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1장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26
(27.2)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구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암시하고 있는 간접적인 표현들을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27.3)
 복수형 신명(神名)이면서 단수 동사를 갖는 엘로힘(אֱלֹהִים). 엘로힘은 성경에서 처음 만나는 신명(神名)이다(창 1:1). 구약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엘로힘은 ‘엘로아’(אֱלוֹהַּ) ‘신’의 복수형이지만 ‘신들’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 한 분을 가리킨다. 유일신 하나님을 의미할 때 복수형 명사 엘로힘은 단수 동사를 갖는데 이런 예는 셈어에서 엘로힘에만 있는 특별한 현상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사상이 이 신명(神名)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엘로힘은 구약에 2, 602회, 창세기에 219회가 사용되었다. (28.1)
 하나님이 사용하신 ‘우리’ 구절.

   (1) 창조 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나아세 아담 브찰메누 키드무테누, 창 1:26)

   (2) 바벨탑 사건 때. ‘우리가 내려가서(נֵרְדָה 네르다)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우리가 혼잡하게 하여(נָבְלָה 나블라)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 11:7).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바벨탑 건축자들의 시도를 무산 시킬 때 하나님이 ‘우리가’라고 두 번 말씀하셨다. (28.2)
 참고 문헌
 1. 박철우, 구약성서의 구조와 신학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4), 11쪽..

 2.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예수님과 자기의 밀접한 관계를 가리키기 위해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말했다. 요 13:23; 19:26; 20:2; 21:7; 21:20.

 3. D. A. Car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Leicester, England; Grand Rapids, MI: Inter-Varsity Press; W.B. Eerdmans, 1991), 114쪽.

 4. P.J. 악트마이어, J.B. 그린, M.M. 톰슨,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216쪽.

 5. Paul N. Anderson, “Word, The,” NIDB, 5:896쪽.

 6.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 ‘하늘에서 내려온 자’(요 3:13; 비교, 요 6:42), ‘하나님에게서 온 자’(요 6:46),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요 8:42),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광을 누리신 분이다(요 17:5, 24).

 7. 칠십인역은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와 구속의 문맥 속에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한 말, ‘내가 그니라’(אֲנִי הוּא 아니 후)라는 구절을 ‘에고 에이미’(ἐγὼ εἰμί)로 번역하였다. 신 32:29; 사 41:4; 43:10, 13; 사 48:12.

 8. 그분은 ‘창조의 근본’(계 3:14. 참조, 계 22:13),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마 1:23, 한글킹제임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 구주’(유 25, 한글킹제임스),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다(요일 5:20).

 9. 악트마이어, 앞의 책, 217쪽.

 10. ‘יְלֵל,’ HALOT, CHALOT. ‘예쉬몬’(יְשִׁמֹן)은 ‘불모지, 광야’를 뜻한다.

 11. Robert G. Bratcher and Howard Hatton, A Handbook on Deuteronomy, UHS, 539쪽.

 12. 우가릿어에서 rḥp는 날개 달린 여신에게 적용해서 ‘존경하다(to honor)’는 뜻을 갖는다. 시리아어에서 reḥep‘(알을) 품다, 보호하다’는 뜻을 갖는다. ‘라하프’(רָחַף) 동사는 구약에 3회 등장한다. 창 1:2; 신 32:11; 렘 23:9. V.V. Van Pelt, W.C. Kaiser, Jr. “רָחַף,” NIDOTTE, 3:1098쪽. ‘라하프’(רָחַף) 동사를 ‘(그 새끼를) 날도록 부추기다’라고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역을 따라 ‘그 새끼를 날도록 가르치다’고 한 현대영어역(TEV)의 번역은 타당성이 매우 적다. 앞의 책, 541. 새미국표준역(NAS)은 ‘hovers’로 번역했다. ‘hover’‘곤충, 새, 헬리콥터 따위가 하늘에 멈춰 떠 있다,’ ‘~의 곁을 맴돌다’는 뜻이다.

