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8장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 V. 그리스도의 봉사가 승리를 거둘 것이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존전으로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들어갔다는 사실은 죄와 그 대속의 인격적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다. 용서를 구할 때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용서를 구한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존전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가서 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벌써 “속죄소”(시은소)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179.6)
 대속죄일은 하나님이 폭군이 아니시라는 뚜렷한 증거를 제공하였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 하시지만 죄인을 사랑하신다. 그리하여, 그분은 우리를 회개케 하여 용서하시려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 것이다. (179.7)
 “화목케 한다”는 말은 “속죄한다”는 말의 동의어이다. 대속죄일에 하나님은 백성을 속죄하는, 즉 백성을 자신과 화목케 하는 분으로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시고 있다. (180.1)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피를 뿌린 후 지성소를 나와 성소에만 있는 금향로와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 위에 피를 뿌렸다. 두 제단에는 연중 내내 고백한 죄를 대표하는 피가 뿌려졌다. (180.2)
 이렇게 해서, 성경이 말하기를 그가 “그 지성소와 회막(즉 성소 전체를 뜻함)과 단(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쳤다고 했다(레 16:20). (180.3)
 전체 성소를 위해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대제사장은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광야의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이끌고 가서 놓아 버리게 하였다(이렇게 해서 “scapegoat” 즉 광야에 “버려진 염소”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속죄 양이란 뜻은 왜곡 발전된 것이다:역자 부분 注). (180.4)
 백성들의 역할
 대속죄일의 종교적 의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깊이 관여하도록 의도되었다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사실이다. (180.5)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을 완벽히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 칠월 초하루(로쉬 하사나아. Rosh Hashanah)에 성회로 모였다. 이 때 제사장들은 길고 꼿꼿한 은나팔을 불어 이 모임을 알렸다30(레 23:23~25; 민 10:1~10). 이 은나팔은 언제나 한 쌍으로 사용되었다. 이 은나팔의 부드러운 소리가 맑은 햇살처럼 인근의 마을로 울려 퍼지면 왁자지껄 떠들던 아이들이 먼저 듣고 각기 집으로 달려가 “나팔 소리가 들려요. 들어 보셔요” 하고 외친다. (180.6)
 나팔 소리를 듣고서 9일 동안이 예비 기간이다. 대속죄일인 7월 10일은 크리스마스처럼, 주일 중 어느 요일이 될지 해마다 일정치 않다. 그러나, 어느 요일이건 상관없이, 그 날은 제칠일 안식일처럼 성일이 된다(레 23:26~32).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이 기쁜 날(사 58:13, 14)인 반면, 대속죄일은 백성들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날이다. 그 날에 백성들은 자기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 날에 금식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은 처음에 순전히 영적인 것으로 이해됐었다. 사람들은 그 날을 하나님께 예배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특별한 날로 지켜야 했다. 사람들 은 자신들이 과연 그들의 신앙 고백에 일치하는 생활을 살아 왔는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그들의 행동 동기들을 다시 한 번 반성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80.7)
 


로쉬 하사나아(칠월 초하루)의 나팔 소리는 대속죄일 곧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180.8)
 대속죄일의 목적은 의식을 통하여 성소와 백성으로부터 죄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단지 성소를 정결하기 위함만이 아니고 너희를 위하여 속죄케 하기 위함 곧 너희를 정결케 하여 “너희가 너희 모든 죄에서 여호와 앞에 정결케 하려 함이라” 하였다(레 16:30~33). (181.1)
 레위기 16장 29, 30절에는 백성들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까닭이 바로 죄를 없이 하는 데 있었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해 대속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1.2)
 만약, 백성들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면, 속죄가 소용없이 된다는 것이 매우 분명하게 알려져 있었다. 대속죄일은 마술적이거나 미신적인 신앙의 소지를 주지 않았다. 백성들은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을 잘 알고 있었다(레 23:29), 하나님께서는 이 가르침의 절박성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내시기 위하여 부언적인 경고를 잊지 않으셨다.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곧 이 날을 엄숙한 성일로 지키지 않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라”(레 23:30). (181.3)
 그 날은 하나가 되는(대속이란 영어 단어 atonement를 파자(破字] 하면 at-one-ment 즉 하나로 됨이 된다:역자주)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날짜를 정하셨고, 속죄소를 고안하셨으며, 대제사장을 세우셨고, 속죄의 피를 마련하셨다. 화해를 분명히 거부하는 사람들은 분리를 선택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셨다. (181.4)
 대속죄일 곧 대심판의 날
 마음을 기울여 대속죄일을 지키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했으니 이는 대속죄일이 대심판의 날임을 말하는 것이다. 대속죄일의 종교적 약속에 진지하게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장로들이 조사하여 재판을 거쳐 처벌하였다. (181.5)
 유대 랍비들은 그 날이 갖는 심판의 날로서의 성격을 장황히 설명해 왔다. 사실 유대의 전통에는 7월 1일(로쉬 하사나아)까지, 그리고 1일부터 10일 까지의 기간도 욤 킵푸르에 선포되는 최후의 선고와 함께 심판의 개념에 포함되고 있다.31 「디 유니버살 주위시 엔사이클로 피디아」(The Universal Jewish Encyclopedia)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심판의 날이라는 사상이10 일간에 걸친 참회 기간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 사상은 특별히 욤 킵푸르의 우네탄 네에 토케프(Unethanneh Tokef) 기도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32 (181.6)
 대속죄일이 동시에 심판의 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다니엘 8장 14절의 성소의 정결은 곧바로 다니엘 7장의 심판의 장면과 또 다니엘 2장의 초자연적인 돌 나라의 도래와 밀접히 평행하는 사건임을 대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것은 빈틈없는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이다. 다니엘를 이해하는 기본 열쇠는 바로 이런 평행 현상을 펼쳐 내는 것이다. (181.7)
 다니엘 7장의 심판은 하늘에서 대속죄일 곧 대심판의 날이 시작될 때 그리스도께서 대제 사장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시는 사건과 밀접히 비교되는 사건이다:즉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