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7 부 삶의 순환 속의 그리스도 (죄의 결과(assignations)로부터의 자유) 36. 안식년과 희년 (나의 모든 해방은 그리스도의 것임)
 잃어버린 자들을 구속하시고, 사망장(master of death)의 포로들을 자유케 하고자 오신 그분의 봉사의 생애속에 반사되었던 그 기별들은, 오늘날 만유를 회복하시러 속히 오실 그분에게 다시 초점을 모은다. 하늘과 땅의 주께서는 새롭게 된 세상에서 당신을 섬길 종들을 준비시키고 계신다. 거기서는 아무도 어떤 것을 자기 것으로 움켜 쥐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는 사랑의 법이 최고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회상이 될 것이다. (459.3)
 희년
 흠정역에 나오는 Jubile(주빌리)는 양이나 양각(레 25:9)을 뜻하는 히브리어 yobel(요벨)을 음역한 것이다(라틴어로는 jubilare(주빌라레) “기쁨의 외침을 높이다”). 성경은 제50년을, 70인역이 설명하듯이, “양각의 해” 또는 “면제”라고 이름한다. 에스겔은 그것을 “해방년”이라 칭하였다(겔 46:17). (459.4)
 이 해를 알리는 “유벨”, 혹은 양각 나팔은 여리고를 함락시키는 데 사용한 기구와 흡사하다. 그 경우 그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애의 새로운 국면, 즉 전쟁과 노획의 시작과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길의 열림을 알렸다. 매 50년마다 희년의 나팔은, 새롭고(unique)평화로운 시대, 그 시대 동안 하나님의 왕가 사람들(almoners)은 곤궁한 자들, 짓밟힌 자들과 축복들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새 시대의 시작을 공포할 것이었다. (459.5)
 희년의 서곡
 희년이 시작되는 시기는 구속의 일정표(calendar)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속죄일이 각 이스라엘 사람들의 운명을 이제 막 해결하였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금종에서 나는 “즐거운 소리”(시 89:15)가 들려오고, 그의 축도속의 보증의 말씀을 들은 후 마침내 양각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들은 마음의 전율을 느낀다. 경건한 경배자들은 이 때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의 요벨을 불어 양각 나팔 소리와 함께 해방의 혼성곡이 되게 한다. 그리고 곧 그 소리는 모든 산과 계곡에 전인류의 희망의 신호로 메아리친다. (459.6)
 희년은, 속죄일이 예표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그 때에 복음의 나팔이 전세계적으로 울려 퍼진 후에 있을 대 해방(emancipation)을 예기하기 때문에 종말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전 15:52). 요한은 이상중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어 복음의 “비밀”이 그 임무를 완성했다고 선포하는 소리를 들었다(계 10:7). Jubilee(주빌리)란 이름 때문에 jubilation(주빌레이션)이란 영어 단어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넘쳐 흐르는 “노래”(singing)를 뜻하며, ‘기뻐 외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jubilare(주빌라)에서 파생된 말이다. (459.7)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으로부터 승천하셨을 때,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선물을 주시기로 결심하셨다. 무엇이 그분께서 중보의 보좌에 오르신 것을 알리고 또 그 일을 빛낼 만큼 풍성한 선물이 될까? 그것은 그분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왕권을 나타내는 그런 것이어야 했다. 그분은, 신성의 제3위로서 그분을 대표하는 분을 주시기로 하셨다. 이것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었다. 그분께서는 모든 선물을 하나에 담아 주시고자 하셨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 회개케 하심, 교화시키심, 거룩케 하심 등이 그분께서 주신 것들이다 ∙∙∙ .” (160.1)
 “그러나 때가 왔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를 기다려 왔다. 10일 동안 제자들은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간구하였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중보를 더하셨다. 이것이 그분의 승천과 취임, 하늘에서의 희년이었다. 그분은 높이 오르셔서 그리고 지금 성령의 선물을 주장하셨는데, 그것을 제자들에게 쏟아 부어 주시기 위해서였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어졌다. 마치 심한 돌풍처럼 성령이 모인 사람들에게 임하여 온 집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억제되었다가 세상에 전달되기 위하여 이제 교회에 쏟아지듯이 충만하게 능력으로 임하였다”(Signs, 1898. 12. 1). 죽음의 감옥에서 사단의 포로들을 자유하게 한 일이 예수에 의해 하늘의 희년 때에 일어났음을 주목하라. 최종적 희년이 그동안 마귀의 포로가 되었던 하나님의 모든 종들이 자유케 됨을 경축하게 될 것이다. (160.2)
 희년의 시기
 희년의 시작 시기는 안식년에 따라 결정된다. 이 안식년이 일곱번 지난 후에 “제50년이” 희년으로 경축되어야 하였다. 어떤 연대 학자들은 제49년을 희년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기네들의 도식(scheme)에 맞추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제50년”(레 25:10, 11)이란 명칭과 모순되며, 주님께서, 제 49년 즉 안식년과 그 이듬해인 희년에 농사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필요되었다. 3년간의 식량 공급을 약속하신 사실을 보아도 확실하다. (160.3)
 희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희년의 목적은 다음의 4항목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휴식(레 25:11),

