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자들은 항상 인류의 본래적인 통일성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아모스 9:7은 셈족(이스라엘)이든 함족(블레셋)이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민족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고 설명한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유전적 우수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에 따른 것이다. (260.6)
 E. 내면의 삶과 그것의 유기적 지지(支持)
 1. 전인적 존재로서의 인간
 사람의 삶은 자연적인 삶과 초자연적인 삶, 내면의 삶과 외적인 삶 등 매우 다양한 측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자나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한편으로는 자연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다(초자연적인 측면의 삶). 또한 자연계에서의 삶 속에도 동물의 삶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내면의 삶(생각, 느낌, 이성, 기억, 의지,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등)이 있는 반면에, 동물의 삶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유기체로서의 외적인 삶(음식물, 수면, 번식등)도 있다. (260.7)
 사람의 내면적이고 관계적인 삶에 강조점을 둔 어떤 사람들이 사람의 본질을 이원화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이원론적 견해에 따르면, 사람의 내면적, 관계적 삶은 우리의 육체 안에 거하면서도 육체와는 별도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영” 또는 “혼”이라 불리는 실체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 실체는 동물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삶에만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본질을 영과 혼과 몸, 이 셋으로 나눈다. 하지만 사람의 본질을 둘로 나누든 셋으로 나누든 그 견해들이 중시하는 점은 “영” 또는 “혼”이 독립적으로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그 외의 문제들은 모두 부차적인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60.8)
 이원론은 일반적으로 영이나 혼이 몸이 죽은 후에 그 몸과 분리되어 영원히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상과 결합되어 있다(“불멸의 영”). 그렇지만 이 동일한 용어들(영 또는 혼)은 대체로 내면의 삶을 주관하는 어떤 독립된 실체를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라 내면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용어들로 쓰이고 있다. (261.1)
 2. 성경적 일원론
 이원론과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성경적 일원론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내면의 삶의 외적 표현은 모두 유기적 체계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사람의 본질에 의존되어 있다.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전체가 모여서 단일체로 그 역할을 수행한다. 몸과 분리된 상태에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영이나 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혼” 또는 “영”은 사람의 지적, 정서적 및 의지적 측면을 나타내는 용어로 받아들여야 한다. (261.2)
 사람을 일원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이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단에 속한 여러 신학자에 의해 점점 더 밝히 드러나고 있다. 〈해석자를 위한 성경 사전(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야훼께서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이 우리로 사람이 두 종류의 분리된 실체인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는 오르페우스교의 교리와 플라톤 철학에 그 근거를 둔 결론에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 히브리인들에게 이 구절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사람이 육화(肉化)한 영(incarnated soul)이 아니라 생화(生化)한 몸(animated body)라는 것이다.” (261.3)
 성경에 나오는 “혼”“영”은 모두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의 역할이나 그 사람의 전인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구약에서 “혼”“영”으로 번역된 네페쉬루아흐, 그리고 신약에서 이에 상응하는 용어들로 쓰인 프쉬케프뉴마, 양쪽 모두에 해당된다. 이 용어들은 단 한 번도 육체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영이나 혼, 곧 사람 속에 있는 어떤 불멸하는 실체를 나타내는 데 쓰인 적이 없다 (261.4)
 3. 성경이 말하는 “혼”“영”
