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다니엘서 연구 다니엘 8장 하나님과 그분의 성소 V. 그리스도의 봉사가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엘 천사가 “이 사람에게 이상을 깨닫게 하는” 지시를 받은 것이 사실인 이상에는, 다니엘 안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일반적 정보를 찾아내어 사용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가브리엘이 별도의 추가적인 해석을 하지 않았어도 “성소의 회복”이란 용어의 뜻하는 바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176.9)
 “그 때에 성소가 정결케 함을 입으리라”한 구절의 번역은 상당히 다양하다. “영어 현대역”(Today's English Version)에는 “그 때 성전(Temple)이 회복되리라”로 되어 있다. R. S.V. 번역도 이와 흡사하다. (176.10)
 신(新) 영어 성경(The New English Bible)에는 “그 때 성소(Holy Place)가 비로소 승리를 거둘 것이다”라고 되었다. 몬사이너 녹스(Monsignor Knox)는 “그 때(Ere) 성소(Sanctuary)가 정결케 되리라”고 번역했는데 흠정역도 녹스의 번역과 흡사하게 “그 때(Then) 성소가 정결케 되리라”고 되어 있다. (177.1)
 이러한 번역상의 차이는 부분적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히브리 어로 다니엘에게 말한 사실 자체에 기인한다. 가브리엘은 히브리 어로 “그 때 성소가 니츠다크(nitsdaq) 되리라”고 말했다. 니츠다크란 말은 히브리 성경 전체에서 이 한 곳에서만 사용되었다. (177.2)
 니츠다크란 말은 다소 흔하게 사용되는 차다크(tsadaq)란 히브리 단어와 유관하다. 차다크란 말은 여러 가지 형태로 성경에서 250 회 이상 사용되었는데, 영어 성경에는 일반적으로 “의”(義, righteousness)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의롭게 됨”(to be righteous), “정당하게 됨”(to be just. just는 righteous라는 뜻의 라틴어 jus가 어원이고, righteous의 right는 독일어 recht와 동일한 게르만 어원을 갖고 있다: 역자주). “정당화하다”(to justify) 등으로도 번역되고 있다. (177.3)
 다니엘 8장 14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한다면 “그 때 성소가 의롭게 될 것이다”라고 될 것이다. (177.4)
 그러나, 성소는 건물이고, 영어나 히브리 어에서는 일반적으로 건물을 의롭게 되었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성서 번역자 중에는 궁리 끝에 “정당화되었다”느니 “정당하다”느니 하는 표현을 쓴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어떤 번역자들은 이 표현으로도 탐탁치 않아 다른 동의어들을 끌어와 보았는데, “옹호하다”(vindicate), “비로소 승리를 거두다”(emerge victorious) 등이 그것들이다. (177.5)
 영어 현대역(Today's English Version)의 편집자들은 다니엘 8장 14절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유린된 유대 성전이 회복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주장에 부합시키기 위해 니츠다크란 단어도 “회복된”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확인한 바와같이 8장의 다른 부분들에서는 도무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끌어들일 수가 없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적용하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177.6)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이 별다른 보충 설명 없이도 이 구절을 해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고대의 다른 유대인들은 그 구절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이 보자. 놀랍게도, 고대에 유대인 학자들이 펴낸 두 개의 희랍어역 구약 성경에서도 니츠다크란 단어가 “정결케 된”이란 평범한 단어로 번역되었다. 영어 홈정역 성경이나 녹스의 번역과 동일한 것이다. 기원후 400년경에 성경 라틴역(불가타, Vulgate)을 완성한 유명한 기독교 학자 히에로니무스(Jerome)도 역시 “정결케 된”이란 라틴 어를 사용했다. 그는 이 단어를 번역하기에 앞서 유대의 랍비와 더불어 구약성경의 관용 어구에 대해 광범위하게 토의를 거쳤다. (177.7)
 성소의 정결
 고대의 유대인 권위자들로부터 확인한 정보에 탄탄히 기초하여 문제에 도전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일년 전체의 제사 의식 중 최대의 행사는 성소를 상징적으로 정결케 하는 엄숙한 기념식이었다. (177.8)
 성소를 정결케 하는 날이 R.S.V.(개역 표준 번역)와 K.J.V.(영어 흠정역 성경)에서는 “속 죄의 날”로 되어 있다. 욤 킵푸르(Yom Kippur)라는 히브리 이름을 성경에서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속죄의 날”은 잘 알려져 있다. (177.9)
 홈 킵푸르는 지금도 여전히 유대 달력으로 7월 10일에 준수되고 있다. 양력으로는 대충 10월에 해당한다. 구약 시대에는 “속죄일”이 일년의 종교 행사 중 가장 무겁고 엄숙한 날이었다. 대제사장은 이 날에 한하여 성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수 있었다. (177.10)
 


일년 중 대속죄일에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갔다.
