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창조 기사에 의하면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주간의 끝에 하나님이 “안식하고,”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신” 세 가지 행위에 의하여 제정되었다(창 2:2, 3). 출애굽기 20장 10절의 넷째 계명은 창세기 2장 2, 3절에서 하나님이 “안식하고,” “축복하고,” “거룩하게” 하신 세 행위를 반복하여 기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기술함으로써 하나님이 태초의 6일 동안에 세상을 창조하신 사건을 요약하고 있다. 즉 출애굽기 20장 8-11절의 넷째 계명도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만들다,” “안식하다,” “축복하다,” “거룩하게 하다”라는 네 동사는 모두 과거 시제로 되어 있다. 창조주간에 있었던 하나님의 행위를 지적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 3절은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일을 쉬셨다고 주장하였다. (49.1)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을 주장하는 성경의 입장은 확고 부동하다.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제칠일 안식일은 인간과 세계의 창조를 설명하는 성경의 맨 처음에 등장하고 있다. 창세기 2장 2, 3절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2)고 돼 있다. 안식일의 시작은 만물의 시작과 함께 하고 있다. 안식일은 우리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있다. 우리의 시작에 그 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작을 그 날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최초의 제칠일이었으며 제칠일은 처음서부터 안식일이었다. 인류의 역사상 제칠일은 안식일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다. 넷째 계명에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고 했다(출 20:11). 모세의 때에 와서 비로소 안식일이 된 것이 아니다. (49.2)
 그런데 히브리어 동사 “사바트”“쉬었다”로 번역이 되는데 “긴장을 푼다”는 뜻이 아니라 “중지하다, 멈추다”의 뜻이다. “긴장을 풀다,” “편하게 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동사는 “누악”이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사용되었다. 어찌하여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는 창세기 2장 2, 3절에서처럼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안식하다” 뜻을 위하여 중지하다, 멈추다의 뜻을 가진 “사바트”란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창세기 2장 2, 3절에서 사용하지 않는 다른 동사, 즉 긴장을 풀다,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누악”이란 동사를 사용했는가. 출애굽기 20장 11절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위하여 인간에게 인간의 안식일 쉼의 모델로서 하나님의 안식일 쉼을 제시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방식으로 자신의 안식일 쉼을 기술하고자 하여 “누악”이란 동사를 사용하셨다. 즉 여기에서는 안식일 안식의 창조주적인 측면보다는 안식일 안식의 인간적인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50.1)
 이곳과는 대조적으로 창세기 2장 2, 3절은 안식일 안식의 우주론적인 관점을 묘사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창조주간의 제칠일에 이르러 자신의 창조 활동과 그 결과에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더 이상 창조의 작업을 진행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결과에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다. 모든 것이 “좋았고,” “심히 좋았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일을 “멈추었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스럽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창조 작업을 “사바트”“중지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 . . 안식하시니라 (사바트 하시니라)”(창 2:2)는 말씀의 취지이다. (50.2)
 창세기 2장 3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간의 다른 날들에 동물들과 아담과 이브를 축복하신(창 1:22, 28)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제칠일을 “축복하셨다”(바라크).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축복은 단순히 “좋은 일을 위해 비는 것”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결실과 번영과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보증이었다(시 133:3).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축복하심으로써 안식일은 인간의 생명이 그로 말미암아 풍요롭게 되고 새 생명을 얻게 되는 은혜와 활력의 통로가 되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주간의 제칠일에 부여하신 축복이 매주간마다 돌아오는 제칠일로 분명히 이어지고 있다. (51.1)
 창세기 2장 3절은 또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2장 3절과 십계명이 소개되고 있는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똑같이 사용되고 있는 동사 키데스(피엘)는 “거룩한”이라는 뜻의 코데스(qds)에서 나온 것이다. “거룩,” “거룩한”이란 히브리어는 거룩한 목적을 위해 누구가 무엇을 “구별하다, 분리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제칠일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한 용도로 제칠일을 다른 6일들로부터 “분리하였다”는 뜻이다. 안식일의 거룩성은 사람이 또는 이스라엘 민족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연유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임재를 개방하는 통로로 삼기 위하여 제칠일을 선택함으로 말미암아 연유하는 것이다. (51.2)
 4. 신약성경에 진술된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
 신약성경도 안식일이 창세 때에 기원하였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 확실한 실례의 하나가 마가복음 2장 27절이다.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받는 제자들을 옹호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한글 성경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신약성경의 본래 언어인 희랍어로 읽는다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이다. 그리스도는 “만들다”(기노마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사용하셨다. 안식일이 태초에 어떻게 제정되었는지를 밝히시기 위하여 “만들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만들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심으로써 우리들의 시선을 사람이 최초로 “만들어지고” 안식일이 최초로 “만들어졌던” 세계의 태초로 이끌고 계시다. 따라서 이 “사람”은 물론 태초의 사람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과 우주에 관련된 안식일의 가치를 확립하기 위하여 인간이 창조된 직후에 만들어진 안식일의 기원을 거론하셨다. 주님께서는 태초에 만들어진 율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51.3)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태초에 작정하신 계획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는 예수님이 결혼에 관한 모세의 법률이 에덴의 이상적인 가족법으로부터 크게 후퇴되어 있다고 비판한 대목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는 결혼 제도를 에덴의 본래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말씀하시기를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아내를 내보내게 했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던 태초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 19:8)고 하셨다. 그리스도는 이상적인 결혼 생활과 이상적인 안식일 신앙을 위하여 이 두 제도가 제정되었던 세상 역사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셨다. 이 두 제도의 가치와 기능을 창세 때의 근본 취지에서 명백히 밝히고자 하셨다. (52.1)
