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낭독함
 티스리 16일부터 20일까지—후에는 유대인들이 이 기간을 “명절의 중간”(Sukkah 3:15, 참고 요 7:14)이라고 부름—특별히 안식년에 율법이 모인 청중들에게 읽혀지고(신 31:9~13),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들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강론이 뒤따르곤 하였다. 예를 들어 에스라는 친히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느 8: 18) 율법책을 낭독하였다. 마지막 장막절에 예수께서는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느냐는 질문으로 이 관습에 사람들의 주의를 끄셨다(요 7:19). (447.3)
 많은 희생을 드린 것이 이 절기의 특징이었음
 조석으로 드리는 제물 외에 많은 희생들이 특별히 이 주의 경축을 위해 드려졌다. 이 제물들은 첫 날에는 30마리로 시작하여 점차 줄어서 마지막 여덟째 날에는 황소 한 마리, 수양 한 마리, 염소 새끼 하나, 어린 양 일곱 마리가 드려졌다(민 29:35~59, 엉거의 성경 사전, 360). 합산하면 황소 70마리, 수양 14마리, 어린 양 98마리, 염소 7마리가, 그 주 동안에 드려졌고, 전체적으로나 그룹별로나 항상 드려진 짐승의 수는 그와 배수가 되었다. 여덟째 날에는 수양 일곱, 황소 하나, 수양 하나, 염소 하나를 더 드렸다. 이 옥타브 동안에 모두 199마리의 동물들이 희생되었다. (447.4)
 주일 동안에 속죄제가 드려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완전한 완성된 희생을 가리켰다. 십자가는 모든 축제 빵들에 날인 될 뿐 아니라, 모든 물질적 축복과 모든 진실된 즐거움의 기초가 되었다(시대의 소망, 660). 엘렌 화잇은 “추수 감사 때 그토록 많은 희생을 드려 피의 강에 흐르게 한 것은 위대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지상의 모든 생산물까지도, 우리의 생계를 위해 제공된 풍성한 자연의 선물들까지도 갈바리 십자가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 제물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께로부터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이 구속하는 사랑(redeeming love)의 선물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보았다(RH, 1896. 11, 10). (447.5)
 모든 희생들은 갈바리에 흡수됨
 그러나 도살되는 짐승의 수는 규정 스케쥴에 따라 점차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점차 수가 줄어드는 희생들이, 결국 모든 제물들이 하나의 크고 완전한 산 희생으로 합쳐지는 그 날의 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다른 모든 축제들에 드려진 총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희생 제물이 이 때에 드려지게 되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도살보다는 자비를 더 좋아하셨다(호 6:6). (447.6)
 죽음과 삶, 희생과 찬양, 끝과 시작, 씨뿌림과 수확, 이같은 관념들이 계속 장막절 기간 동안 지각 있는 경배자들의 생각을 자극하였다. (448.1)
 그리스도 당시, 이 절기 중 아침 희생이 드려질 때, 제사장이 금 주전자를 들고 레위인 합창대를 포함한 즐거운 행렬과 함께 경배자들을 실로암 못으로, 인도하였다(시대의 소망, 448, 449, 수카, 4:9). 거기서 그는 평화의 샘에서 금잔을 채워 어깨에 메고 성전을 향해 돌아섰다. 이것은 가까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못에서 마시라는 신호였다(시대의 소망, 448, 449). 시온산 기슭과 감람산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경배자들은 그때 기쁨의 찬양을 쏟아 놓는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라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 3). (448.2)
 물 예식
 희미하게 빛나는 물 주전자를 둘러멘 제사장은 그 때 여호와께 찬양하는 나팔 소리가 울리고 레위인들이 기쁨의 송가를 부르는 동안 10보를 각각 멈추었다 떼었다 하면서 성전으로 올라간다. 이 무리가 수문을 통하여 성전 뜰에 당도하면 모든 경배자들이 노래에 참여한다.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오 예루살렘”(시 122:2). 이 때 물이 엄숙히 제단에 드려진다. 이 의식이 너무 중요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종종 이 절기가 “쏟아짐의 집”(House of Cutpouring)이라 불리우기도 하였다(수카 5:1, note 12). 십자가 위에서 견디셔야 할 것들을 미리 생각하시면서 구세주께서는 “내가 물처럼 쏟아졌다”고 말씀하셨다(시 22:14). (448.3)
