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磐石)은 항상 힘과 견고함의 동의어로 사용되어 왔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의 비유는 이것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이다(마 7:24~25). (264.1)
 성경에서 “반석”이란 말은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설명하려 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 (264.2)
 시인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시 18:2),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산성이심이니이다”(시 71:3)라고 말한다. (264.3)
 시편에 70여 회 나오는 “셀라”란 말은 “쉼표 혹은 음표”라고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설명하지만, 난외주에 보면 “반석”이라고 설명되어 있다(왕하 14:7, 「제임스왕역」 난외주). (264.4)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노래함에 있어서 시인이 잠깐씩 멈추어 셀라-“반석”-를 명상하는 것은 매우 합당한 일이었다. 이 반석은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이었고,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이셨다(고전 10:4). (264.5)
 이스라엘의 그 명가수가 노래 중에 쉼표를 넣어 반석을 명상했던 것처럼, 우리의 노래에 그 쉼표를 넣는다면, 우리의 일상 생애엔 패배 대신에 승리가 있을 것이다. 매일의 바쁜 일과 중에서 우리가 잠깐씩 멈추어 “반석”을 명상한다면, 우리도 다윗처럼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 27:5)라고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264.6)
 이스라엘 자손이 40년간 방황한 것은 흔히 말하는 대로 아라비아 페트라(Arabia Petra) 곧 반석의 아라비아(Rocky Arabia)에서였다. 그들이 여행할 때는 어디로 가나 반석들과 마주쳤다. 그러나 바로 그 반석들로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물이 흘러나게 하셨다. 우리의 매일의 여정에서도 우리에게 불가항력으로 보이는 난관의 바위들이 있으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숨기만 한다면 그런 것들은 보다 더 큰 승리를 향한 징검돌이 되고 말 것이다. (265.1)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곳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였다(출 17:6). (265.2)
 목마른 군중들은 단단한 바위로부터 순수하고 생기를 주는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을 마시고 그들의 여행을 위한 힘을 얻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사 48:21). (265.3)
 물이 조금만 공급된 것이 아니었다.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같이 흘렀으니”(시 105:41). 그들이 여행을 하던 기간 내내 물은 기적적으로 공급되었다. 반석을 친 첫 장소에서만 시내가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물을 필요로 한 곳이면 어디서든지 진영의 옆에 있는 반석들로부터 물이 솟아 나왔다. 시인이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시는(시 114:8) 하나님 앞에서 땅을 명하여 떨게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된 땅을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그 물은 흐르기를 그쳤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에돔을 지나갈 때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라고 말씀하셨다(신 2:3~6).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광야에서 기적의 물줄기로부터 물을 마셔 온 뒤에 이런 일이 있은 것은 매우 이상하게 보였으며, 그들의 진영 옆에 있는 반석들로부터 더 이상 물이 솟아나지 않자, 곧 이스라엘 백성은 투덜대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265.4)
 여호와의 종 모세가 바로 가나안의 경계선에서 그 복된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 죄를 범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반석은 이미 한 번 침을 당했으므로,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회중을 모아 그들의 목전에서 그 반석에게 명(말)하라고 하셨고, 그러면 그것이 물을 내리라고 하셨다. 매우 오랫동안 그들의 불평을 잘 참아 오던 모세가 이제는 그만 참을성이 없게 되어 이르기를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그가 반석을 두 번 쳤고 그러자 물이 솟아 나왔다. (266.1)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거나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께서는 모세를 높이 올려 존귀하게 하셨으나 그의 죄로 인해서는 그를 징벌하셨다. 모세가 반석을 두 번째 쳤을 때, 그는 그 침을 당한 반석의 실체가 되시는 위대한 사건을 무시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죄를 위하여 단번에 돌아가셨고(히 9:28). 그들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그분께 말하는(명하는)자는 모두 치료하는 구원의 물을 얻을 것이다. 이리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광야 여행 중 내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제시되었던 그 아름다운 상징을 훼손하였다. (266.2)
 성경 기자들은 자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자상한 돌보심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그 침을 당한 반석과 연관된 경험을 자주 언급한다. 이사야는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2)라고 말한다. (267.1)
 바울은 “피하는 곳”, “가리는 곳”, 그리고 “냇물”과 같은 이 사람이 바로 반석이신 그리스도이셨다고 우리에게 말해 준다(고전 10:4). 그분은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께서 무엇으로 나타나셨든지 간에 그분께 신뢰를 두는 각 개인에게 그분께서는 그렇게 나타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말씀하신다. 이 부르심에 응하는 자는 “길가에 시냇물을 마시고, 인하여 그 머리를” 들 것이다(시 110:7). (267.2)
 소생시키는 물은 각 진영 옆에서 흘러나온다. 모든 사람들은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침을 당하실 그 반석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생명의 시내를 값없이 마실 수 있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그대는 마시기를 갈망하는가? 그 반석이 그대를 위하여 침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모세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며, 그대가 그 반석을 다시 쳐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말하여) 물을 내라”(민 20:8). 그대가 죄로 지쳐 있어서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그분에게 말하라. 그분께 그대의 죄를 주어 버리라.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자신의 의로 그대를 옷 입혀 주실 것이다(갈 1:4; 사 6:10). (267.3)
 아마존강은 거대한 양의 물을 대서양으로 흘러 보내므로 수 마일 밖 바다에까지 민물이 퍼져 있다. 아마존강 어귀의 바다에서 항해하던 배 한 척이 저장해둔 식수가 다 떨어져서 먼 곳에 있는 다른 배에 신호를 보내 먹을 물을 좀 달라고 요청했었다고 한다. 대답을 알리는 신호가 왔는데, 그것은 “퍼서 마시라”는 것이었다. 선장은 그들이 신호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다시 신호를 보냈다. 물길을 가로지르며 꼭 같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선장은 화가 난 채로 선원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퍼서 마시라’고 하는 군. 물통을 내려서 물을 퍼 봐!” 놀랍게도 물통이 길어 올린 물은 민물이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갈증은 해소되었다. (268.1)
 때때로 우리들은 대적의 땅에 있으며, 주께서는 멀리 떨어져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명강의 물줄기는 집집마다 문 곁에서 흐르고 있다. 하나님의 임재의 햇빛 가운데로 인도되기를 원하며 그분의 보호하심을 느끼기 원한다면, 다만 “퍼서 마시기”만 하면 된다. (268.2)
 다윗처럼 우리도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시 61:2~4)라고 부르짖을 필요가 있다. (268.3)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의 기초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퉁이 돌이시다(엡 2:20).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시다(벧전 2:3~4). (268.4)
 지상에 사는 각 영혼은 언젠가는 이 돌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는 그 돌 위에 떨어져서 깨지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든지, 아니면 그 돌을 거절하여 결국에는 돌이 그 위에 떨어져 그를 부숴버리든지 할 것이다(마 21:42, 44). (2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