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저자는
시편 95편에서
“저희(이스라엘 민족)와 같이 우리도 ∙∙∙ 받은”,
“믿음”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안식일 안식의
“복음”(
4:2)이 지닌 보편적인 구속의 영역을 증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눈에 띄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선, 그는
11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맹세 부분을 놓고 다음과 같이 추리한다. 즉,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구절은 하나님께서 안식일 안식을 약속하셨지만 광야 세대가 그들의 불순종으로 [안식의 약속의 땅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4:4; 참고
3:16-19).
122) 그는
“그러므로 그곳에 들어갈 자들은 남아있다”(
4:6)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그는 하나님의 안식일 안식이 여호수아 때의 이스라엘 민족들이 안식의 땅에 들어갔던 그 이후 세대에도 안식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어 설명한다. 왜냐하면
“오랜 후의 다윗”(
4:7)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팍케 말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 4:7, 참고,
시 95:7). 안식일 안식의 복음이 최초로 선포된 이후, 더욱이 다윗의 때에도 하나님께서
“오늘날”이라고 말씀하시며
“다시” 그 분의 약속을 거듭 강조하신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안식일 안식(σαββατισμός)에 들어가는 약속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4:9).
123) 마지막으로, 폰 라트(G. von Rad)가 설명했듯이, 저자는
“시편이 하나님의 안식일 제의를 재차 강조한 그 ‘오늘날’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분명해졌다”라는 의견을 내비친다(
4:7).
124) 이러한 일련의 추론을 통하여 그는 안식일이 세 가지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게 된다. 첫 번째는 창조의 완성을 기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안식의 땅에 들어가는 약속과 그것의 일시적 실현을 상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다니엘루(J. Danielou)가 언급한 것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곱째 날의 또 다른 안식일(
sabbatismos)을 예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성취되고 실현되었다.
125) 히브리서의 저자는 창세기와 시편 두 본문의 병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미래의 안식일 안식으로 예정된 창조와 구원의 온전한 목적에 참여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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