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맺는 말 제36장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의 영적 경험의 보호
 엘렌 화잇은〈각 시대의 대쟁투〉에서 어떤 이들이 매우 두렵게 여기는 진술을 하였다. (439.1)
 그와 같이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기를 원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아니한 오늘날 죄를 슬퍼하고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심각하고 철저하게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허(浮虛)하고 경박한 정신은 반드시 버려져야 한다. 지배권을 장악하고자 일어나는 악한 경향들을 이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 앞에는 반드시 격렬한 투쟁이 있다. 준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할 일이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구원을 얻지 않는다. 사람의 순결과 헌신이 다른 사람의 그런 특성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 없다∙∙∙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1) (439.2)
 이 글은 우리가 하나님의 철저한 조사를 통과하려면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이러한 진술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엘렌 화잇을 율법주의적이며 심판에 대하여 불필요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성경도 우리의 행동이 심판을 받는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중에 가장 두려운 말씀은 예수께서 직접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바울은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니라”(히 10:26, 27).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439.3)
 엘렌 화잇과 성경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성경의 도덕적 교훈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 삶의 죄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주의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440.1)
 조사심판의 교리는 우리의 삶이 평가를 받을 것이니 우리가 하는 일에 주의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440.2)
 하나님은 우리 편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개념을 복음으로 균형 잡아야 한다. 심판의 표준에 이르는 자는 그리스도의 의가 그들을 막아주기 때문에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자신의 성취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나 품성의 결점을 발견하게 될 때에,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내치게 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 중 아무도 재림 전에 자신을 죄 없는 자라고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우리의 완전은 항상 우리를 막아주는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한 것이다. 엘렌 화잇은 〈정로의 계단〉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 들여진다.”2) 그리스도인들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들 중 하나는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의 안에 반드시 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린다.”(롬 5:1)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는 것을 아는 지식 속에 참으로 큰 평안이 있다. (440.3)
 심판의 주요 질문은 우리의 죄스러움을 막기 위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가 받아들였는가? 이다 하나님의 법에 충성된 모든 자들은—그분을 순종하고 그분을 순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리스도의 의로 덮여진다. 그들은 면밀한 조사를 통과할 것이다. 우리는 조사심판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441.1)
 심판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소하는 이는 사단이다. 그는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이다(계 12:10). 그는 조사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삶의 기록을 지적하며 품성의 결점과 우리 구속주께 욕 돌린 그리스도와 다른 우리의 모습을 들추어낸다”3) 사단은 궁극적인 완전주의자다. 우리가 흠 없는 기록을 보유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집한다. 그와 반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참회와 믿음을 보이시면서, 우리의 용서를 요구하시며,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두 손을 드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을 잘 압니다. 나는 그들을 내 손바닥에 새겼습니다.”4’) 심판 때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의 의이며, 우리의 의는 결코 아니다. (441.2)
 심판의 복음은 구원의 복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계시록 14장 6, 7절은 복음과 심판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의 종말적 선포로 묶었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는 천사는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진 동일한 천사다. (441.3)
 조사심판의 교리는 심판 때에 하나님은 우리 편에 계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스러움을 덮으시려고 그리스도의 의를 제공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441.4)
 죄와 고통은 끝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적대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하늘에서 첫 반역을 조장한 자는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충성하는 소수의 무리를 자기 뜻대로 주무를 수 없어 화가 났다. 다니엘 7장 25절은 그의 반역이 이 땅에까지 미친 것을 성도를 공격하는 작은 뿔로 묘사한다. 계시록 12장 17절은 용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진노하였고, 그들과 싸울 태세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계시록 13장 7절은 다니엘의 작은 뿔을 “성도와 더불어 싸우고 이길” 권세를 받은 짐승으로 나타낸다. 이것은 대쟁투의 주제다. 본서의 앞 장들에서 논의한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조사심판이 작은 뿔에 불리하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판결을 내릴 것을 확인한다(단 7:22). 계시록은 그러한 호의적 심판의 소리를 울린다. 이렇게 말한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계 16:5, 6). (442.1)
 다니엘은 언젠가 세상을 휘어잡던 악의 세력이 무너질 것을 말한다(보라, 단 7:11, 26) 계시록 20장은 모든 죄와 죄인들을 멸할 불 못을 묘사한다. 다른 한편 다니엘은 “천하의 왕국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 곧 성민에게 주어진”다고 확인한다(단 7:27). 요한계시록 21장22장“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왕국을 자세히 묘사한다(계 21:4). (442.2)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으로부터 우리는 선과 악의 대쟁투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독자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하늘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사심판은 이 투쟁을 종결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죄의 결과로 우리가 겪는 아픔과 고통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독자나 독자의 친구에게 왜 고통을 허락하셨을까 의문이 생길 때에 조사심판을 생각함으로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바란다. (442.3)
 조사심판의 교리는 우리가 악의 최후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443.1)
 재림교회의 역사
 본서의 앞장들을 통하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역사 속에서 조사심판의 교리가 어떻게 발생하였는지를 설명하였다. 밀러의 재림 운동과 1844년 10월 22일 대 실망으로 그 운동이 무너진 것이 우리 이야기의 주요한 내용이다. 개신교들을 포함한 세상은 비웃으며 조사심판은 대 실망의 망신을 말로 설명하고 넘어가려는 약삭빠른 수작에 불과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윌리엄 밀러의 운동과 관련된 사실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 나는 하나님께서 밀러가 그렇게 설교를 하도록 인도하셨고, 대 실망이 우리의 운동을 일으키실 것을 미리 아시고 그것을 허락하셨다고 깨닫게 되었다. 세계 역사를 통하여 위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십자가는 최고의 예가 된다. 그리고 대 실망은 참으로 커다란 위기였다. (443.2)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재림교회의 비극들 중 하나는 많은 교인들이, 어쩌면 대부분이, 이 역사를 겨우 희미하게만 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과거를 창피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 역사가 없다면 우리는 미국의 종교계에서 또 하나의 선량한 기독교 교파로만 존재할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4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