 13. 메리데스 G. 클라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산, 목적인과론의 관점에서 본 우주론에 관한 언약 이야기, 이수영 옮김 (서울: 개혁주의신학사, 2010), 61쪽.

 14. Andreas Köstenberger, John, BECNT, 41쪽.

 15. 이 말은 칠십인역을 포함해서 성경 전체에 8회 등장하는데, 창세기에서는 창세기 13:12에 한 번 등장하고 신약에서는 오직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만 등장한다. 창 13:12; 삿 5:17; 8:11; 요 1:14; 계 7:15; 12:12; 13:6; 21:3.

 16. 스케네(σκηνή)는 신약에 20회 등장하여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쓰였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짓고자 했던 ‘초막’(마 17:4; 막 9:5; 눅 9:33; 불의한 재물로 얻게 된 ‘처소’(눅 16:9), 몰렉의 ‘장막’(행 7:43), 증거의 ‘장막’(행 7:44), 다윗의 무너진 ‘장막’(행 15:16), 모세의 ‘장막’(히 8:2, 5; 9:2-3, 6, 8, 21; 13:10),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장막’(히 9:11), 아브라함이 살던 임시 거처로서의 ‘장막’(히 11:9), 짐승이 훼방하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장막’(계 13:6), 하늘의 ‘장막’ 성전(계 15:5),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인간과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장막’(계 21:3). 스케네(σκηνή)의 동의어인 스케노스(σκῆνος)는 영혼이 거주하는 연약하고 일시적인 거처인 몸을 상징하는 용법으로 고후 5:1, 4에 단 두 번 사용되었다.

 17. 한글 성경은 요한복음 1:1‘호 로고스’(ὁ λόγος, 그 말씀)를 ‘이 말씀’으로 번역했다. 요한의 ‘로고스’(λόγος, 말씀) 개념이나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 진리와 잘못과 같은 상반되는 개념들을 그리스의 이원론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려는 사조가 과거에 있었다. 1947년 이후로 등장한 사해사본들은 요한복음의 이원론과 유사한 것들이 주전 이세기 경의 팔레스타인 유대교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전통 속에 요한복음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사상들을 헬레니즘이나 유대교 중 전적으로 어느 한쪽에 속한 것으로 보는 태도는 학자들 사이에서 거의 사라졌다. ‘요한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떠올리게 하는 표상과 범주들을 받아들인 것은 그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악트마이어, 현대적인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신약성서개론, 249-250쪽.

 18. 존 스토트,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서울: IVP, 2002), 85쪽.

 19. 이 예언은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멸망시킴으로 성취되었다. 고레스는 주전 530년 죽기까지 애굽을 제외한 근동 전 지역을 지배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후에 자기가 출생하기 일 세기 전에 자기에 대해 기록한 이사야의 예언(사 44:28; 45:1-5)을 읽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도시와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다. F. Josephus, ‘The Antiquities, 11.2(5),’ The Works of Josephus: Complete and Unabridged, William Whiston 옮김 (Peabody, MA: Hendrickson, 1987), 286쪽.

 20. ‘마오르’(מָאוֹר)는 ‘발광체’(창 1:14-16), ‘등잔’(출 25:6; 27:20; 35:8, 14, 28; 39:37; 레 24:2; 민 4:9, 16), ‘빛’(시 74:16; 겔 32:8)을 뜻한다. ‘오르’(אוֹר)는 ‘빛’이다(창 1:3; 출 10:23).

 21. Robert Davidson, The Vitality of Worship: A Commentary On The Book Of Psalms (Grand Rapids, MI; Edinburgh, UK: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Handsel Press, 1998), 39쪽; Peter C. Craigie, Psalms 1-50, WBC, 108쪽.

 22. Gerard Van Groningen, Messianic Revelation i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90), 99-105쪽. 인간은 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섭정과 청지기로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을 부여 받았다. 위의 책, 101쪽 각주 13 참조. (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