 이 의식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광야의 쪼개진 반석에서 내신 물(출 17:6)을 경축하고, 찔리신 반석, 메시야 당신을 기대하였다(고전 10:4). 실로는 그리스도에 대한 야곱의 예언적 의름이며(창 49:10),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은 것은 “보내심을 받은 자”(요 9:7)를 뜻하였으며, 둘 다 기념적이며 예언적이었다. 생각 있는 경배자들에게는 “친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성령의 쏟아 부으심과 관련되었으며(느 9:20), 그들은 이 성령을 메시야가 올 때에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다”(RH, 1885. 11. 17). 이 물이 공급되는 경로에 대한 지시들은 엄격히 따라 행해졌다. “실로암 물이 금 용기에 담아져서 제사장에 의해 성전으로 운반되고, 포도주와 섞인 후 제단의 희생 제물 위에 부어졌으며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허다한 무리의 목소리들이 나팔과 심벌 소리와 섞여서 함께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찬양을 돌렸다”(RH, 1885. 11. 17). 이 예식은 종말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스도는 당신께서 하늘 아버지 집에서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계 21:6) 주실 때가 오리라고 계시자(요한)에게 약속하셨다. (448.4)
 그리스도는 생수이심
 한 번은 이 절기 동안, “군중의 모든 혼잡스러움과 즐거움의 외침 위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었다. 겉으로는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예수의 눈은 매우 부드러운 동정으로 무리를 바라보시면서 생명의 물을 갈급해하는 목마른 영혼을 보신다.” (448.5)
 “그러나 계속되는 의미 없는(empty)예식들로 영혼의 필요들을 채우고자, 물도 없는 수조(cisterns)에서 갈증을 해소하고자 애타게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큰 필요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샘이 열린 데 대한 큰 기쁨을 외부적으로 나타냈지만, 그 생명을 주는 물을 친히 마시기를 거부하였다”(RH, 1885. 11. 17). “오늘날 진리의 샘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그 샘에서 마시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요 의무이다”(RH, 1885. 11. 17), 영원한 영이시여, 우리 영혼속에 갈증을 주소서. (449.1)
 물로 진행해야 할 예식이 좀더 있다. 제단 가까이에 “두 개의 은 대야가 있었고 각 대야 곁에 제사장이 한 명씩 서 있었다. 한쪽의 대야에는 물이, 다른 쪽 대야에는 포도주가 부어졌다. 양쪽 내용물이, 한 파이프를 통하여 기드론 시내로 흘러 들어가 마침내 사해에 이른다”(시대의 소망, 449, Sukhah 4:9). 주는 새 언약을 인준한 예수의 피를 상징하며(시대의 소망, 653) 물은 성육신한 영감의 말씀이 제공하는 정결케 함을 예표한다(마 26:27, 28). 이 의식은 죽음의 메마른 세상으로 거품 일며 흘러 들어가는 크신 희생의 공로를 나타낸다. 에스겔은 이 물이 성소에서 흘러나와 치유하는 강으로서 사해로 물결쳐 들어가는 것을 묘사하였으며(겔 47:1~8), 그것의 흘러 드는 곳은 어디나 죄 가운데 죽은 자들이 회생되었다(엡 2:1). (449.2)
 은혜의 강에서 기쁨이 솟아오름
 이 예식은 모든 경배자들에게 기뻐하라는 신호였다. 훗날 유대인들은 “물을 걷는 즐거움을 보지 못한 자는 평생 기쁨을 보지 못하였다”고 회상하였다(Sukikah 5:1).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에도 주께서는 명하셨다. “너희는 절기에 즐거워하라”(신 16:14). 저녁 식사 후 매일 저녁 경축객들은 저녁 축제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성전에 모여들거나, 진행되는 모든 것을 내려다 보기 위해 성 근처의 언덕들을 찾았다. “성전 뜰은 큰 기쁨의 현장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 성전의 제사장들, 백성의 관원들 모두 악기 소리와 레위인들의 합창 소리에 맞추어 함께 춤을 추었다.”(시대의 소망, 463). (449.3)
 참가자들은 승리의 상징으로 각각 종려나무 잎 하나와 도금양 세 가지들을 한데 묶어 버드나무 가지 하나와 같이 들고, 왼손에는 감귤나뭇가지를 열매째 들었다(수카 3:4~9, 4:7, 참고 레 23:40 “아름다운 나무 실과”). 이것은 룰랍(Lulab)이라 불리웠으며, 종려나무가지라는 뜻이나, 종려, 도금양, 버드 나뭇가지 다발일 수도 았다(Sukkah 3:8, n. 12).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풍부의 표시인이 다발을 흔들면서 제단을 한 바퀴씩 돌았다. 이 행사의 제7일에 그들은 여리고 성의 함락과 약속의 땅의 열림을 기념하기 위해 제단을 일곱 번 돌았다(요 7:37, Sukkah 4:5). (449.4)
 시편들을 노래하며(Sukhah 4:8),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그들의 죄를 이기고 승리하게 하신 것을 기뻐하였다(Sukkah 4:5). 이날의 마감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사람들은 움막을 해체하여 불태우고, 아이들은 부모들이 의식에 사용하던 오렌지나 감귤을 먹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4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