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값으로서의 사망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강조되고 있다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은 “영혼”(사람)은 죽을 것이고(겔 18:4), “끊어”지거나 박멸될(카라트, 시 37:9, 34;참조 렘 11:19) 것이고, 망하거나(시 68:2; 참조 요 3:16) “없어”질 것이다(시 37:10; 참조 20절). 이러한 사람은 “초개”(사 40:24; 말 4:1; 마 13:30; 벧후3:10; 계 20:15; 21:8)처럼 태워 없어질 존재로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 1:9)을 받게 될 것이다. (268.1)
 2. 죽음에서 생명으로 원상 복귀함
 앞에서 이미 살펴본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의 본래 상태는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생명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고(생명나무로의 접근, 조건적 불멸), 그와 반대로 반역과 불순종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는 상태였다(그 개체가 어떤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음). 만일 인류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의를 확립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실제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268.2)
 로마서 5:12-14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자기 자신들과 그들의 모든 자손에게 타락과 죽음이 이르러오도록 했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또한 이어지는 성경 구절들에 기술되어 있는(15-19절), 둘째 아담으로서 모든 인류를 위해 속죄를 드리신 그리스도의 행위에 대해서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분의 이 같은 행위는 아담의 행위와 정반대되는 행위로 그것과 대칭을 이루는 것이었다. 고린도전서 15:21, 22에 따르면, “사망이 사람[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한 사람]으로 말미암”으며, 또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얻”게 된다. (268.3)
 이처럼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부터 무조건적으로 물려받은 그 사망 선고가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의 승리의 부활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상쇄된다. 우리 자신들이 지은 죄의 결과가 아니라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 때문에 우리를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시킬 수가 없다. 이 “첫째” 사망은 단지 모든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생명을 종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부활로 인해 종결되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날 때에 그들은 모두 함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히 11:39, 40). (268.4)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에게 붙은” 모든 사람이 그와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토대이며, 또한 그들에게 그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임에 대한 보증이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모든 원수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고전 15:23-25).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26절). (268.5)
 따라서 영생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그 분에게 속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실재적인 선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이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근거로 영생을 주장할 수 있다.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 12;참조요일 1:2; 5:20). (268.6)
 천년기가 마치는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모든 원수들도 부활할 것이지만, 그들의 부활은 “심판의 부활”(요 5:28, 29)로 오직 심판 받고 멸망당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 멸망은 최종적인 멸망이 될 것이다(참조 천년기 I. C. 3; 죽음 I. F. 5; 심판 III. B. 3). 이런 이유 때문에 “둘째 사망”은 두려운 사건이다(계 20:6):“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 이 둘째 사망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킨다. 이것은 아담이 범한 죄의 결과로 이르러오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에 가담하고 그분의 은혜의 선물을 거절한 결과로 이르러 오는 것이다. (268.7)
 하나님의 원수들은 마침내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며, 죄의 모든 결과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히 2:14; 계 20:14).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분이 재림하시는 그때로부터 영원토록 안전할 것이다. 더 이상은 그들의 삶에 죄나 죄 있는 본성이 실재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온 우주에 오직 하나의 조화된 맥박만이 고동치게 될 것이다 (269.1)
 3. 소멸하는 징벌의 의미
 성경이 최종적인 멸망을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에 대한 징벌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참조 살후 1:9; 계 20:14;II. C. 1) 그리스도교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교리는 악인들에게 영원한 고통이 징벌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사람에게서 분리 될 수 있는 불멸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직접 유래된 교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 교리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교리임을 확인하였다(I. E.1-3). (269.2)
 사람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잃어버린바 된 타락한 개인들은 영원히 존재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을 금하는 안타깝고 슬픈 조치를 취하시기까지 하셨다(창 3:22, 23). 이는 생명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롬 6:23; 요 3:16). 진실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요일 5:12). 타락한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하고(요 3:36) 오직 한정된 기간밖에 살 수 없는데, 이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요일 3:15) 않기 때문이다. (269.3)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영원한 멸망”(살후 1:9)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구속”(히 9:12)이 영원한 구원의 과정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원한 멸망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경우 모두 그 의미는 멸망 또는 구속의 결과가 영원하다는 것이다. (269.4)
 데살로니가후서 1:8, 9에 따르면, 악인들은 “주의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받”는다. 이 성경구절에서 “형벌을 받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티노는 단순히 “∙∙∙의 벌을 받다”를 의미한다. 게다가 문맥에 비추어 볼 때 이 형벌은 “주의 얼굴∙∙∙을 떠나”는 것으로,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주와 함께하는 것과 반대된다 이것이 형벌의 일부분으로서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악인들은 분명 그 “형벌”의 날에 “불꽃”의 고통을 받을 것이지만(살후 1:7, 8) 이 고통이 그들에게 내려지는 “영원한 형벌”은 아니다. (269.5)
 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는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이와 유사한표현들이 여기에서 “(형)벌”로 번역된 콜라시스는 그 어근적인 의미가 “도중에 끊어버리다”인데, 여기서는 “잃어버림을 당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이 성경구절에서 형벌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의인들이 받을 상급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이 영원한 것처럼 이 잃어버림 또한 영원한 것이다. 이처럼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상급과 악인들에게 주어지는 징벌,이 둘 모두는 최후의 상급과 징벌이 될 것이다. (269.6)
 성경에서 불과 연기 같은 멸망의 도구도 영원한 것들로 일컬어지고 있다(마 25:41; 계 14:11). 하지만 성경은 영원한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악인들은 어떤 잔재도 남기지 않고 그들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형벌의 도구 속으로 던짐을 당한다. 성경에서 “영영한 불”과 같은 구절들은 소돔 같은 도시들이나(유 7) 영적 바벨론(계 19:3)의 멸망과 관련에서 사용된다. 성경에 분명이 진술되어 있듯이, 이같은 멸망은 어떤 것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아무런 흔적도 없이 다 소멸시키는 멸망이다(벧후 2:6; 계 18:8, 9; 참조 죽음 I. F. 5; 천년기 I. C. 3. e). (26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