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성경의 기록
 창세기 1장2장에 따르면, 최초의 사람들은 에덴에서 하나님의 일을 도우면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되어 있었다. 그 “왕궁 정원”(“낙원[paradise]”의 문자적 의미)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창 2:15) 그분과 나누는 밀접한 교제도 즐기게 될 것이었다(참조 창 3:8). 그 첫 번째 부부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음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창 2:9; 3:22). (262.1)
 하지만 이 같은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하나님의 신뢰를 배반하고 그분의 분명한 명령을 불순종한 그들의 죄가 전환점이 되었다. 이 문제에는 또 하나의 나무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연관되어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선악을 알게” 한다는 구절은 일반적으로 나이와 관련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아독립의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관용구이다(신 1:39; 왕상 3:9; 사 7:15, 16). (263.1)
 최초의 사람들은 성인으로 창조되긴 했지만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말하는 뱀의 인도에 따라서 스스로 자율적인 선택을 하였다. 이러한 배반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에 따르는 은총을 누리는 데 부적절한 존재들이 되었다. (263.2)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이야기의 내용 자체는 매우 분명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상세한 해석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뱀”“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5절)방법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불순종한다 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면서, 인간 부부를 유혹하는 간교한 존재(1절)로 등장한다. 하지만 창세기에서는 그 “뱀”의 정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다. 신약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존재인 마귀(계 12:9)가 “뱀”으로 가장한 것이었다(“마귀”“사탄”은 모두 “대적”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 그는 한때 진리 안에 거하던 자였지만(요 8:44) 지금은 수많은 하늘의 영들을 반역으로 이끈 존재가 되었다(유 6;계 12:4, 8). (263.3)
 우리는 구약에서 이 존재의 타락을 암시하는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다(사 14:4-23; 겔 28:1-10). 구약과 신약의 중간 시대의 저술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이 발견된다(희년서 10:8;다메섹 문서 3, 4;에녹 2서 31:3). 신약은 그를 인류에게 죄를 짓게 하고(눅 22:3, 31; 요 13:27; 행 5:3; 고전 7:5) 구원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로 지목함으로써(막 4:15; 살전 2:18) 이러한 진술의 확실성을 더욱 굳게 한다. 그는 또한 죽음에 대하여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요 8:44; 히 2:14). (263.4)
 이러한 증거들에 기초해 볼 때, 창세기 3:4, 5, 22에 언급되어 있는“하나님같이”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신이 피조물로서 그분에게 종속된 존재임을 부정하면서 자아 중심의 삶을 건설하기 위해 힘쓰는 마귀적인 시도를 의미한다(사 14:13, 14; 겔 28:2;참조 창 3:13-15). 따라서 아담과 하와에 대한 사탄의 유혹에는 단순히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들이 관련돼 있었다. 그들은 타락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우주적 반역에 가담하게 되었다. (263.5)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자비롭게 대하셨다. 그들은 즉각적인 형벌은 받지 않았지만 낙원에서는 쫓겨났다. 더 이상 그 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된 아담과 하와는 이제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한 판결을 통해 선언하신 것처럼 슬픔과 고통을 당하고 “종신토록 수고하”며,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창 3:14-19). 이처럼 성경은 사람의 삶에서 죄가 악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63.6)
 B. 보편적 실체로서의 죄
 로마서 5:12-20은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반역의 중대성과 그 사건의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다. 이 진술이 주어진 것은 이와 정반대의 경우 곧 온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기 위함이다. (263.7)
 로마서 5장에 따르면, 인류에게 있어서 죄와 죽음은 본래부터 각 개인이 아닌 아담으로부터 이르러 오는 것이다. 바울은 단 한 번의 행동이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12절) 왔으며,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15절)고 말한다. 그는 또한 로마서 5:18, 19에서는 “한사람”의 범죄와 불순종이 정죄에 이르게 한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과 의의 행동이 생명을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264.1)
 12-14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이 지은 죄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그 증거를 제시한다 첫째,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참조 롬 3:9-20). 만일 모든 사람이 아담과는 상관없이 각각 죄를 짓기 시작했다면 특정한 시대에 살던 특정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가 독립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둘째, 에덴이나 시내산에서처럼 계명에 대한 특별한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에도 죽음이 존재하였다. 그런 시기에는 양심을 거스른다는 의미에 서의 죄는 존재했지만 어떤 문서화된 규범을 어기는 형태로서의 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모든 사람이 각자가 지은 죄의 영향만을 받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아담처럼 정죄되지도 않고 그가 받은 죽음의 형벌도 받지 않았어야 했다.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죽음이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임을 보여 준다(참조 죄론 III. B; 죽음 I. C. 1) (264.2)
 2. 잘못 이해되고 있는 구절
 로마서 5:12은 번역가들과 주석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성경구절이다. 〈개정표준역(RSV)〉의 “∙∙∙때문에(because)”는 문자적으로 “그 위에(on which)”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에프 호의 번역이다. 〈불가타역(Vulgate)〉은 이 구절을 인 쿠오 음네스 펙카베룬트(“그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로 번역하였다. 이 번역이 “원죄”의 개념, 곧 아담의 모든 자손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들도 각각 그 첫 번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264.3)
 하지만 “그 안에서(in whom)”는 헬라어로 에프 호가 아니라 바울 편지서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엔 호가 지니고 있는 의미이다(참조 롬 2:1; 7:6; 8:3, 15; 14:21, 22; 16:2). 더구나 문맥적으로 볼 때, 이 구절에서는 죄책의 전가에 대한 이론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에 근거하여(on the basis of which)”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에프 호는 “그것 또는 그 사람 때문에”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문맥에 잘 조화되는 번역은 다음과 같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으며, 그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참조 롬 5:19). 〈개정표준역〉에서의 “··때문에(because)”의 용법은 오해하기가 쉬운 용법인데, 이는 독자들이 “···때문에(because)” 다음에 ‘원인’이 올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서 5:12에서는 에프 호 다음에 원인이 아닌 결과가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라는 구절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는 구절의 원인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 같은 해석은 문맥에 어울리는 해석이 아니다. 여기에서 “모든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라는 구절은 오히려 ‘죄와 사망이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세상 전체에 편만해졌다’라고 하는 이 본문 전체가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성경절에 대한 이해는 바울이 제시한 그 다음 사항과 유추하면 확실해진다. 바울은 13절과 14절에서 모든 시대의 사람이 다 죽었기 때문에 죽음이 개인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아담의 죄로 인한 것임을 우리가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64.4)
 이 문단은 만일 죄가 개인적으로 자유의지를 행사한 결과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라면 거룩한 위인들이 죄와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인간 역사에서 이와 같은 삶을 산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가 죽음을 피할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 속에 거하는 불가항력적인 죄의 권세(참조 롬 7:17)가 각 사람의 삶의 어떤 시점에서 불가피하게 죄된 생각이나 죄된 말, 또는 죄된 행동으로 바뀌게 된다. 불가항력적인 죄의 권세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이 지니고 있는 구원의 능력 밖에 없다. (265.1)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내 속에 거하는 죄”(17, 20절)에 관해서 기록하기 훨씬 이전에 사람의 선천적인 도덕적 성향을 지적하시면서 그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창 8:21)고 단언하셨다. 욥기는 출생의 초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언제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치유불능의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음울한 상태를 매우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욥 14:1-4). 욥은 죄된 인간의 상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4절)라고 외쳤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단언하여 말씀하셨다. (265.2)
 3. 불가항력적인 성향들
 신약에 따르면, 중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기의 뜻을 보여 주실 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그것을 식별하지도 못한다(엡 4:18).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롬 8:7, 8). (2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