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제단으로의 부르심 제8부 제단으로의 초청 제45장 대속죄일의 심판은 확신을 준다
 나와 아내는 타호(Tahoe) 호수 근처의 시에라 산(Mt. Sierra)에 배낭여행을 다녀오던 중이었다. 우리는 다음 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이상 놀 수 없을 때까지 냇가에서 놀았다. (409.1)
 결국 어둑어둑해진 때에 짐을 꾸려서 차에 실었다. 잔뜩 긴장한 채 칠흑 같은 어둠 때문에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수천피트나 되는 엘리펀트 백 마운틴(Elephant Back Mountain: 코끼리 모양 산)의 능선에서 차를 운전했다. 그러나 온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계속 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409.2)
 해발 9,000피트 산 위에 쉴만한 곳은 없었고 사나운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바람이 마치 화물열차 소리처럼 계곡을 쓸고 올라왔다. 우우우우쉬! (409.3)
 우리는 겨우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갔지만 코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무서워 떨고 있었다. 바람 때문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소리가 퓨마의 소리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손전등을 켜서 금방이라도 무슨 소리인지 확인해 볼 수 있었으나 두려움이 그녀의 몸을 완전히 마비시켰기 때문에 손전등조차 집어들 수 없었다. (409.4)
 아내가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손전등을 켜서 소리 나는 곳을 비추었다. 우리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작은 쥐를 볼 수 있었다. (409.5)
 그녀는 매우 다행스러워 했다. 바로 그것이다. (410.1)
 쥐를 본 후 그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가 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한 근처에 큰 육식동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었다. (410.2)
 그녀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똑같은 소리가 이제는 그녀에게 평안을 준 것이다. 차이점은 한줄기의 빛이 두려움의 원천에 비췬 것이었다. (410.3)
 하나님의 심판이 당신에게 평안과 확신을 주는가? 아니면 당신을 두려움으로 마비시키는가? (410.4)
 심판은 두려운 것이다. 심판 받을 때 당신의 삶은 조사되고 평가될 것이다. 21세기의 초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평가들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분노하는 경향이 있다. 사울 벨로우(Saul Bellow)는 오늘날의 이런 감정을 잘 표현했다. “소크라테스는 ‘평가되지 않은 인생은 가치 있는 삶이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바꾸었다. ‘그러나 평가된 인생은 당신을 죽고 싶게 만든다’(New York Times, 1997. 6. 9; Time, 1997. 6. 9. 15에 인용). (410.5)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속으로 심판 장면을 떠올린다면 어떤 그림을 연상하게 될지 생각해보자. 왕 중의 왕이신 분 앞에 유령 같은 영혼들이 최면에 걸린 것처럼 줄지어 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온 우주앞에 벌거숭이처럼 드러난다. 우리의 운명이 하늘의 궐석재판에서 결정된다. 자신을 위해 변호할 기회조차 없다. 거기에는 2등이나 A-가 없다. 오직 구원 또는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410.6)
 이 시나리오가 약간의 성경적 진리를 반사하기는 하나 그것의 비문맥적이며 비인격적인 모습은 지옥 불만큼이나 강한 호소력을 지녔기 때문에 당장은 교회 안의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다. (410.7)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심판을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인 것으로 보도록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얻는 복음과 반대되는 율법주의이다(엡 2:8). (411.1)
 우리가 심판 때에 신실하다는 판결을 받지 못하면 우리가 받았던 용서는 무효가 된다는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이 구원받고 용서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불확실한 상황으로 이끌어 낙담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411.2)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선한 행위로 하나님을 옹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성을 얻으시는 것이 마치 우리의 도움에 달려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들린다. (411.3)
 하늘에서 심판이 진행되지만 우리가 언제 심판을 받을지 알 수는 없다. 만약 우리의 심판이 예약이 되어 있다면 적어도 좋은 인상을 주려고 정확한 때에 최고의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411.4)
 어떤 사람들은 조사하는 과정 때보다 심판의 끝에 가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조사가 끝나면 모든 상황은 정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이후에 더 이상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백성들은 그리스도 재림하기 직전에 온전히 죄를 짓지 않고 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죄를 짓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숨을 쉬지않고 살 수 있다는 사상처럼 낯설고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 (411.5)
 하나님께 최고의 존경을 바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거룩한 두려움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나(창 22:12) 동시에 하나님의 친구였다(약 2:23). (411.6)
 그러나 우리가 선입견을 가지고 하나님을 우리를 심하게 괴롭히는 독재적인 폭군으로서 두려워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에서 그분을 향한 사랑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412.1)
 우리가 앞에 묘사한 것처럼 부정적 면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있다. 첫째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정죄하거나 하나님을 미워하면서 바리새인적인 자기 의의 옷 속으로 숨는 율법주의와 편집증으로 불구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여러 모습과 그분의 구원의 계획을 생각하고 말하기는 하지만 심판을 회피하고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성경 절들을 무시함으로 심판을 부인하며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선택은 성경의 심판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맥락에서 균형지고 실제적인 이해를 얻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다. (4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