:5). 그리고 한 번의 침례뿐만 아니라 자주 발을 씻는 세족예식으로 예수님에 의해 친히 제정되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침례가 정결과 중생을 의미한다면 세족예식은 형제간의 화목과 정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제정하신 것이다. (83.1)
 우리는 요제절의 모형 속에 있는 첫 열매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으며 부활은 침례와 세족 예식으로 기념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성소의 뜰의 ‘물두멍’에서 제사장이 수족을 씻는 의식 속에 예표 되어 있었다(출 30:19~20). 제사장이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물두멍에 씻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셨다”(요 13:5).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 13:10)고 말씀하심으로 목욕인 침례와 세족예식의 의미를 함께 부여해주셨다. 이처럼 확연히 물두멍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씻음과 죄의 매일의 생애에서 죄에 미혹되어 나타나는 교만과 이기심과 알력과 증오심을 씻어내는 세족예식을 함께 예표(豫表)하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침례와 세족예식은 주님께서 직접 참여하시고, 제정하시고, 모본을 보이심으로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예식이 되었다. (83.2)
 6. 예수님의 십자가로 성취된 세 절기
표 상 실 체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유월절 무교절 요제절
(니산월 14일) (니산월 15일) (니산월 16일) (니산월 14일) (니산월 15일) (니산월 16일)
양의 죽음 안식일 무교병 홍해를 건넘 그리스도의 죽음 안식하심 부활
(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