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식을 잡아먹은 여인, 헐값으로 팔려간 노예들, 그리고 이집트로 끌려간 포로들은 모세가 1,500년 앞서 신명기에 예언한 그대로 성취된 것이었다. 즉 그는 예언하기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그들 〔네 원수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네가 네 몸의 소생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실으시고∙∙∙너로 애굽으로 끌어 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대적에게 노비로 팔려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신 28:15, 52, 53, 68). (28.4)
 하나님이 돌보셨다
 예루살렘이 로마 인들의 손에 멸망당한 사실은 수세기 앞서 예루살렘이 바벨론 인들의 손에 멸망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앞서 다니엘를 연구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으로 예루살렘을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포기하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그 같은 참화를 방지코자 마지막 순간까지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신 사실들을 살펴보았다. (28.5)
 신약 시대에 와서 하나님은 오히려 더 큰 노력으로 예루살렘을 로마 인들의 손에서 건져내시고자 하셨다. 30년 이상을 하나님의 친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리와 길목을 누비며 평화의 길을 가르치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용서하라, 악을 선으로 갚아라, 적법한 권세를 존중하라고 가르치셨다. 로마 병정이 짐을 지우고 1 마일 거리를 가게 하면 차라리 2 마일을 가 주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셨다(마 5:41). (28.6)
 만약, 유대와 갈릴리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이 이 같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던들 로마 인들의 무자비한 보복을 불러온 게릴라 활동이나 사보타지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납세 거부 운동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황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중지함으로써 전쟁을 유발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 회개치 않고 오랫동안 하나님께 불순종 해 온 그들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지켜주시리라는 주제넘은 생각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투쟁적인 당파로 서로 분열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히려 너그러운 마음으로 서로 협조했을 것이다· (28.7)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수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행 2:41). 그들은 예수님의 종교적인 교훈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예언의 말씀도 명심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즉 예루살렘이 군대에 의해 포위되는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 16; 눅 21:20)라고 예언하신 말씀을 기억했다. (28.8)
 기원 후 66년 11월에 케스티우스 갈루스가 까닭없이 퇴군함으로써 예루살렘을 탈출할 수 있는 천재 일우의 기회가 발생했다. 요세푸스의 말에 따르면 당시 “유대의 수많은 귀인들이 마치 침몰하는 배를 떠나듯 뛰쳐나갔다”는 것이다.9 (29.1)
 유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때에 예루살렘을 탈출했다. 그들은 북쪽으로 도피하여 갈릴리 호수의 남쪽에 있는 펠라(Pella)에 거류지를 마련했다. “산으로 도망할지라”하신 말씀은 “구릉 지대로 도망하라” 또는 “시골로 도망하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펠라는 구릉으로 둘러싸인 시골이었다. (29.2)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확고히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충고대로 행동했다. 그리하여, 유대의 그리스도인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예루살렘의 멸망시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