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1장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만물의 창조자이신 ‘그 말씀.’ 요한복음 서문이 정관사 ‘호’(ὁ)를 사용하여 ‘그 말씀’ ‘호 로고스’(ὁ λόγος)라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17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이미 그 능력을 실증해 보인 ‘그 말씀’이시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 골로새서 1:17은 만물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다.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것은 우주적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탁월성에 대해서 말했다.18 만물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운명도 말씀에 달려 있다. (22.3)
 창조—재창조—말씀. 태초에 열 개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 말씀 하나님으로 세상에 오셨다. 새 하늘에 들어갈 사람은 거듭나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요 3:5). 거듭남은 창조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며 이것을 재창조라고 한다. 창조가 말씀으로 이루어졌듯이 재창조도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기별에서 주님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영접하라고 하신다(계 3:20). 말씀을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분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재창조의 역사, 부흥의 역사를 이루게 한다. (23.1)
 땅은 식물을 내라, 구원을 솟아나게 하시는 주님 (23.2)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세기 1:11-13
(23.3)
 땅이여 열려서 구원의 열매를 내라. 이사야는 땅에서 솟아나는 식물을 구원의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 땅에게 식물을 내라고 하신 창조주는 바벨론의 포로가 된 그의 백성들을 위해 하늘을 명하여 공의를 뿌리고 땅을 명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는 새 창조의 기적을 행하실 것이었다.19 (사 45:8 난외주) (23.4)
 성경은 메시아를 구원을 가져오는 식물로 표현한다. 인류를 위해서 이 땅에 탄생하실 다윗 계보의 메시아는 이새의 줄기에서 난 한 싹이고(사 11:1), 고난 당하는 여호와의 종은 주 앞에서 자라난 연한 순과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이다(사 53:2). 창세기 49:11은 유다와 관련된 메시아 예언 속에 포도나무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예수님은 자기를 구원의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다(요 15:1, 4-5).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 12:24, 32-33). (24.1)
 각기 종류대로, 하늘에 속한 자에게 불멸의 몸을 입히시는 주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창세기 1:11-13).
(24.2)
 생물 창조의 키워드. 생물 창조의 키워드는 ‘종류대로’이다(창 1:11-12, 21, 24-25). 하나님은 땅과 물에서 그곳에서 서식할 수 있는 생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종류를 의미하는 ‘민’(מִין)은 동식물을 세분화하여 각각의 것이 어느 계통에 속했는가를 구분하는 것이다. 각 생물체는 그것이 어떤 종류에 속했는가에 따라 생김새와 삶의 양식이 달라진다. 인간은 다른 종류의 생물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특별한 존재이다(창 1:26-27). (24.3)
 운명을 결정하는 질문: 나는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종류대로’ 된 창조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와 연계된 성도의 부활에 적용한다. 하나님은 “각 종자에게(σπέρμα 스페르마 ‘씨’) 그 형체(σῶμα 소마 ‘몸’)”를 주신다(고전 15:38). 인간과 동물은 모두 육체(σάρξ 사르크스)를 가진 존재지만 서로 다른 종류의 육체를 가진 별 개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운명은 다르다. 모든 육체는 죽을 수 밖에 없다. 인간도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각기 종류대로’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땅에 속한 종류가 될 것인가, 하늘에 속한 종류가 될 것인가? 땅에서 난 육체를 따라 썩어 없어질 것인가, 하늘에 속한 육체를 입고 영생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 달린 질문이다. (25.1)
 경배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세기 1:16 (25.2)
 해와 달은 하나님이 세우신 등잔. 유일신 하나님을 창조주로 섬기라는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다신교 세계에 도전장을 낸 폭탄선언과 같다. 그들이 섬겼던 해와 달은 그 이름 대신에 두 큰 광명체라고 기록되었다. ‘광명체’ ‘마오르’(מָאוֹר)는 발광체와 등잔과 빛을 뜻한다.20 해와 달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주야를 밝히는 일을 하는 등잔, ‘마오르’(מָאוֹר)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인간 운명의 주관자가 아니다. 창조 기사는 우주의 그 어떤 세력도 하나님께 도전장을 낼 수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경배를 받아야 할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 뿐 이다. (25.3)
 큰 바다 짐승을 창조하신 주님.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1). 큰 바다 짐승은 고대 근동 신화 속의 두려운 바다괴물인 ‘탄닌’(תַּנִּין)이다. 고대 근동인들이 신적 존재로 두려워하던 자연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하나님이 지정하신 위탁물들이다(창 1:28).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26.1)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 인간을 존귀하게 하신 주님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6-27).
(26.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를 받은 특별한 존재이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26.3)
 다윗은 시편 8편에서 창조 세계를 바라보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4-5). 개역성경은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다고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본문 ‘메아트 메엘로힘’(מְּעַט מֵאֱלֹהִים)의 문자적 의미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이다. 이것은 시편 기자가 창세기 1:26-27에 근거한 것이다.2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는 큰 영광과 존귀를 받았다. 이 영광은 비교급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한하신 창조주—왕의 도덕적 성품을 반사하며 창조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 같은 동역자, 하나님의 왕족으로 창조되었다.22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영광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보다 더한 영광은 하나님이 죄로 연약해진 우리의 몸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26.4)
 주님의 성육신, 베들레헴 탄생, 십자가의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 등 구속사역은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마지막을 아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십자가의 빛에서 볼 때 무한한 희생적 사랑이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 (27.1)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