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19세기 미국의 대 각성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표적인 부흥운동가들로는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1792-1875), 드와이트 L. 무디 (Dwight L. Moody,1838-1899),R. A. 토리(R. A. Torrey) 등이 있다. (184.1)
찰스 피니는 19세기 미국에 부흥운동을 일으킨 유명한 부흥사이다. 피니를 통한 부흥운동은 자신의 영적 회심으로부터 시작된다. 1821년 10월 10일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법률사무소에서 환상 가운데 빛으로 임재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강력한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것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았고 내 마음 속에 그런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그런 것에 대해 말할 것을 들어본 기억도 없이, 성령은 나의 몸과 영혼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내위에 내려왔다... 정말 성령은 사랑의 물결이 엄습해 오듯 내게 밀려 왔으며, 마침내 나는 ‘이 물결이 계속 내 위를 지나가면 나는 죽겠습니다. 주여,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소리쳤다.”37)(184.2)
피니의 이 경험은 다메섹 도상의 바울의 경험처럼 땅에 엎드려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아침에 교회 기도회에 참석했을 때 돌연히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신비한 모습으로 그를 두루 비췄으며 그 순간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 체험 이후, 피니의 복음전도 사역은 폭발적으로 번져가기 시작하였다. (184.3)
한번은 피니가 뉴욕 방직공장을 방문했는데, 일하던 한 여공이 피니가 다가가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쓰러졌으며 눈물로 통회하였다. 그러자 그 방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날 사장은 모든 직공들을 모으고 공장 문을 닫고 피니를 초청하여 집회를 열었다. 며칠이 지나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 모든 직공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185.1)
미국 뉴잉글랜드 전역에 부흥이 일어났으며, 부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 년에 100,000명의 개종자가 생겼다. 피니는 19세기 미국에서 위대한 부흥운동가로 등장했을 뿐 아니라 그는 1832년 오벌린대학(Oberlin College) 교수가 되었고, 1851-1866년에는 총장으로 일했으며, 죽기까지 그 학교에서 가르쳤다. (185.2)
무디가 기독교에 헌신하게 되는 첫 계기는 YMCA를 통해서였다.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무디는 1858년 시카고에서 주일학교를 시작하여 주일학교 부흥운동으로 유명해졌으며, 1866년에는 시카고 YMCA 회장이 되었다. 1871년 시카고 화재로 모든 것이 파괴된 이후에 무디는 가수 아이라 센커와 함께 국제 YMCA를 통해 활동하게 되었다. 1873~1875년 사이의 2년 동안의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와 미국에서의 부흥집회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185.3)
무디는 중생과 성령충만을 구별하였다. 둘 다 성령의 사역이라고 하였으나 성령세례가 성결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령세례의 결과는 봉사를 위한 능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중생 다음에 오는 제2의 성령충만의 경험으로 성령세례를 강조하였다.38)(185.4)
무디의 후계자 토리는 성령론 신학을 수립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성령론에서 성령세례, 성령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을 받음, 위로부터 능력을 받음,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등은 같은 경험의 다른 표현으로 서로 통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39)(186.1)
무디처럼 토리도 성령세례는 성령의 중생사역과 다르며, 중생 후에 부가적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중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성령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다. 중생으로 생명을 받은 자는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을때에 능력이 임하고 그는 봉사에 적합하게 된다고 하였다. 토리는 중생과 성령세례가 분명히 다른 사건임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성령세례의 본질은 능력과 봉사라고 보았다.40)(1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