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Quintus Septimius Florens, c. 160-c. 220)는 전쟁과 그리스도인 군복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교부일 뿐 아니라 이 문제를 가장 빈번히 취급한 교부이다. 그가 기원 197년부터 220년까지 남긴 31편의 저술들1 가운데 전쟁과 그리스도인 군복무를 언급하고 있는 저작들로는「변증론」(Apologeticum, 197 A.D.),「스카플라에게」(Ad Scaplam, 212 A.D.),「박해 도피론」(De Fuga in persecutiones, 211-212 A.D.),「우상숭배론」(De Idololatria, 198-203 A.D.),「병사의 화관론」(De Corona militis, 211 A.D.),「인내론」(De Patientia, 198-203 A.D.),「유대인 논박론」(Adversus Judaeos, 198-203),「마르키온 반박론」(Adversus Marcionem, 208-213),「철학자의 외투론」(De Pallio, 209-210),「영혼론」(De Testimonio Animae, 208-213),「육신의 부활론」(De Resurrectiones Carnis, 208-213) 등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에서는 간접적이고 단편적인 언급들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며 오직「변증론」과 「우상숭배론」에서만 상대적으로 길고 직접적인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몬타누스주의로 전향한 이후에 집필한「병사의 화관론」은 그리스도인의 군복무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논문이다. (35.1)
 본 항에서는 위의 세 작품들을 위시한 여러 저작에 나타난 테르툴리아누스의 논급들을 연대순으로 분석하고자 하는데2 1) 그는 어떤 전쟁관을 피력했으며, 2) 그가「변증론」 등에서 로마제국 내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의 선교적 확장을 강조하고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시민 정신을 옹호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군복무를 긍정적으로 언급하였는데 이같은 언급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는가? 3) 그리고 그가 그밖의 글들에서 그리스도인의 군복무를 거듭하여 반대했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이며, 4) 그의 그리스도인 군복무관과 전체 그리스도교회의 군복무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등에 관하여 유념하고자 한다. (36.1)
 테르툴리아누스의 첫 저작인「변증론」에서 우리는 전쟁과 군대 및 군복무에 관한 그의 중요한 논평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의 기능에 대해서 그는 파괴와 건설, 폐해와 억제라는 양측면을 함께 인식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전쟁은 승리자와 패배자, 신(神)과 인간(人間), 일반 가정과 신전, 그리고 군인과 민간인과 성직자를 구별하지 않은 대파괴와 고통이었다. 그에 따르면 로마는 정복 전쟁을 통하여 피정복민들의 종교들을 파멸시켰고 그 결과 자신들의 종교마저 파멸시켰다. (37.1)
 그러나 전쟁은 역사상 모든 왕국들의 성립과 확장을 주도한 주 요인이기도 했다.3 전쟁을 통한 국가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는 창조주의 징계와 섭리가 작용하며 따라서 전쟁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뢰는 창조주의 섭리에 대한 신뢰이다.4 (37.2)
 이 같은 그의 주장은 후기의 저작들에서도 거듭되었다. 예컨대「영혼론」에서는 전쟁을 전염병이나 기근 또는 천재지변과 같이 인구의 지나친 증가를 억제하는 치료제5라 하였고「육신의 부활론」에서는 같은 검(劍)이라 할지라도 산적 행위에 사용될 경우와 전쟁 행위에 사용될 경우에 따라 그 평가가 각기 다르다 하였다.6「마르키온 반박론」에서는 전쟁을 반역적인 백성들을 징계하는 창조주의 수단의 하나로 언급했다.7 그러나「변증론」에서는 전쟁의 불가피성과 전쟁의 기능적인 측면을 언급할 때마다 그것과 나란히 그 피해와 고통을 함께 강조하였다. 즉 전쟁은 승리일 경우에도 항상 파괴와 타락을 수반하며, 그 파괴는 일반 가정과 신전, 군인과 민간인과 성직자를 구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8 (37.3)
 「변증론」에서 나타난 테르툴리아누스의 논평들을 성격적으로 분류해 본다면, 1) 평화유지의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 로마 군대의 기능에 대한 신뢰의 표시, 2) 그리스도교의 선교적 확장과 그리스도교의 비폭력적 특성에 대한 홍보, 3)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이고 건전한 사회 책임 수행 의지에 대한 홍보로 나뉘어지고 있다. (38.1)
 첫째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평화를 평가하고 그 평화에 기여하는 로마의 군대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했다. 즉 “우리는 쉬지 않고 모든 황제들의 장수(長壽)와 제국의 안전과 황실의 보전과 용맹한 군대(exercitus fortes)를 위하여, 그리고 충성스러운 원로원과 충직한 시민들과 천하의 태평성대를 위하여 기도한다”9는 것이다. (38.2)
 둘째로 그는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모든 병영(兵營: castra ipsa)에 까지 미쳐 이제 그리스도교가 들어가 있지 않은 곳은 이교의 신전뿐이라고 했다. (38.3)
“우리는 그 출발이 미천한 백성들에 불과하지만 이미 당신들이 살고 있는 온 세계와 모든 일터에, 즉 도시들, 섬들, 성체들, 마을들, 시장들, 모든 병영들, 부족들, 단체들, 군중과 재판소 등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가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곳은 당신들의 신전 뿐”10이라는 것이다.
