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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가 들어오기 이전의 인간에 대한 성경의 기사는 남녀가 선한[“좋은”] 상태에 있었다고 말한다. 창조주간의 매일은 “좋았더라”라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끝마친다(창 1:4, 10, 12, 18, 25). (288.1)
 그러나 여섯째 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후에 하나님은 “심히 좋았더라”(31절)라고 선포하셨다. 이렇게 선언한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서 절정을 이뤘을 뿐 아니라 인간의 창조에는 하나님의 배타적인 요소가 포함된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창조에 앞서 하나님의 엄숙한 회의가 있었다. 삼위 하나님은 한마음으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천명했다. 하나님의 포고를 통해, 지상의 창조된 질서를 “다스리라”는 명이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다 지상의 다른 피조물들에게도 적용되는 이중 축복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고 그들로 창조된 질서를 다스리게 하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영광과 존귀”로 관 씌웠다(시 8:5-8). 아담과 하와가 땅과 공중과 바다에 있는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었지만 창조주와 도덕적 및 영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야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올바르게(전 7:29), 곧 지성과 도덕적 및 영적인 선 그리고 창조주 및 동료 인간과 완전하고 조화로운 관계에 있어서 최고의 잠재력을 지닌 존재로 만들었다 그들은 악으로 기우는 성향이 없는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단순한 자동인형이 아니었다 그들이 창조주와 관계를 맺고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행동의 도덕적 원칙과 규준들에 계시된 창조주의 뜻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최고의 존경심에서 비롯된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였다. 자유로운 선택권이 주어진 것은 필연적으로 죄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책임과 의무를 지닌 피조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288.2)
 A. 하나님의 형상
 여타 모든 피조물 위에 있는 아담과 하와의 독특성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는 창조주의 선언에 드러나 있다. 어떤 신학자들은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을 구분지어, 전자는 타락 후에도 보존된 이성적인 정신과 자유 의지를 가진 타고난 은혜를 가리키고 후자는 타락 후에 잃어버렸지만 은혜로써 다시 얻게 되는, 성령의 생명을 지닌 본래적인 의를 말한다고 제안한다. (289.1)
 그러나 성경의 창조 기사에서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독특성을 말하는 가장 강한 표현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독특한 존엄성과 가치를 부여한다. 인간도 물질에 속하지만 물질을 초월하는 면을 지닌다. 인간도 피조물이지만 다른 피조물을 초월하는 면을 지닌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289.2)
 과연 무엇이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하고 있는지가 역사를 통하여 줄곧 신학적 논쟁의 주제가 되었고, 그리하여 다양한 해석이 제안되었다. 예컨대, 육체적인 닮음, 이성, 개성, 자유 의지, 이해력, 선택의 자유, 통치력, 인간 상호간의 관계, 다양성 속의 통일성(“남자와 여자”, 27절)등이다. (289.3)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무엇이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 곧 그로 말미암아 죄사함 및 하나님과 죄인의 화목이 가능케 되는 복음(고후 5:19)을 제시한다. 구원과 화목의 이런 과정을 통해 “옛사람”이 제거되고 “새사람” 곧 새로운 피조물이 창조된다 이 주제는 신약, 특히 바울의 글들에서 두드러진다. 바울은 이 새사람을 지식과 거룩함과 의가 새롭게 된 사람으로 말한다(골 3:10; 엡 4:21-24). 만일 이런 특성들이 구속 받아 회복된 존재의 형상이라면 하나님의 본래 형상은 궁극적이고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일부나마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지식과 거룩함과 의로 구성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289.4)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그분이 자신의 일부를 나누고자 하시는 존재와 관계들에서 나오는 이런 특성들로 이해할 수 있다 거룩한 것,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 의를 사랑하는 것, 사랑의 근거 위에서 살고 관계 맺는 것, 공정하고 의로운 것,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과의 조화를 선택하는 것, 창조적이며 창조주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 신적인 것에 속한 것을 포용하고 하나님의 뜻에 조화되지 않는 것을 피하는 것, 개인적으로는 독특하지만 집단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것, 곧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 같은 특성들이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된다. (289.5)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은 죄의 형상과 반대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는 삼위 하나님의 선언은 죄인으로서의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의 결과임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 존재를 하나님의 자녀, 곧 다른 어떤 피조물도 그분 안에서 누릴 수 없는 따뜻함과 친밀감과 성장을 갖는 지위로 정의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곧 사랑이 깊고 반응적이고 영속적이고 만족을 주는 관계가 하나님의 형상의 중심 개념이다. 죄의 영향으로 이런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 죄가 에덴에 침입함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틀어졌을 뿐 아니라 인간이 창조주를 거역하는 선택을 함으로 반역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반역으로 상실의 상태가 유발되었다. 그러나 그 상실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이미 인간을 그런 비상사태에서 구속하고 그분 자신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그분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엡 3:9-11;참조 창조 I. A. 12;인간 I. B.). (290.1)
