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챤과 술 제 7 장 주정 음료와 관련하여 잘못 이해된 성경 귀절 5. 디모데전서 3:8 “집사들도…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
 바울은 집사 직무의 자격을 이야기하면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 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오이노스)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딤전 3:8)라고 말하였다. 적당론자들은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란 문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이 적당한 음주를 승인하는 증거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58.1)
 “인박였다(폴로[polio]:‘많은’을 뜻함)”는 문구가 적당론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구다. 왜냐하면 케네스 젠트리가 말했듯이 “인박였다는 것은 마선 양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53 적당론자들은 바울이 “주정 음료를 남용하는 것만을 금하였다 ∙∙∙ 신약성경의 그 어느 사도도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다”는 것만을 말한다고 생각한다.54 (258.2)
 성경이 적당한 음주를 승인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적당론자들에게 이 귀절이 매우 중요하기에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란 말을 성경의 본문적, 문화적, 일반적 가르침에 비추어서 검토하여 보아야만 한다. (258.3)
 직접적인 문맥
 디모데전서 3장 8절에 나오는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란 문구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 귀절이 속한 직접적인 문맥은 종종 간과되어 왔다. 감독에 관한 내용이 끝나자마자 집사 자격 요건은 곧바로 “이와 같이 (hosautos)”란 부사와 함께 나온다. 이것은 감독의 자격 요건이 크게 집사의 자격 요건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뜻한다. (258.4)
 바울은 감독의 직무에 관하여 말하면서 그 직무를 갈망하는 이들은 네팔리오스, 즉 금주하고, 메 파로이노스, 즉 음주 장소나 파티 자리에 끼지 말라고 하였다 (딤전 3:2~3). 바울은 6장에서 이미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기독교 성직자는 금주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나 또는 그 외의 사람들의 금주가 시험받을 수 있는 장소나 모임에 참석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258.5)
 바울은 감독들에게 훈계하는 문맥에서 “이와 같이 집사들도 ∙∙∙ 술에 인박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 점은 문제를 제기한다. 바울과 감독 (장로, 목사)은 금주하고 집사들은 적당히 마실 수 있다는 이중적인 표준을 제시하는가? 대부분의 번역들은 이런 인상을 주고 있다. 즉 감독들은 술에 중독되지 말아야만 하는 반면에 집사들은 적당히 술에 중독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과연 바울이 도덕적 행동에 관하여 이중적인 표준을 제시하고 있는가? (259.1)
 약간 중독되는 것은 괜찮은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에 중독되는 것은 그것이 적당한 선에서든지 아니면 과도하든지 항상 도덕적으로 그르다. “술에 인박이지 말라”는 말이 적당한 선에서 술을 마셔도 된다는 것을 승인한다는 주장은 많은 양일 경우 금하여진 것은 자동적으로 적은 양일 경우 허용되어질 수 있다는 추정에 근거한다. 이러한 추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크리스챤들이 이교도들처럼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벧전 4:4)을 이교도들이 이상히 여기었다는 베드로의 말은 크리스챤들이 적당히 방탕하였다는 말이 아닌 것은 매우 확실한 사실이다. 과도하면 불법이지만 적당하면 자동적으로 적법하다고 추정하지 말아야 한다. (259.2)
 본문의 바로 다음 문구인 “더러운 이 (利)를 탐하지 아니하고”는 이 점을 잘 말하여 준다. 바울은 이 문구로 비윤리적인 소득에 대한 적당한 욕망을 승인하고자 하는가? 바울이 술을 과하게 마시는 것과 더러운 이익을 과도하게 탐하는 것을 정죄한 점은 적당하게 마시거나 탐하는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은 술집에 너무 많이 간단 말이야”라고 말하였을 때에 그것은 술집에 적당하게 가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다. (259.3)
 6장에서 신약성경이 근신하고 절제하라고 훈계한 것에 관한 연구에서 성경이 모든 좋은 것들은 적당히 사용하라고, 또 모든 해로운 것들을 완전히 금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성경에 나오는 적당함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성질의 문제이다. 만일 취하게 하는 술이 본질적으로 악하다면 그것을 적당히 마시는 것이 그것의 성질을 좋게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259.4)
 ‘인박이다’의 의미
 지금까지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란 말이 그 본문이 속하여 있는 직접적인 문맥에서 바울이 감독들에게 금주하라고 한 명령과 모순되기에 포도주를 적당히 마시는 것을 뜻할 수 없었다는 것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 문구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 문구가 집사 직분을 감당하고자 하는 이들이 충족시켜야 하는 네 가지 선행 조건 중의 하나라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이다. 이 말은 “술에 인박이지 말라”는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에 관한 일반적인 원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는 이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집사 직분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55 (260.1)
 바네쓰는 “이 자격 요건은 어디서든지 성직자의 필요 조건으로 여겨진 것이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만 한다. 이교의 제사장들도 신전에 들어갈 때 술을 마시지 않았다(블룸필드). 유대의 모든 계급의 유대 제사장들도 포도주와 모든 종류의 독주들을 마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독교 성직자들이 술을 마시는 것이 유대나 이교 제사장들이 술을 마시는 것보다 적절하여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이 그들보다 덜 거룩하여야 하기 때문인가? 소명의 순수성을 가볍게 느끼기 때문인가?”라고 말하였다.56 (260.2)
 술에 인박이는 것과 소량의 술
 “술에 인박이었다”는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디모데전서 5:23에 나오는 적은 양의 포도주”에 관한 언급이다. 후자는 디모데전서에서 “술”이 나오는 이 절 이외의 유일한 경우이다. 전기하였다시피 이 귀절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쾌락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의약적인 목적을 위하여 적은 양의 술만을 마시라고 권고하였다는 것과, 마시라고 권고한 것이 역사적 문헌상에 의하면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일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260.3)
 만일 바울이 디모데의 금주를 의료적인 목적을 위해서 적은 양의 술만을 사용하라고 권고함으로 디모데의 금주를 승인하였다면 집사들에게 쾌락을 위해서 술을 적당히 마시라고 권하였을 리가 절대로 없다. 이것은 일관성의 문제이다. 크리스챤이 술을 적당히 마실 수 있다고 바울이 생각하였다면 디모데에게 “적은”이라고 제한할 필요도 없었고, 한정적인 목적을 나타내는 “네 비위를 위하여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 “술에 인박이지 말고”란 문구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의도 된, 치밀하지 않게 말한 것일 개연성이 높다. (260.4)
 이 문구가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에 찬동하는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과 바울이 금주에 관하여 말한 가르침과 정면으로 대치된다.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이 모순성을 예증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감독이면 금주하여야 하고(네팔리오스) 술에 근접하지도 말아야 한다(메 파로이논딤전 3:2, 3). 만일 당신이 남집사라면 적당히 마셔도 된다(메 오이노 폴로8절). 만일 여자라면, 아마도 여집사라면 금주해야 한다 (네팔리우스11절). 만일 노인이라면 금주해야 한다(네팔리우스딛 2:2). 만일 늙은 여자라면 적당히 마셔도 된다 (메 오이노 폴로딛 2:3). 자 만일 늙은 여집사인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루는 금주하고 그 다음 날은 적당히 마셔도 되는가? 이러한 터무니 없는 모순은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란 문구가 적당한 음주가 용납 되는 것을 암시한다면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피하라고 하는 것을 치밀하지 않은 언어 사용법으로 말한 것이다.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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