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증 1. 확증의 기초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22.3)
 하지만 성경은 오직 믿음에 대해서는 분명하다. 그것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독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22.4)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이 교회적 권위에 의해 해석되고 변화하는 문화에 의해 각색되어야 할 율법과 규정의 책이 되도록 의도하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경 말씀을 주의 깊게 들음으로써 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속하는 은혜의 분명한 기별을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그들은 더 이상 성경을 지성적인 진리의 추상적인 체계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을 그분의 직접적 임재에 있게 한 하나님의 개인적 음성으로 이해했다. (22.5)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 자신의 권위가 되었다. 그리고 성경은 산 믿음과 소망의 근원이 되었다. 어떤 저술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인간의 구속이라는 종교적 상황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분의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 이외의 ∙∙∙ 다른 권위는 없다.”3) 성경을 통해 주님 자신에 의해 감동 받은 신자들은 믿음과 은혜의 절대적 확실성을 경험한다. 그들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고 그분의 용서와 가납에 대해 그들을 보증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한다. (23.1)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슬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라고 하는 고백적 진술에서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표현했다. 본질적으로 이 문구는 성경이 그 자체의 해석자임을 의미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최고의 주석자(註釋者)라는 신앙의 경험을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경만이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충분히 명확하게 한다는 사실을 선언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을 지구로부터 어떠한 빛도 필요로 하지 않는 태양에 비유했다. 성경은 그것 자체가 가진 진리의 빛을 발산하고 인간의 철학이나 혹은 교회의 권위로부터 오는 어떤 조명이라는 양초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성경만이 구원하는 믿음의 내용을 결정한다. 그것이 이러한 명료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듣는 자들에게 그분의 은혜를 수여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이기 때문이다. (23.2)
 칼뱅은 성서적 기별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 성경의 통일성과 하나님의 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4.1)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된 모든 자들에게 빛을 발하지만 눈먼 자들에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태양과 같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러한 관점에서 본질상 눈먼 자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내적인 교사로서 성령이 자신의 조명(照明)을 통해 그것을 위한 통로를 만들지 않는 이상 우리 마음을 뚫고 들어올 수 없다.4)
(24.2)
 믿음과 구원에 대한 우리의 확실성은 하나님의 말씀—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명료성과 신실성에 달려있다. 엘렌 G. 화잇은 성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24.3)
성경을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는 자만이 참으로 배우는 자이다. 그는 그 말씀을 인해 떨게 될 것인데, 이는 그 말씀이 그에게 생생한 현실(現實)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해하려는 자세로 마음 문을 열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려 한다.5)
(24.4)
 성경의 효율성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도구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들은 성령에 대한 시험을 위하여 말씀과 성령의 연결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고백했는데, 그 이유는 많은 거짓 영들이 신성한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참조 요일 4:1; 2:18). 이런 견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엡 6:17, 강조 첨가)이라 불렀다. 이 은유는 말씀과 성령 사이의 확고한 관계를 가리킨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예수님의 말씀은 성서적 기별, 즉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일에도 적용된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설명했다: (24.5)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잘못을 드러내시고 심령에서 그것을 내쫓으신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시는 것이다.6)
(25.1)
 성령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와 오류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에게 그들의 죄—특별히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는 죄— 를 깨닫게 한다. 예수께서는 이것이 성령의 주요한 기능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8, 9, 강조첨가). (25.2)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효율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25.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 13).7)
(25.4)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정신 속으로 깊이 파고들 수 있다. 윌리엄 L. 레인(William L. Lane)은 이렇게 설명한다: (26.1)
 (성경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 마음의 생각과 의도에 대한 식별력은 관통하고 벗기는 말씀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감별 과정을 수반한다. ∙∙∙ 성경 말씀에 노출되는 것은 하나님 그분에게 노출되는 것을 수반한다.8) (26.2)
 또한 히브리서 4:12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자체의 약속과 저주를 성취할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26.3)
 루터와 칼뱅은 둘 다 성령으로부터 말씀을 분리시키는 것의 위험을 보았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 교도들과 재세례파의 극단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교리적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령에게 한 쪽으로 치우친 호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성령이 오직 성경과 더불어 그리고 성경을 통하여—결코 성경에 대항하지는 않고—행동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들은 성경과 성령의 연합을 태양의 빛과 열의 분리할 수 없는 연합에 비유했다. 렌나르트 피노마아(Lennart Pinomaa)는 루터의 견해를 이렇게 요약했다: (26.4)
사실 그것[성경]은 성령의 화신이다. 태양 광선이 빛은 물론 열을 가진 것처럼, 눈에 보이는 말씀은 성령을 포함한다. 성령은 말씀을 뒤따른다. 이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말씀이 먼저요, 그 다음이 성령이다.9)
(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