(39.1)
 만약 신앙을 위해 (39.2)
“칼날도 개의치 않는 우리가 타인을 살해하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살해당하는 쪽을 선택하는 백성들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제아무리 열세한 병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들이 감당치 못할 싸움은 없을 것이며”11“이들이 만약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었던들 이 무리가 온 세상을 뒤덮게된 마당에 이들이 호롱불 한둘씩만 들고나선다 해도 하루 밤이면 그들의 복수를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12
(39.3)
 최종적으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브라만 교도들이나 염세적인 은둔자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사회인이며 책임인들이라고 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39.4)
“재판소에도 가고 푸주간, 목욕탕, 노점, 작업장, 여관, 칠일장 그 밖의 어떤 상거래 장소를 막론하고 당신들과 함께 가지 않는 곳이 없다. 당신들과 함께 밭도 갈고 장사도 하고 배도 타고 전투도 함께 치른다(Uobiscum milianus)”13
고 하였다. 로마 제 12 전격군단(legio XII Fulminata) 내의 그리스도인 병사들은 그 구체적 실례의 하나였다.14 (39.5)
 다음으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몬타누스주의로 돌아서기 이전인 기원 198-203년간에 내놓은「우상숭배론」(De Idololatria)15에서 전쟁, 군대, 군복무와 관련하여 무엇이라 하였는지를 분석하기로 한다. (40.1)
 「우상숭배론」에서 그는 “신자가 군복무를 할 수 있는가, 또는 이미 군복무에 종사하고 있는 자가-비록 신상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사형언도를 내려야할 위치가 아닌 하급 병졸이라 할지라도-군복무를 계속 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16 그런데 이 구절은 그 때까지 한 번도 언급된 일이 없었던 새 사실, 즉 이미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이 군대에 입대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는 위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40.2)
“하나님의 서약(Sacramentum)과 인간의 서약 사이에, 그리스도의 군기(軍旗)와 마귀의 군기 사이에, 빛의 병영과 어둠의 병영 사이에는 일치점이 없다. 한 영혼이 하나님과 가이사랴 즉,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17
(41.1)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주장하기를]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다녔고 아론이 조임쇠를, 침례 요한이 가죽 혁대를 차고 다녔으며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군대를 지휘했고 구약의 백성들은 전쟁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리스도인이 전쟁을 할 수 있는가? 안된다. 평화시대의 군인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치워버린 그 칼 없이 어떻게 군인 노릇을 할 수 있는가? 비록 침례 요한을 찾아 온 군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또 어떤 백부장이 신앙을 갖기도 했지만 그러나 후에 주님께서 베드로의 무장을 해제시킬 때 모든 군인들의 무장도 해제된 것이다.”18
(41.2)
 「우상숭배론」과 같은 시기에 나온「유태인 논박론」(Adversus Judaeos)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구약성서 이사야 2장 4절을 인용한 후, 옛 율법과 새 율법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41.3)
“옛 율법은 칼의 복수에 의하여 자신을 정당화하였다. 눈에는 눈으로 보상하고 범법은 처벌로써 보상하였다. 그러나 새 율법은 관대함을 강조하여 옛 율법에 나타난 칼과 창의 야만적 잔인성을 온유로 바꾸어 놓았으며 원수와 경쟁자에 대한 전쟁의 응징을 땅을 경작하는 평화의 행위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 . . 새 율법의 순종과 영적 할례의 행위는 평화스러운 순종의 행위를 통하여 나타난다.”19
(41.4)
 몬타누스주의로 전향하는 시기에 쓴「마르키온 반박론」(Adversus Marcionem, 208-213 A.D.)에서는 구약의 전쟁을 “보복의 법”(lex talionis)20으로 규정하면서 이미 지나간 구시대의 잔재로 몰아붙였다. 그는 “누가 칼을 가지고 이러한 결과들(즉, 진실, 온유, 공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전쟁의 통례적인 임무는 온유와 정의에 반대되는 속임과 사나움과 불의들이 아닌가”21라고 반문하면서 계속하여 말하기를 “그들(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전쟁하는 일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그리스도가 전쟁에 능한 자로서가 아니라 평화의 운반자로 약속되었음을 알 것이다”22라고 하였다.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