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쉬키코스와
프뉴마티코스라는 두 형용사는 묘사와 설명을 위해 쓰인 용어들이지 어떤 완전한 의미와 정의를 나타내는 용어들이 아니다. 우리의 몸이
“프쉬케적인” 몸인 것은 우리가
프쉬케만을 소유했기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 외에도 물리적 체계를 비롯한 다른 많은것들도 부여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프쉬케적인” 몸과
“프뉴마적인” 몸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신약에서
프쉬케는 생명 있는 존재의 핵심적 본질로, 때로는 전인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을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참조
마 2:20; 요 10:11; 행 2:41-43; 롬 2:9; 16:4; 고후 1 2:5; 빌 2:30). 하지만 많은 경우에 이 용어는
프뉴마와 대조를 이루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한 구절들에서는
프쉬케가 회심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타고난 그대로의 본질을 나타낸다(
프쉬키코스를
“자연적[natural]”으로 번역한 〈제임스왕역(KJV)〉과 〈새국제역(NIV)〉의 번역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임).
프뉴마는 이와 대조적으로, 종종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통해 일어나는 사람의 내적 변화와 동일시되고 있다(
고전 2:14, 15;
유 19). 이러한 내적 변화는 부활한 후에 영광화를 통해서 완성되는데, 이 부활 또한 성경에서 종종성령이 하시는 일로 묘사되고 있다(
롬 1:4;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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