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히브리서 연구) 제 2 장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대제사장 되심
거룩하게 하시는 자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의롭게 하시는 자이시다. “거룩하게 하시는”(헬, 하기아존)은 현재 능동태 분사이다. 십자가에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는 과거 분사였다면 “거룩하게 하시는” 일은 지금도 항상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59.3)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
 문자적으로는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헬, 호이 하기아조 메노이)이다. 현재 수동태 분사로 표현되어 있으며, ‘지금 계속해서 거룩하게 되어지는’의 의미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인 예수님의 능동적이고 계속적인 사역으로 말미암아 지금도 계속해서 거룩하게 함을 입는 자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거룩함의 시작인 사법적인 칭의가 단지 죄인 밖에서의 하나의 선언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의롭게 하시는 사역인 것과 실제적으로 죄인이 의롭게 변화되는 것임을 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60.1)
다 하나에서 난 지라
 ‘한 분에게서 나왔다’는 말이 더 적합한 말이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은 다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우리는 형제가 된다. 성화의 길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 이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7)이라고 하셨다. (60.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히 2:12) (60.3)
내 형제들
 예수님의 형제들은 앞 절의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 또한 당신의 모든 백성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모든 거룩하게 함을 입은 “교회”(헬, 에클레시아: 회중)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신다. (60.4)
 본 절은 시편 22:22에서 인용되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시고 구원함을 얻은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그의 형제들을 거룩하게 하셨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은 높임을 받으셨다. (60.5)
 본 절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를 통해 선포되었고, 십자가로 비준되었고, 지금도 성취되어 가고 있다. 그분은 자신을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 놓으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인류의 머리에 설 것이다. 나의 겸비함을 통해 그들이 왕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할 것이다. 나는 내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내 제자들이 하기를 내가 원하듯이 그분을 신뢰할 것이다.2 (61.1)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히 2:13) (61.2)
 바울은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 형제를 넘어 “자녀”가 되게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자녀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파이디아‘아이들’, ‘갓난아기’를 말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는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보라. 자녀는 가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대상이다. 구주께서는 우리와 같은 혈육으로 오셨고, 승리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낳으셨다. (61.3)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6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인류의 모든 사람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혈과 육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구주께서도 “한 모양으로”(헬, 파라플레시오스: 동일하게, 유사하게) 인성에 참여하셨다. 과연 ‘같은 방법’(동일한 방법)인가? 단지 유사한 방법인가? 다음의 글을 읽어보자. (61.5)
 주님께서는 인간의 사건을 책임지셨으며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동일한 조건들을 가지시고 인간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사단의 시험들을 이기셨다. 이렇게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 거룩한 성품에 참여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3 (62.1)
 “사단은 인간의 타락을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높은 지위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음에 대하여 그의 천사들과 함께 또다시 기뻐하였다. 그는 그의 천사들에게 예수께서 타락한 인간의 성정을 취하시면 자기가 예수를 이길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구속의 경륜을 이루지 못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했다.4 (62.2)
 E. J.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 했다(갈 4:4). 여자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므로 이 세상의 어느 여자가 낳은 아이와도 똑같은 아이가 되셨다. 그러나 왜 여자에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왜 남자에게서 나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에게서 낳았다면 죄 아래 있는 인류에게 충분히 접근하지 못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것은 인간의 속성이 죄를 지은 바로 그곳까지 완전히 이르기 위해서였다.5 (62.3)
 그리스도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남자이셨다. 우리는 그 남자 안에서 태어난 여자인 교회가 되었다. 이것이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고전 11:8)다는 말이다. 이것이 교회와 남편 되시는 그리스도의 관계이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엡 5:22~23)다. (62.4)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혈과 육을 받음으로 인성의 모든 경험에 동참하셨다. 그것은 인성으로 마귀를 이기고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귀는 인성의 죄를 통해 인간을 다스린다. 그는 죄를 통해서만 “왕 노릇”(롬 5:14)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귀의 세력을 깨려면 인성 안에서 죄를 극복하셔야 하였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유전으로 죗된 본성을 물려 받는다. (그러나 죄를 물려받는 것이 아님에 유의하라.) 또한 타락한 성정에 쉽게 굴복하는 것이 인간의 딜레마이다. 이러한 죗된 본성과 굴복하기 쉬운 타락한 성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신 것이다. (63.1)
 예수께서는 인류가 4천 년간 죄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진 때에 인성을 취하셨다. 그는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유전 법칙이 끼쳐온 결과를 받으셨다.6 (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