 일부 학자들 중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는 그 유명한 말씀의 취지를 “인간의 복지가 안식일 안식에 우선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안식일이 이제 더 이상 인간에게 축복을 주지 못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통만 안기게 됨으로써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비곤 목적이 실패한 이상 그리스도인이 안식일을 무시한다 해도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53.1)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목적대로 안식일의 기능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잘못된 제도를 제정하셨으므로 결국 폐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53.2)
 이런 식의 논리라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의 정당성은 제정되던 당시에 의도되었던 입법의 목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법을 이용하거나 오용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53.3)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복지가 안식일 안식보다 우선한다”는 취지로 안식일을 폐하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의 복지를 제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안식일 안식을 제정하시고 인간에게 강요하셨다는 뜻을 암시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었다는 말은 안식일이 인간의 창조 후에 있게 됐다(에게네토)는 뜻이다. 사람 있고 돈이 있는 것이듯이 인간이 있고서 안식일이 있는 것이지 안식일이 있고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을 법률이나 규칙에 예속시키는 방식으로 사람을 안식일 계명에 예속시키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의 육체적, 영적 안녕을 확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의 행복한 생존을 위한 후속적 조치의 하나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는 것이다. (53.4)
 5. 신약성경 히브리서에 진술된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은 신약성경 히브리서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히브리서 제 4장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경 창세기 2장 2절시편 95편 11절을 하나로 결함시킴으로써 안식일의 보편적이고 영적인 본질을 확립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창세기 2장 2절을 통하여 안식일의 기원을 “하나님이 제칠일에 자기의 일을 쉰”(히 4:3; 창 2:2, 3) 창세 때로 추적해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시편 95장 11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제칠일 안식의 범위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에 개인적으로 들어가서 누리는 구원의 축복까지 포함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54.1)
 히브리서의 기자는 하나님의 “일이 세상의 창조 때부터 이루어졌음”(히 4:3)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에 창조의 “일”에 대하여 독자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하고자 하면서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을 당연시하였다. 그리하여 히브리서 4장에서는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만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로서 안식일이 강조되었다. (54.2)
 6. 유대 역사에 나타난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을 밝혀주는 자료는 성경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 역사와 기독교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 역사에서는 안식일의 기원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그 두 주장은 언어와 지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팔레스틴 유대교는 안식일의 기원을 이스라엘이 한 민족과 국가로 출발한 모세의 시대로부터 파악하고 있다. “희년서”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이외의 다른 어떤 백성이나 백성들에게 이 날에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용하지 않으셨다.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이 날에 먹고 마시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락하셨다”2고 했다. 족장들이 때때로 안식일을 지킨 것으로 종종 언급되었으나 이것은 모두 “안식일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지기 이전”의 예외적 사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3 (54.3)
 그런데 이와 같은 견해는 이스라엘 본래의 전통적인 사상이 아니다. 헬레니즘 시대(특히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 175 BC)에 유대 민족이 민족 신앙의 포기를 강요받는 역사적 위기를 겪으면서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필요로 등장한 2차적인 주장이다. 이것은 팔레스틴 문헌들에조차 안식일의 창조적 기원에 대한 언급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예컨대 “희년서”(BC 140-100년경의)에서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만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용했다4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제칠일에 안식일을 지켰고 모든 시대를 위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였고 그것을 그의 모든 일의 표징으로 삼았다”5고 하였다. (55.1)
 헬레니즘의 세계에서 나온 유대 문헌들에서는 착오 없이 안식일이 창조 때 모든 인류를 위해 제정된 제도로 소개되고 있다. 예컨대 필로(Philo)는 안식일이 창세의 때에 기원했다고 산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을 “세계의 생일”이라고 불렀다.6 하나님의 창조의 설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필로는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로는 이 세계가 6일 동안에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이 제칠일에 자기의 일을 쉬고 너무나 훌륭하게 만들어진 세계를 고요히 바라보며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세계의 질서 안에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이신 행위를 본받으라고 명하셨다”7고 했다. 그리고 필로는 안식일이 창조 때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그 날은 “한 도시나 한 국가의 축제가 아니라 세계 전체의 축제이며 엄밀히 말해서 이 한 날만이 모든 백성들에게 속한 공공의 날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하였다.8 (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