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개념은 마태복음에서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는데, 그리스도는 보통 사람들을 위해 많은 비합법적인 활동들을 성전에서 수행하므로
“안식일을 범하”(
12:5)지만 죄가 되지 않는(
12:5) 제사장들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안식일에 성전에서는 곱절이나 되는 제물들로 인해 할 일이 증가되었다(
민 28:9-10).
94) 안식일이 되면 더 열심히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에게
“죄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이미 주목했듯이 그 답은 불쌍한 죄인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안식일 사역의 구속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본질적으로는 그 계명에 의해 분명히 정죄되는 활동들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것이 죄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백성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안식일의 목적을 충족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그 날에 하나님의 제사 규례를 이행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제사장들에 의해 수행된 봉사를 예를 들어 그의 제자들과 자신의 행위를 옹호할 수 있었는가? 그 답은 계속된 그리스도의 진술 속에서 발견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 12:6).
95) 성전과 그 봉사의 상징적 기능은 이제 성취되었고 진정한 대제사장의 봉사로 대체되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정말이지 되도록이면 안식일에 그리스도 역시 그의
“희생제사,” 즉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그의 구호봉사를 더 증강하셔야 했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의 추종자들, 즉 새로운 제사장들에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하셔야 한다.
요한복음 7:22-23에서 그리스도께서 이와 동일한 개념을 표현하신 것을 우리는 발견한다.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할례의 구속적 행위로 말미암아 새로 탄생한 자들에게 언약의 축복을 베풀어주었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안식일에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일하셔야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안식일 신학을 설명하기 위한 정당한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을 성전과 그 봉사에서 발견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의 구속적 기능은 그의 메시아적 사명과 안식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목적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원하시는 사업과 안식일 목적을 동일시하므로 그 계명이 가지는 궁극적인 신의 목적, 즉 하나님과 인간과의 친교를 드러내신다.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과거 창조를 기념하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를 보살펴주므로 구원의 축복을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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