 B.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고 그들과 그들의 후손을 위해 이중적인 운명을 계획하셨다. 먼저, 그들은 하나님을 우주의 통치자로 인정함으로 그분께만 전적인 충성과 예배를 드려야 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명령은 언제나 이것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290.2)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분께 전적으로 충성하라는 명령은 성경 전체에 스며들어 있으며, 하나님은 이를 지키기 위해 몹시 마음을 쓴다. 경배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께 그분이 마땅히 받을 만한 가치를 돌려 드리는 것이다. 즉 기꺼운 찬양, 무조건적인 순종, 절대적인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분은 어떤 경쟁자도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 첫째 계명은 인간 자신 외에 다른 외적인 신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아도 포함한다. 하나님을 최고의 통치자요 경배와 섬김의 유일한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아에게서 교만심과 허영과 탈선이 제거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자아를 자신의 신으로 삼으려는 욕망을 의도적이고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곧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고유하고도 적합한 유일의 관계를 위한 토대가 된다. 그것이 바로 참된 예배에 대한 에덴의 모델이며 예수의 명령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것, 모든 일을 그분의 관점에서 보고 그분과 상관없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분의 우선적인 일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 우선적인 일을 이루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하는 것, 자아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의 뜻과 길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위배된다. (290.3)
 둘째, 인간 가족은 창조된 질서를 다스려야 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 땅의 수호자로 두심으로써 최고 질서의 청지기직분을 세우셨다. 이런 직분의 위임은 인간 외의 피조물의 질서를 넘어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전 인간 가족 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낸다.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하나님의 명령은 인류를 세우고 계속 이어가는 데 창조적으로 참여하라는 초청이었다. 이런 행위는 인간 사이의 책임 있는 친교를 인식하고, 삼위 하나님(그들의 형상으로 사람이 창조됨) 사이에 존재하는 통일성과 모종의 유사성을 지닌 인간의 연합을 촉진한다. (290.4)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창조주와 창조성에 있어서 유사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런 유사성에서 흘러나오는 경배와 친교에 대한 책임성을 가리킨다 게다가 그것은 전 인류를 아우르는 친교로까지 확대된다. (290.5)
 C. 죄와 하나님의 형상
 그러나 역사와 경험은 하나님의 형상에 의도된 이상이 산산 조각났음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예컨대 이성이나 지성)를 행사하는 인간은 창조적인 힘을 발휘하여 하늘에 도달하려고 발돋움하고 삶의 신비를 깊이 탐구하지만, 창조주 경배 및 인간의 친교와 평등과 존엄성의 요구와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형상 속에 들어 있는 대책 아래서 살기를 저항한다. 원자를 쪼개 온 도시를 밝히는 인간 존재가 같은 원자를 사용하여 도시를 파괴한다. 어떤 이는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미지의 병마를 잡는 치유법을 계발하기 위해 온 생애를 바치지만, 다른 이는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려는 저열한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백만을 살상하는 심각성을 잠깐이라도 고려하지 않는다. (290.6)
 하나님의 형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인간이 그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죄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엄청난 타락을 유발한 것을 부인할 순 없지만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다. 즉 그것이 손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면, 인간의 이성과 창조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며 역사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는, 타인을 위한 사랑과 희생의 사례들은 불가해한 것이 된다. 잃어버린 동전에 관한 예수의 비유(눅 15:8-10)는 타락 후의 하나님의 형상이 지니는 위치를 말해주는 열쇠를 제공한다. 동전은 잃어버림을 당해 먼지 속에 묻혀 있었으나 그것은 여전히 통치권을 나타내는 명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동전이 잃어버림을 당한 상태에서도 그 명각을 지니고 있었듯이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 존재는 죄 때문에 잃어버림을 당했다. 인간은 창조주에게서 분리된 삶을 살며 죄의 세력과 영향으로 손상 받았지만,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 형상은 모든 인간의 영혼 속에 잠재되어 있다. (290.7)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이렇게 잠재되어 있어도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죄의 유산의 막대한 힘을 감소시키진 못한다. 역사와 경험의 증거를 살펴보라. 엄청난 무질서, 계속되는 혼란, 끊이지 않는 사회적 동요, 집단적 증오심의 병리 상태가 인간 사회를 꼴짓고 있다. 영혼 속에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상호 충돌하는 충동과 야망과 정욕 사이에 투쟁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된 인간(시 8:5)은 곧잘 짐승의 수준으로 떨어지곤 한다. (290.8)
 이런 보편적인 곤경은 무엇 때문인가? 자연주의자들이 지지하는 것처럼 유전과 환경 탓인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적 및 경제적 착취 탓인가? 진화론자들이 강변하는 것처럼 결정론의 불가피한 과정 탓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인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성경은 현실 그대로 인간을 바라보고, 인간의 이런 곤경을 죄 때문에 이르러 온 타락의 상태로 주저함 없이 진단한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친교 및 동료 인간과의 조화로운 관계라는 고상한 근거 위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가 침입함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친교 사이에 끼어들어 인간공동체 성원 사이의 관계를 망쳐놓았다. (290.9)
 현대인들은 “죄”라는 단어에 의미를 거의 두지 않지만, 죄의 실재는 거부할 수 없다. 성경은 인간의 곤경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인간존재에게 그들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병폐를 죄로 추적하라고 요청한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야훼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사 1:4). (2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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