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드라마 성소 제 3 장 성소 뜰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이스라엘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마실 물이 없었다. 이때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고 “과연 여호와가 계시는가?” 여호와의 실존을 “시험하여 이르기를”(출 17:7) 우리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이때 여호와께서는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돌아 보셨다.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출 17:6)고 하셨다. 모세에게 침을 당하신 분은 반석이시며 반석 위에 계신 그리스도셨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지팡이를 한 번 휘둘러 내리친 것이다. 이때에 물이 갈라진 반석에서 물이 나와 갈하여 죽게 된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사 48:21). (64.1)
 ‘쪼개다’의 히브리어 동사 ‘바카’(baqa)는 ‘가르다’는 의미 외에 ‘뚫고 지나가다’, ‘관통하다’의 뜻도 있다. 이것은 반석이 침을 당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과 심장이 관통되고 찢어져 “구원의 생수”를 쏟아 내심으로 목말라 죽게 된 인류에게 풍성한 생명수를 제공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생명수의 근원25이심을 말해준다. (64.2)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물두멍의 물은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물로 예표 되었고 그 원형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제공된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 7:39)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사 53:4, 5) 상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목마르셨다”(요 19:28). 그러므로 물두멍은 “구원의 우물”(사 12:3), “영혼을 소성케 하는 은혜”인 것이다. (64.3)
 6. 말일에 예언된 성전에서 솟아나는 말씀의 생수
 물두멍이 표상하는 생수는 하나님의 말씀26이다. 이 말씀을 가진 자들에게 늦은비 성령이 강림하실 때 성령의 가르치심과 조명함을 받은 자들은 생명수와 같이 소성케 하는 힘과 능력을 드러낼 것이다. (65.1)
 요엘은 그날(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3:18)고 예언하였다. “싯딤 골짜기”(“the valley of acacias” NKJV, NIV, NLT)는 요단 동편의 아카시아가 많이 나는 골짜기로 척박한 땅을 의미한다. 마지막 때에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이스라엘의 척박한 땅까지 모두 비옥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인 것이다. 이것은 점점 더 힘 있게 불어나는 늦은비 성령의 역사로 성취될 것이다. (65.2)
 에스겔은 이상 가운데서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겔 47:2) 빠른 속도로 불어나는 것을 보았다. 일천 척(약 500m)을 척량하니 그 물이 발목에 이르고,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무릎에 이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허리에 이르고,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헤엄치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물이 되었다. 이 강줄기가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겔47:8), 바다(염해27)를 소성케 하는 것을 보았다. 이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바닷물이 소성하며, 바다의 고기가 심히 많고 어부가 선 것을 보았다. 특별히 그 물이 흐르는 강 좌우에 달마다 새로운 실과를 맺는 나무를 보았다. 또한 스가랴는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다윗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슥 13:1) 열린 다음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염해)로, “절반은 서해”(지중해)로 흐르는 것을 보았다(슥 14:8). (65.3)
 위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구원의 우물(말씀)을 가진 백성들,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령이 강림할 때 복음이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 세상을 소성케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66.1)
 7. 성전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물의 축제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초막절 축제의 일곱째 날(7일)인 가장 ‘큰 날’(성력 7월 21일28)에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선포하셨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예수께서는 성전 마당에서 이루어진 초막절 물의 축제의 의미를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66.2)
 유대 관습에서 흔히 명절(왕상 8:2, 12:32; 겔 45:25; 느 8:14; 대하 7:8)이라고 불리워진 이 초막절은 일 년 동안 지은 농작물인 곡식들과 포도즙, 감람나무의 기름, 종려나무 산물, 여름 과수의 열매들을 저장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축복을 감사하는 절기였다. 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이 절기 동안 오두막이나 푸른 가지로 만든 초막을 성전 마당이나 지붕 위에 세웠다. (66.3)
