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식일은 태초에 사람을 위해 제정 되었다.
 안식일 폐지론의 이유로 가장 빈번하게 내세우는 주장의 하나는 안식일이 히브리 민족의 시작과 함께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인 종교로 등장한 기독교의 계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유대적인 배경에서 출발했다 할지라도 유대 민족이라는 혈통적인 한계가 팔레스틴이라는 지리적인 한계를 벗어 던지고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토대에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기독교 교리에 유대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안식일에 계속 붙잡혀 있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진실로 안식일이 유대 민족의 민족사적인 기원과 더불어 제정된 유대교의 날이요 유대교의 교리라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안식일이 유대적인 기원을 가지고 제정되었다는 주장이 성서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히브리 민족이 역사에 등장하기 이전에, 시내산 에서 모세에 의해 율법이 반포되기 이전에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서 사람을 노예화하기 이전에 그리고 사망이 사람에게 왕 노릇하기 이전에 세워졌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하나님에 의해 세상이 창조될 때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제정하신 태고의 제도라는 것이다. 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제도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의 민족사 안으로 들어와 그 역사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계명이 이스라엘의 정신 속에 영향을 끼친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원리로서 이스라엘의 민족사에 연루 된 것이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민족적 한계성이나 특수성으로서 안식일 계명이 본래부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래부터 안식일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옛 언약”의 한계 안에 갇혀있는 원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에서 수없이 강조된 것으로서 도무지 간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42.1)
 창세기 2장 1-3절에서는 제칠일 안식일이 하나님의 창조의 사건의 절정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거룩한 안식의 시간으로 기술되고 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안식하시니라”하였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셨다. 이 때는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기 이전이며 이스라엘 민족이나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기 이전이다. 이처럼 제칠일 안식일의 제도는 인간 역사의 시작과 함께 수립된 것이지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수립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창조되던 그 태고의 때에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하셨다”고 말씀하셨다(막 2:27). 이스라엘 민족의 성립될 때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안식일이 제정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따라서 창조 이후에 발생한 인간의 죄나 율법이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발생된 어떠한 변화가 인식일 제도의 존폐에 영향을 끼칠 수 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의 성육신이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라 할지라도 안식일로 기념되는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없다. (43.1)
 안식일이 이스라엘 국가와 그 율법이 반포되기 이전에, 성소의 희생제도가 수립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제도라는 것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반포되기 이전에 일어났던 만나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 출애굽기 16장 1-30절에서도 밝혀지고 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시기를 제칠일에는 만나를 모으기 위해 들로 나가지 말라 하셨던 것이다. 안식일 계명이 성문법의 하나로 반포된 것은 시내산에서 반포된 10계명의 넷째 계명으로 포함된 것이 처음이지만 이 십계명에서도 안식일이 이 십계명의 반포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십계명은 말하기를 이제 “안식일을 반포하노니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고 대신에 너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44.1)
 “기억하라”는 말은 지금부터 “잊지 말라”는 취지로도 이해 할 수 있지만 그 앞서 일어난 어떤 역사적 사실을 회상하라는 촉구이기도 하다. 옛일을 기억해내라는 촉구이기도 하다. 그러면 언제 제정된 안식일을 기억하란 말인가. 바로 창세기 2장 1-3절에서 제정된 그 안식일을 기억하란 말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본래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실 때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제정하신 제도므로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해 안식일 계명을 가르친 것은 인류가 비록 여러 민족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여도 각 민족은 창조적 기원과 세계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제칠일 안식일을 인류사적 차원에서 계속 지켜야 하며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하신 이스라엘로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아야 하고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보편적인 율법의 하나로서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44.2)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언약을 그로부터 ”사 백 삼 십 년 후에 모세로 말미암아 생긴 율법으로 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갈 3:15-17). 안식일의 약속과 안식일의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라면” 모르겠거니와 만유의 창조와 더불어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의한 것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갈 3:18참조). 범법함으로 주어진 율법으로 말미암아 창세적 기원과 우주적 관련을 가진 안식일의 본래적 위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5.1)
 구약 성경에서 제칠일 안식일은 도저히 그 어떤 일로도 변경되거나 부정되거나 축소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 사건의 절정으로 선포되었다(창 2:1,2; 출 20:8-11).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제아무리 세월이 지나 간다해도 잊혀져서도 안되고 왜곡되어서도 안 되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님의 초림 이나 재림으로 잊혀지거나 달라 질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따라서 이같은 창조 사건을 기념하는 안식일이 예수님의 초림 사건으로 철폐되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45.2)
 2. 안식일이 창세 때로부터 시작한다는 교리의 중요성
 안식일이 창세 때에 기원한다는 교리는 매우 중요하다. 제칠일 안식일은 “증거 하는” 날이다.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신”(출 20:11) 사실을 증거 하는 날이다. 인간과 세계의 기원을 밝히는 날이다. 인간과 세계의 근원에 대한 지식의 날이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가르치고 믿게 하는 날이다. (45.3)
 증거가 참되려면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 8:14). 제칠일 안식일의 증거는 참된 증거인가. 제칠일 안식일의 증거가 참되려면 제칠일 안식일이 인간과 세계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제칠일 안식일이 우리의 기원과 종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제칠일 안식일이 인간과 세계의 시작에 동참했어야 한다. 인간과 세계가 창조되던 창조의 때에 안식일이 제정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제칠일 안식일이 창세 때에 제정된 것이 아니라면 안식일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를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안식일은 세계와 인간의 기원과 종말에 대하여 참되게 증거할 수 없다.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이 불분명해지면 제칠일 안식일을 준수해야 할 신학적 동기를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없고(출 20:11),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언약적 상징(출 31:17)으로도 기능할 수가 없다. (45.4)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할 수 있는 신학적 이유는 “엿새 동안에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으며 또 그러므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기 때문이다”(출 20:11). 이처럼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과 안식일 준수의 명령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안식일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증거하는 날이며 인간과 세계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가를 증거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46.1)
 즉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1)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한다는 것이며,