(178.1)
 우리가 163~166페이지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날마다 자신의 일로 희생 제물을 개인적으로 바칠 때에, 제물로 끌고온 짐승에게 안수하여 상징적으로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킨 다음 그 짐승을 자신의 대속물로 죽였다. 그 다음에 제사장이 성전 안 휘장 앞 가까운 마루와 성소의 금향단에 피를 뿌림으로써(직후 혹은 나중에) 제물을 바친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은 사실을 기록하였다(레 4:20). (179.1)
 죄란 것은 너무나 가증스러운 것이어서 고백된 죄의 기록만으로도 성소가 오염된다. 그래서, 대속죄일에는 오염된 성소를 깨끗케 하기 위하여 특별한 예식을 거행하였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不淨)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라고 지시받았다(레 16:16). 이 특별한 정결 행위는 일상적인 집안 청소 같은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즉 불의로부터 깨끗이 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의로움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가 “의롭게 하다”는 동사의 특별한 형태인 니츠다크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대단히 적절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보면, R.S.V.(개역 표준 번역)가 “올바른 상태로 회복된” 이라는 구절을 사용한 것은 옳게 생각된다. (179.2)
 레위기 16장에 의하면,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수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께 바치고 한 마리는 아사셀에게 보냈다. 대제사장은 여호와를 위한 수염소를 죽인 다음 그 피의 일부를 지성소로 가지고 가서 언약궤 앞 바닥과 언약궤 위에 뿌렸다(레위기 16장에서는 성소[sanctuary]를 회막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명심하라). (179.3)
 모세가 제조한 성막에는 나중에 “세키나”(shekinah)로 불려진 눈부시게 환한 초자연적인 빛이 언약궤에 빛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161, 162페이지를 보라). 대제사장이 지성소를 막아 놓은 휘장을 제치고 하나님의 존전(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은 참으로 숨막히도록 엄숙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179.4)
 복음과 대 속죄일
 일 년 중 그 어느 날에도 성전 예배를 통해 복음이 그렇듯 풍성히 선포되지 못했다. 대속죄일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상징하는 양을 희생제물로 바치면서 시작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성소의 “여호와 앞의 떡”은 생명의 떡(요 6:35)인 예수님을 나타냈다. 일곱 가지로 나뉜 등대는 세상의 빛인 예수님을 나타냈다(요 8:12). 제사장들은 하늘에서 봉사하시는 그리스도를 대표했다. 그러나, 대속죄일에는 이러한 규례적인 일들 외에 또 하나의 특기할 사항이 추가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표하는 피가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자리에 뿌려졌다. 이 피는 우리의 죄가 요구하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일로 인하여 기꺼이 치른 엄청난 대가를 인상적으로 나타내 주는 상징이었다. 특별히 그 피를 법궤의 금뚜껑 곧 속죄소 위에 뿌렸다. 하나님 자신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셨다. 그 장소는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자리였다. (17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