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속의 예수 그리스도 제 1 부 창세기 속의 예수 그리스도 창세기 1장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17.1)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과 인간과 역사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선포한다. 창세기 1장의 선포는 ‘성서신학의 기관차’ 역할을 한다. ‘이 본문에 선포되어 있는, 창조와 역사와 해방과 구원의 하나님,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절대 하나님, 인간과 생태계 전체에 대한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선포는 정경화된 성서 안에서 출애굽 기사의 바탕이 되며 이것은 예언서에 나타나며, 신약에서 다시 결정적 의미로 전개 선포되는 것이다.’1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 말씀으로 카오스의 세상을 보시기에 심히 좋은 세상으로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 하나님이 되어 인류를 찾아오셨다.(창 1:31) 창세기 1:1‘태초’는 복음의 ‘시작’으로 읽혀져야 한다. (17.2)
 태초에, 복음의 시작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17.3)
 태초에. ‘태초에’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레쉬트’(בְּרֵאשִׁית)는 그리스어 칠십인역에 ‘엔 아르케’(ἐν ἀρχή)로 번역되었다. ‘아르케’(ἀρχή)는 ‘시작,’ ‘기원’을 뜻한다. 사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침례 요한에게 침례 받은 것을 복음의 ‘시작’ ‘아르케’(ἀρχή)로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은2 창세기 1:1의 시작 구절로 요한복음을 시작하여 복음의 ‘기원’ ‘아르케’(ἀρχή)를 창조 전으로 앞당겼다.3 (17.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18.1)
 먼저 계신 말씀 하나님이신 주님. 요한복음 서문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요한의 주석’이다.4 요한은 맨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신성, 선재성,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께서 함께 창조 사역을 하신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5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기 전에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6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다.(요 8:58) ‘내가 있느니라’(I AM)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ἐγὼ εἰμί)는 불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르쳐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다.7(출 3:14)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점을 신약성경은 확고하게 지지한다.8 그분은 이 땅에서 구속사업을 마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자이다.(요 13:3; 16:28) 성육신, 공중 봉사, 십자가, 부활, 승천 등은 우주의 창조주인 말씀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하신 일의 우주적 드라마의 문맥 안에서 읽혀져야 한다.’9 복음은 지구 뿐 아니라 우주를 위한 것이다. (18.2)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성육신의 신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2
(19.1)
 이스라엘을 덮으신 하나님. 창조 전의 세계는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었으나 창조주 하나님이 임하실 때 어떤 곳이라도 살만한 곳이 된다. 창세기 1:2‘혼돈’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명사 ‘토후’(תֹּהוּ)와 ‘운행하시니라’로 번역된 동사 ‘라하프’(מְרַחֶפֶת 메라헤페트, ‘운행하시니라’)가 구속의 이미지를 갖고 모세의 노래가 기록된 신명기 32:10-11 속에 등장한다. (19.2)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신명기 32:10-11
(19.3)
 10절에서 ‘토후’(תֹּהוּ)는 ‘광야’로 번역되었다. ‘짐승이 부르짖는’으로 번역된 ‘예렐 예쉬몬’(יְלֵל יְשִׁמֹן)은 본 절에만 등장한다. 이것은 광야에서 들리는 환각적인 소리나 울부짖는 소리를 뜻하며10 사는 사람이 없는, 황폐한, 음산한 지역을 표현한다.11 (19.4)
 11절에서 ‘라하프’(רחף)는 어미 독수리가 마치 새끼들 위에서 너풀거리며 보호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라하프’(רחף) 동사는 (알을) 품다, 날개치다, 움직이다는 뜻을 갖는다.12 새끼 위에 너풀거리는 독수리처럼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 세키나의 영광으로 그들 위에 임재하셨다. (20.1)
 ‘이스라엘의 출애굽—구속은 재창조의 사건이었다.’ 모세가 의도적으로 창세기 1:2에서만 사용된 두 개의 용어를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암시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우주 창조에서 성령께서 하신 일을 세키나 구름이 이번에는 구속의 의미를 가지고 모형론적으로 반복한 것이다.’13 (20.2)
 마리아를 덮으신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기 전에 성령,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동정녀 마리아를 덮은 모습은(눅 1:35) 창조 전에 하나님의 영이 물 위에 운행하셨던 것과 유사한 이미지이다. ‘어둠’의 세상에 오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것(요 1:5, 14), 곧 ‘성육신은 창조와 동일한 중요성을 가진 사건’이다.14 (20.3)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거하다’로 번역된 ‘스케노오’(σκηνόω)의15 ‘장막을 치다’ 명사형 ‘스케네’(σκηνή)는 ‘장막’ 혹은 ‘성막’이다.16 그리스도는 인간 속에 하나님이 쳐 놓으신 성막이다. 옛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영광 뿐 아니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성막 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출 40:34-35), 우리는 육신으로 하늘 영광을 가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담대히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20.4)
 창조—재창조—성령. 태초의 물 위에 임하셨던 성령의 모습은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모형으로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우리에게 재창조의 길을 열어 놓았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다. 거듭나지 않는 한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다.(요 3:3, 5). (21.1)
 와요메르 엘로힘, 만물을 붙들고 계신 ‘그 말씀’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3-5).
(22.1)
 열개의 말씀. 창세기 1:3-31‘하나님이 이르시되’를 뜻하는 히브리어 ‘와요메르 엘로힘’(וַיֹּאמֶר אֱלֹהִים)이 나올 때마다 있으라, 나뉘라, 내라, 번성하게 하라와 같은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fiat) 나왔다. 열 개의 ‘와요메르 엘로힘’(וַיֹּאמֶר אֱלֹהִים)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3절), 궁창(6절), 육지(9절) 식물계(11절), 궁창의 광명체(14절), 수중 생물과 조류(20절), 육지 동물(24절),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26절), 청지기인 인류에게 주시는 문화명령(28절), 건강식품에 대한 원칙(29절) 등이 존재하게 했다. 열 개의 말씀은 물질계의 존재 근거가 된다. 오경에서 도덕법인 십계명을 ‘열 개의 말씀,’ ‘아세레트 핫드바림’(עֲשֶׂרֶת הַדְּבָרִים ‘십계명’)이라고 부른다(출 34:28; 신 4:13; 10:4). 물질세계와 도덕세계는 모두 하나님이 발하신 열 개의 말씀 위에 서 있다.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