 (2) 우리가 안식일의 지식과 증거를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기원과 종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며,

 (3) 우리가 인간과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의 “자비로운” 뜻을 안식일의 준수를 통해 새롭게 새기는 것을 뜻하며,

 (4) 우리가 창조의 때에 하나님이 인류에게 보여주신 일과 쉼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며,

 (5) 우리가 이웃 피조물과 함께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제정하신 안식일 안에서 하나님의 안식과 하나님의 축복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46.2)
 창조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지식과 기념의 날 일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맺은 언약의 “표징”(오드)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라고 말씀 하셨다(출 31:17).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하나님이 인류인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운 언약(창 9:9, 10)의 표징이다. 하나님이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운 언약”(창 9:12)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이 언약의 증거를 위하여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칠일에 쉬어 평안하시었던 것이다”(출 31:17). 그런데 표징의 일차적인 특성은 자신의 너머에 있는 어떤 무엇을 자기에게 지적하게 하는 것이다. 자기 너머에 있는 어떤 실재를 자기에게 중개하고 그 실재에게 상응하는 행동을 유발케 하는 것이다. (47.1)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사건에 그 뿌리를 둔 하나의 상징으로서 사람들에게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전망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구속 역사의 이해를 중재한다. 안식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과거로 돌아가 하나님을 만물의 기원을 창조하신 자로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을 완전한 창조의 주인으로(창 2:2,3; 출 20:8, 11; 3:17)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그에게 감사하게 한다. (47.2)
 뿐만 아니라 안식일은 신자들로 하여금 미래로 향하게 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인생인가를 늘 생각하게 한다. 과거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미래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과거에 나를 불러내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의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그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하실 그의 “영원한 언약”(출 31:16; 히 4:9)을 굳게 붙들게 한다. (47.3)
 창세적 기원을 가진 안식일은 이처럼 창조(창 2:2,3; 출 20:11, 31:17)와 구속(신 5:15; 사 56:1-4)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으로 서 있다. 안식일은 우리를 과거의 완전한 창조로 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끊임 없이 미래의 궁극적인 회복을 향하게 한다. (48.1)
 3. 구약성경에 진술되어 있는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1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은 모세 오경(창 2:1-2; 출 20:11; 31:17)과 신약성경(막 2:27; 히 4:4) 등에서 수없이 반복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가끔 유대의 일부 역사와 기독교 역사에서 부인되어 왔다. 그리고 일부 비평적인 학자들은 안식일의 기원을 창조의 사건과 연결시키는 대신에 토성 숭배나 한 달의 4기 구분, 7일 시장,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7일 주기 사상, 일곱 수에 대한 고대 근동 사람들의 주술적 상징성 등에 연결시켜 왔다. (48.2)
 상당수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의 창세적 기원을 부정하고 모세가 세운 유대 민족의 한 제도로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다. 그들은 제칠일 안식일의 준수에 “유대적”이라는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고 그 대신에 일요일을 성일로 제정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상징하는 그리스도인의 날로 내세우고 있다. (48.3)
 그러나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 사건의 이야기를 눈여겨 보면 6일간의 하나님의 창조는 제칠일 안식일로 그 절정을 이루도록 계획된 창조이다. 창조의 첫날부터 제칠일은 예정되고 있다. 제칠일 안식일이 없이는 6일의 창조가 완성될 수 없게 계획되어 있다.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사건의 기본 구조에 처음서부터 이미 들어 있다. (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