 초막절은 무엇보다도 대속죄일에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와 기쁨을 나타내는 절기였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6:1). 초막절의 축제에는 모든 종류의 악기와 아름다운 음악이 동원되었다. 연주에 맞추어 군중은 호산나를 열창 하였다. 한편에서는 희생제를 드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레위인의 합창대가 찬송을 인도하였다. 백성들은 종려와 화석류 가지를 흔들어 화답하였다. 이 명절의 잔치는 7일 동안 연속되었다. 첫날 동이 틀 무렵 제사장들이 은나팔을 길고 드높게 불면 화답하는 나팔 소리와 환호하는 음성이 시온산 기슭과 감람산 기슭에 둘러선 무리들에 의해 일어났다. (66.4)
 이날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 제단에 붓는 물잔치였다. 이 ‘물 붓기 의식’29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세상에 제공될 생명수의 풍만함을 예시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의 초막절에는 7일 동안 날마다 제사장들이 금으로 만든 물 단지를 들고 나팔 소리와 레위 찬양대와 연합하여 실로암으로 물을 길으러 나아갔다. 10보를 옮긴 다음 멈추고 찬양을 부르기를 반복하였다. 예배하러 모인 군중들은 제사장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라는 환희의 곡조가 터지면서 샘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자들은 모두 그 물을 마셨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들이 물을 길어 나팔 소리와 음악에 발맞추어 성전을 향하여 올라갔다. 이때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시 122:2)라는 엄숙한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물은 수문(Water Gate)을 통과하여 성전 안 뜰(제사장의 뜰)에 운반되었다. 제사장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높이 들고 제단 주위에 둥글게 서며, 레위인들은 성가대석에서 시편 118편을 찬양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시 118:25)라고 외치면 찬송의 소리가 고조되고 군중들이 악기와 장중한 나팔 소리에 맞추어 회중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레위인들의 찬양에 가담하여 시편 113편에서 118편을 노래하였다. 힘 있는 찬송이 합창단과 연합하여 드려지는 동안 그 물은 번제단 위에 부어졌다. 특히 이날에는 실로암에서 물을 길러 온 제사장이 제단 주변을 일곱 번 돌았다. 모든 유대인들은 제단에 물을 부어 바치면서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며 어떤 이들은 춤을 추었다. 초막절의 물 붓기 예식이 절정에 달하여 마쳐지는 그 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기쁨의 원천으로 소개했던 것이다. (67.1)
 예수께서는 ‘초막절의 물잔치’에 공급되는 실로암에서 길러온 물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이 신광야를 지나 르비딤(맛사 또는 므리바)에서 장막을 쳤을 때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게 되었었다. 이때 반석을 열어 물을 공급해 주신 이는 그리스도셨다. 예수께서는 이제 곧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시고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침을 당한 반석이 예시한 표상을 이루실 것이었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68.1)
 이처럼 ‘초막절의 물잔치’는 과거에 침을 당한 반석에서 물이 공급되었던 것을 기념하고 미래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인 물과 피로 목마른 영혼에게는 ‘생수의 강’이 되시고, 죄로 병든 자들에게는 ‘치유의 강’이 되실 것을 예표하는 의식이었다. 이제 초막절의 ‘물붓기 의식’을 위해 준비된 물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자. (68.2)
 군중들의 악기와 장중한 나팔 소리에 맞추어 운반된 금 물단지는 제사장의 뜰 안 제단으로 옮겨졌다. 제단에는 두 개의 은 대야가 놓여있었다. 한 대야에는 물이 부어지고, 다른 대야에는 포도즙이 부어졌다. 물과 포도즙은 기드론 시내로 연결된 관을 통하여 죽음의 바다인 사해(염해)로 흘러들어갔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5:6). 예수님은 죄로 죽어있는 세상을 살리시는 생명수이시며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슥 13:1)이시다. (68.3)
 8. 물두멍의 생수의 강은 믿는 자의 받을 성령
 초막절의 “물 붓는 의식”은 신년에 풍성한 비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30 많은 무리가 실로암에서 길어올리는 물을 제단에 붓는 의식에 참여하였지만 눈에 보이는 성대한 축제와 귀에 들리는 것에만 현혹되어 있어서 그것의 참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심령의 결핍을 채워줄 생명수를 주시고자 하셨다. 이 생수는 희생당하시는 자신의 가슴에서 터져 나와서 오순절 성령의 물결로 승화될 것이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69.1)
 생수의 강은 믿는 자의 그 “배”(코일리아)에서 즉 사람의 가장 깊은 마음, 상징적으로 가슴에서 흘러나온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보내심을 받은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생각, 감정, 의지 등을 예수께 드려야 한다. 마지막 늦은비의 역사, 온 세상을 살리는 역사에 누가 참여할 것인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생각, 감정, 의지를 주님께 드린 자들이다. (69.2)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