 창세기 2:7에 기록된 사람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하나님께서 물질로 구성된 유기체에게 “(영)혼”이라는 어떤 비물질적인 실체를 불어넣으신 것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그 같은 추측은 성경의 기록에 반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주변에 있던 동물과 똑같이(창 1:24, 2:19) “흙으로” 지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른 점은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더욱 깊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신 것 말고는 없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으며, 그러자 그가 “산 존재(네페쉬 하이야)”가 되었다. 이 생명의 기운은 사람뿐 아니라 새와 파충류와 포유동물 및 기타 모든 동물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에(창 1:30; 7:22), 동물들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네페쉬 하이야로 불렸다(창 1:20, 24). (261.5)
 형용사 하이야는 “살아있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네페쉬가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들에서 일반적으로 “영, 영혼”로 번역되고 있긴 하지만, 사람과 짐승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 용법으로 미루어 볼 때(20, 24, 30절;2:19; 7:21), 그것은 어떤 불멸의 실체도 아니며, 심지어는 일종의 고등한 기능도 아님이 분명하다. 이 용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목”또는 “식도”로서, 여기에서 “식욕”이라는 개념도 파생된다. 〈개정표준역(RSV)〉은 이사야 5:14에서 이 단어를 실제로 “식욕”(〈개역한글판〉에는 “욕망”으로 되어 있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창세기 34:3에서도 “영혼”(〈개역한글판〉에는 “마음”으로 되어 있음)으로 번역된 단어를 “욕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사야 5:14에서 이 단어는 “입”과 평행적으로 나타나며(참조 합 2:5), 잠언 25:25(갈한 “영혼”이 냉수를 즐기는 것처럼)과 기타 유사한 성경구절들에서도 이 단어를 이렇게 번역하면 뜻이 더 명확해질 수 있다.(〈개역한글판〉에는 “영혼”이 아니라 “사람”으로 되어 있다.—역자주). (261.6)
 “숨 쉬다”라는 의미의 동사 나파쉬에서 나온 명사 네페쉬신명기 24:6과 다른 많은 성경구절들에서 처럼 “생명”이라는 비유적 의미를 지닌다. 잠언 8:35에서는 이 단어가 “죽음”과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면서 “생명”을 의미하는 또 다른 단어인 하이임과 평행적으로 나타난다(위에 언급된 하이야를 참조하라). 사무엘상 28:9, 시편 30:3; 1247, 잠언 7:23; 19:18 등과 같은 성경구절들도 문맥상 “생명”의 의미를 이와 유사하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감각을 가졌거나 그저 생장 중에 있는 어떤 생명이 아니다. 그것은 그보다 훨씬 더 생동적이고 활동적인 생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합하면 창세기 2:7에 나오는 네페쉬 하이야“살아있는 활기찬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말하자면 사람은 영혼(soul)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이다. (262.1)
 이처럼 창세기 2:7이 묘사하고 있는 사람의 구성 요소들이나 그 창조의 과정 속에는 이원론적 의미에서의 “영혼”이나 그와 유사한 어떤 요소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사람은 분명 동물보다 우등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가 동물보다 우등한 것은 사람이 동물보다 더 많은 수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질적으로 동물과 다르게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전 3:19). 여기에 이원론적 견해가 설 자리는 없다. (262.2)
 죽음은 원래 이 세상의 한 부분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의 과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서도 이원론적 사상이 성경의 사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에서 죽음은 땅으로부터 취하여진 사람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며 임종과 더불어 그 숨(루아흐, “바람”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대체로 “영”으로 번역됨)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창 3:19). 이 같은 묘사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생명 있는 다른 피조물들에게처럼(창 6:17; 7:15, 22) 사람에게도 생명력을 빌려 주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전 12:7). (262.3)
 죽음 이후에까지 생존하는 개체나 지각을 가진 실체는 그 어떤 것도 없다(시 6:5; 30:9; 88:10; 115:17; 146:4; 전 9:5, 6; 사 38:18, 19). 이 역전 현상이 다시 바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것은 오직 부활 때에만 가능하다. 따라서 무덤 저편에 대한 소망은 부활 이외 에는 없다(고전 15:16-23; 참조 요 6:39, 40). 육체가 없는 어떤 실체가 아닌 오직 부활만이 죽은 사람들을 그들이 처해 있는 허망한 상태에서 건져낼 수 있다(눅 20:37, 38). 영국 출신의 성경 번역가이며 순교자인 윌리엄 틴덜(William Tyndale)이 수 세기 전에 지적한 것처럼, 육체와 분리된 영혼들이 천국이나 지옥 또는 연옥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와 바울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참조 죽음I. A. 3, 4; 부활 I. A) (2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