 (2) 면제(레 25:10, 35~46),

 (3) 돌아감(레 25:10, 13),

 (4) 속량(레 25:24~34).

 이것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60.4)
 휴식: 안식년과 희년은 모두 일상 생활의 분주함에서 떠나 쉴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람들은 한 두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식량과 물질이 풍부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을 쉬고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 대해 생각하라고 요구하셨다. (160.5)
 면제: 안식년에 자유을 얻지 못한 히브리인 노예들이 이 희년에 해방된다. 이들 규정은 당시 사회에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들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부유한 자들과 같은 양의 권리를 가진 (부조와 선지자, 534)그들에게, 경제적 인정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함을 보여 주셨다. (160.6)
 희년은 이 땅이 원래의 주인(Landlord)과 소작인인 그분의 백성들(tenants)에 의해 완전히 다스려지는 새 세상으로 회복되는 것에 대한 예언적 표상이었다. (461.1)
 돌아감: “희년을 특별히 구별지은 것은 모든 부동산(landed property)을 원래 소유했던 가정이나 상속자들에게 복귀시킨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533~534). 빚 때문에 재산이 압류되어 집으로부터 내어 쫓김을 당할 때 채무자는 희년까지의 햇수를 계산했고, 그 해가 오자 즐거이 그 집을 다시 소유하였다. (46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에 재물에 대한 지나친 애착심이 자라는 것과, 그로 인해 일부의 사람들이 재물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자 하셨다. 그분은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로 간주하여 경멸하는 것과, 무질서한 사회에서 가난한 자들이 겪는 절망 등을 몰아내고 그 나라의 사회적 경제적인 분야의 잘못들을 바로잡고자 애쓰셨다(참고 부조와 선지자, 534). (461.3)
 희년에 대한 법규들은 “가난한 자들 못지 않게 부자들을 축복하시고자 고안 되었다. 그들은 욕심과 자기를 높이는 정신을 버리고 고상한 박애의 정신을 계발하게 될 것이었다. 각 계층 사이에 호의와 신뢰심을 배양함으로써 사회의 질서와 국가의 안정을 증진시킬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인간(humanity)이라는 거대한 피륙에 함께 짜여져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유익과 향상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도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 가난한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법칙들이 계속 수행되었더라면, 현재 세상의 상태는 도덕적, 영적, 현세적으로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이기심과 자기를 중시하는 경향은 지금처럼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각 사람은 타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하여 친절히 염려하는 마음을 품었을 것이고, 지금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그같은 광범위한 빈곤은 있지 않았을 것이다 ∙∙∙ . 이 원칙들은 거대하게 재물을 모으고, 무제한의 향락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인 반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느라 제대로 임금을 지불하지 못한 노역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빠지게 된 무지와 퇴락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원칙들은 지금 무질서와 유혈로 세상을 채우고자 위협하는 문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34~536). (461.4)
 예수께서는 해방과 구속을 전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