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8장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 V. 그리스도의 봉사가 승리를 거둘 것이다
   왕좌가 놓이고 〔지성소에 있는 법궤로 상징되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하나님 아버지〕가
좌정하셨는데 〔하늘의 “자비의 보좌(시은소)에”〕∙∙∙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법궤 위에 있는 그룹으로 대표된 천사들〕
심판을 베푸는데 〔하늘의 대속죄일〕
책들이 펴놓였더라.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와 같은 이가 〔예수, 우리의 하늘 대제사장〕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지상의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 가듯 하늘 지성소로 들어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하늘 심판의 끝에 죄로부터 정결되고 하나님 및 성 도들끼리 하나 되기로 선택한 성도들만이 거주하는 하늘 왕국을 그리스도가 유업으로 받는다〕 단 7:9~14.
(181.9)
 이것이 성소 정결의 장면이다. 구약의 성막이라는 조그마한 TV 화면에 비친 장면이 아니라 무한하고 영원한 하늘 화면에 비추인 광경이다. 성막의 정결은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것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히 8:5). 하나의 공간으로서 하늘의 성소는 하나님의 보좌로 손색이 없이 영화로우며 수백만의 천사들이 모시고 섬기기에 족할 만큼 광활한 곳이다. 이 성소는 소나 염소의 피로써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죽음과 피로써 정결케 되었다. (182.1)
 하늘도 정결케 되는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도대체 우리가 하늘 성소의 정결이란 생각을 실지로 할 수 있는가? 하늘에 존재하는 것에도 정결의 필요가 있는 것인가? (182.2)
 히브리서 9장 22, 23절에 따르면 분명 “그렇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J. B. 필립스(Philips)는 이 구절을 좀더 명료하게 번역하였다. “하늘에 있는 실재들의 지상 복제품들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정결케 될 필요가 있으나, 하늘에 실재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안목에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 제물에 의해서만 정결케 될 수 있었다.”33 (182.3)
 다니엘 9장요한계시록 14장을 연구할 때, 하늘에 있는 성소의 정결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 더 충분히 논의할 기회가 있을 줄로 안다. (182.4)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만 가지고도 다니엘 8장 14절의 상징적인 언어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괴이한 작태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족하다(p. 186~188 쪽에 있는 문답을 보도록). 다니엘 8장 14절의 언어는 상징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우주 재판정으로 옮겨 놓고 있다. (182.5)
 회복되었으며,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리고 정결케 되었다!
 가브리엘 천사가 니츠다크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더럽혀진 것이 다시 “정결케 되어” “올바름으로 회복되는” 개념에 대해 적절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 영어 새번역 성경(N.E.B)에는 “비로소 승리를 거두다”라고 번역되었다(p. 177). 이 번역에도 역시 매우 적절한 뜻이 드러나고 있다. (182.6)
 여러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의 타밋 즉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는 짓밟힘을 당했으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그로부터 제하여진 바” 되었다. 그리하여, 그 예언은 성취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예수님에 대한 진리가 비방을 받았다. 백성들을 도우려는 그리스도의 자유가 이교 사상과, 세속주의의 거짓된 가르침과, 심지어는 일부 기독교 교의의 잘못된 강조 때문에 제한을 받았다. 악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심지어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너무나 잘못 나타냈기 때문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고 성령으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변화하게 하는 대신에 지상의 사제들에 의존하고 적선(積善)과 행운의 여신에 의존하는 신앙을 갖게 되었다. (182.7)
 좀더 직설적으로 말을 하자면, “로마”가 미사라고 하는 거짓 희생 제사와, 또 거짓 사제(司祭), 교회의 거짓 머리, 그리고 구원의 거짓된 방도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봉사를 헛되게 했던 것이다. (182.8)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이 같은 사태에 종지부를 찍고 모든 것을 원상으로 회복하실 것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 있어서 승리의 날이요 또 하나님의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승리의 날인 것이다. (183.1)
 하늘의 대희년(大禧年)
 성소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정이다. (183.2)
 심판의 날은 대속죄의 날이다. 이 때, 하나님은 진정으로 그분과 하나 되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신원(伸寃)하시고 정결케 하신다. 이 때 하나님은 또,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모든 자들을 없이 하신다. (183.3)
 하나님이 이 일을 모두 마치실 때, 하나의 승리의 함성이 별들이 찬란히 빛나는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울려퍼진다. 악한 자들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인내는 악인들에게는 하나의 자비였지만 성도들에게는 시련의 나날들이었다. 그 기간을 견디면서 성도들은 “오 주여, 언제까지이니까?”하며 수없이 울부짖었다(계 6:10), 드디어,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근절케 하실 때, 우주의 의로운 거민들이 찬양의 함성을 외치는 것이다. “감사하옵나니∙∙∙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 11:17). (183.4)
 실로, 고대의 대속죄일도 시작은 엄숙하고 무겁게 진행 되었지만 끝은 기쁨으로 충만하 였다. 하얗게 단장한 시골 처녀들이 들판을 누비며 춤추었다. 다시 죄없는 천진함을 되찾은 기쁨에 가슴이 벅찼던 것이다.34 (183.5)
 하나님은 죄없음의 회복 위에 또 하나의 기쁨의 구실을 제공해 주셨다. 안식년이 일곱번 째 마무리하여 제 50년이 되는 대속죄일 오후에는 “소파르” 라는 나팔을 불어 희년(禧年, Year of Jubilee)의 시작을 선포하였다(레 25 장). (183.6)
 선전관(宣傳官)이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해야 했다”(레 25:10), 히브리 노예는 마 땅히 자유케 해야 했다. 지난 희년 이후에 샀거나 판 모든 토지는 원 소유자의 후손에게 귀속해야 했다. 이것은 사회의 정의를 회복하려는 계획이었다. 토지의 진정한 소유자는 사 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교훈이 이 속에 있었다. (183.7)
 다니엘의 이해를 위해서는 참으로 요긴한 예증이 아닐 수 없다. 대속죄의 날 곧 대심 판의 날에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나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 로 선포하실 것이며 공중에서 날아온 돌이 신상을 칠 것이며, 땅을 망하게 한 자들로부터 땅을 되찾을 것이며(계 11:18), 지극히 거룩하신 이의 성도들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이다.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마 5:5). (1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