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키나의 그림자 속에서 제4장 이동할 준비를 갖춤 (민수기 9~10장)
 민수기 9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이 어떻게 발휘되는 지를 본다. 그분의 해법은 실제적이었고, 공동체가 즐거워하는 이 특별한 때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도록 융통성을 보여주었다. 그분은 또한 이스라엘의 국가적 독립기념축제인 유월절을 준비하기를 원한 재류 외국인들도 포함시켜 주셨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인 양 동일하게 대우하셨다(14절; 출 12:48,49 참조). 이런 방식으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해 만국을 복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분의 택하신 백성들과 자신들을 동일시 한 믿음의 외국인들을 포함시키셨다(창 12:3; 22:18). (65.1)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를 그분으로부터 배우려 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감정과 합당한 한계들을 존중하고, 규칙들과 그것들의 취지를 균형진 관점에서 유지시키고, 우리의 예배와 구원의 경축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이들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65.2)
 함께 머무르기
 1974년에 우리 가족이 네브라스카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할 때, 우리는 80번 주간 (州間)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형은 그 당시 16세였는데, 이사하는 걸 못 마땅하게 여겼다. 형은 낡긴 했지만, 세련된 갈색의 색 캐딜락을 혼자 운전하고 가기를 원했다. 남은 사람들은 큰 박스처럼 보인 파란색 플리머스를 탔다. 그 캐딜락은 크루즈 컨트롤이 있었고, 플리머스에는 없었다. (65.3)
 한 마일 한 마일 달릴 때마다 그의 친구들이 한참 뒤처진 것을 보는 좌절감 외에, 형은 계속 속력을 높였다 줄였다는 또 다른 차량과 함께 머물러야 하는 짜증스런 일을 겪었다. (66.1)
 여러분이 운전이나 조깅, 또는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맞춰나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 빨리, 혹은 너무 천천히 가기도 하고, 너무 고른 속도로 가던지, 아니면, 너무 쿵쾅거리며 간다. 너무 자주 멈추기도 하고, 충분히 자주 안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여러분을 돕거나 안내하거나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에게 보조를 맞추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66.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함께 여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그처럼, 첫 번 째 유월절을 지킨 후,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날 때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출 13:21)셨다.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을 때, 여호와의 구름기둥은 그들의 이전 노예 포로들과 그들을 갈라놓았다 (출 14:19,20).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함들은 적기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연막탄을 발사하곤 했다. 하지만 여호와의 “연막탄”은 훨씬 더 성능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빛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적들에게는 어두움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66.3)
 후에 여호와의 임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분의 영광으로부터 가려주었던 구름 가운데서 시내산 위에 머물렀다 (출 19:16; 24:15,16,18). 그러나 그들이 성막을 건축한 후,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을 가득 채웠으며, 그분의 구름은 이동하여 그 위에 머물렀다. 그 구름은 말뚝들을 뽑고 앞으로 전진할 때가 올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출 40:34-38). (66.4)
 두번째 유월절에 대하여 기록한 다음, 민수기는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민 9:15-23). 이 구절은 저 구름이 성막 위에 얼마나 길게 혹은 얼마나 짧게 머물던지 상관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의 움직임을 좇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23절). (67.1)
 하나님께서 페이스를 조절하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상은 그분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그분은 몇 배나 더 빨리 가나안으로 가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 위협적인 적들을 마주칠 준비를 갖추기 전, 그분에 대한 그들의 믿음과 그분과의 협동은 “신병훈련소”를 수료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때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백성들이 항상 그분을 신뢰하고 따르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 알고 계셨다. (67.2)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여호와께서 과거에 계셨던 곳에 있거나, 미래에 계실 가망성이 높은 곳에 있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분이 계시는 곳에 있을 필요가 있었다. (67.3)
 불행하게도, 여러 세기를 통하여 많은 종교 단체들은 신이 어느 때에 계셨던 곳이라고 그들이 생각하는 곳을 대표하는 장소들이나 신조들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해왔다. 비극적이게도, 그들은 그분께서 새 진리로 그들을 인도하시도록 개방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미이라화된 그들의 정통을 완강히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격이신 분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창조한 상자 속에 갇힌 개념으로서의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그 상자를 아름답게 장식하고는 그것에 입 맞추고 주기적으로 그 주위를 돌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일종의 관(棺)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안에 계시지는 않는다. (67.4)
 다른 이들은 현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짜증을 느낀다. 왜냐하면 다양한 무리들을 한데 모으려고 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에게는 너무 느리시다. 그들은 엘리트로서, 전면에 나서서, 그 길을 인도하고, 패러다임을 산산이 부순다. (68.1)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금 계시는 곳에 그분과 함께 있는다면, 우리는 안전하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이동하고, 그분과 함께 멈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 그분은 훨씬 더 빨리 가실 수 있지만, 우리를 위하여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고 계신다. (68.2)
 협력을 위한 신호들
 일단의 사람들을 조정하려면, 신호들을 갖는 것은 아주 도움이 된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살았던 캘리포니아 주의 앵그윈(Angwin)이란 한 소읍의 탁월한 의용 소방대는 다른 종류의 비상상황을 다루는데 필요한 사람들을 호출하기 위하여 큰 소리를 내는 사이렌 알람 시스템을 사용하였다. 알람 소리가 많을수록, 비상상황은 더 위급한 것이었다. 가령 다섯 번의 알람 소리는 모든 대원들을 신속히 동원하는 것이 요구되는 위험한 화재 같은 큰 사고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많은 대원들은 그들이 일하는 곳에서 뛰어나와 그들의 차에 껑충 올라탄다. 그 차들이 굉음 소리를 내며 출발할 때 그들의 타이어는 “끽, 쌩”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이 에너지 넘치고 잘 훈련된, 그리고 헌신하는 인력들은 많은 인명과 집들을 구해내었다. (68.3)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를 떠나 가나안으로 출발하기 전, 그들은 그들의 움직임을 신속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신호체계가 필요했다. 그들이 지시사항을 받기 위해 모여야 하거나 다른 단계의 여행을 시작하거나 혹은 적들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해야 할 경우, 구두로 기별을 전달하는 것은 너무 느릴 것이었다. 그들에게 확성기나, 휴대폰, 또는 무선호출기가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적절한 조정이 없다면, 혼란이 뒤따를 것이다.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 등등은 우왕좌왕 하고, 서로 충돌하고 좌절하여 소리를 지를 것이다. 또한 동물들도 이동시켜야 한다면, 소떼, 앙떼들이 충돌하고 서로 섞이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동물 소유주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날 것이다. 울음소리, 음메소리, 시끄럽게 우는 소리가 뒤섞인 불협화음은 거대한 혼란의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69.1)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들을 성취하는데 기여하는 질서를 원하신다. 그분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다(고전 14:33). 그렇기에, 그분은 모세에게 두 은나팔을 만들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제사장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 필요가 있는지에 따라, 특정한 방식으로 나팔들을 불게 될 것이었다 (하나나 혹은 두 개의 나팔로, 다른 종류의 부는 방식을 사용하여)(민 10:1-10). 고고학자들이 좋은 상태로 보존된 고대 이집트의 은나팔을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악기가 어떤 모양이었을지 알 수 있다. 이 나팔들의 귀청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 (혹은 대표되는 지도자들만)를 호출하기 위하여, 지파들이 바른 순서에 따라 여행을 시작하도록 행진의 시작을 통제하고, 전쟁을 선포하거나 기쁨의 때를 경축하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을 얻는 일이 용이할 것이었다. (69.2)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는 사실은 그 신호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다는 사실을 강화시켰다.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봉사했는데, 거기서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혹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함으로써 지시를 받을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 신호를 사용하여 공지사항을 전달할 것이었다. (70.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들이 그들을 괴롭힌다면,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의 경보 소리는 그들의 신이자 왕이신 분에게 드리는 일종의 기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민 10:9)고 말씀하셨다. 제사장들이 아니었던 후기의 지도자들 또한 나팔(양각 나팔)을 불어서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주신 전쟁에 나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았다(삿 3:27; 6:34 참조). (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