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덩이의 빵을 영원한 희생의 제단 앞에서 “흔든” 뒤에 대제사장은 한 덩이를 취하여 자신이 갖고, 다른 덩이는 제사장들이 나누어 갖도록 주었다(Menahoth 1:1, note 1:5, 6). 이 표상의 성취로서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께서는 당신의 하늘의 상급을 당신의 “제사장들”과 나누셨다. 지상의 교회는 이리하여 하늘의 교회와 연합되었으며(6T, 366),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었다(갈 3:16, 27~29). (438.4)
 오순절은 기쁨으로 기다려야 함
 우리는 율법이 시내산에서 경축된 첫 오순절에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고 랍비들이 믿고 있음을 보았다. 마이모나이즈(12세기의 스페인계 유대인 철학자:역자 주)는 오래전에, “마치 가장 친한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 친구의 도착하는 날짜와 시간을 자꾸만 계산해 보게 되듯이”, 그렇게 우리도 니산월 16일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율법이 주어진—“내가 ∙∙∙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가 출애굽한 목적은 그 율법을 받기 위함 이었음—그 날까지의 날짜를 계산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위대하신 현현이 하루 이상 계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해마다 이 날을 오직 하루만 지킨다(A. Edersheim, The Temple, 261에서 인용함). 엘렌 화잇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백성을 이 자연적으로 조용하고 엄숙한 장소로 인도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법령서를 받게 하라고 명하셨다.” (438.5)
 “그로부터 50일 전에 진행하는 백성의 무리 앞에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여신 홍해를 통하여 가도록 불기둥이 길을 비추었다. 그 때부터 그들은 사막을 통하여 서서히 앞으로 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적같은 능력을 통하여 그들의 필요들을 채우셨다”(Signs, 1878. 3. 7). (439.1)
 오순절 전에 침례가 있었음
 하나님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50일 되던 첫 오순절에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다. 바울은 이 홍해를 건넌 경험을 이스라엘의 “침례”(고전 10:1, 2) 즉, 그들이 수장지(watery grave)로부터(참고 롬 6:4) 하나님의 거룩한 국가로 부활한 것을 상징하는 의식과 결부시켰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첫 오순절의 시내산에서의 영광을 위해 준비되었다. 50일 후에 시내산에 모인 자들은 하나로 연합되어 한 장소에서 기도하고 있었으며, 그 때 쉐키나(영광의 빛)가 산꼭대기에 임하여 계곡을 그 위엄의 광채로 가득 채우며 여호와께서 가까이 계심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알게 해 주었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마지막 오순절에도 같은 불, 홍해를 통과하여 하나님의 산으로 가는 이스라엘의 길을 밝혀 준 동일한 불의 혀(tongues)가 시온산과 하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참 이스라엘의 길을 밝혀 주었다. (439.2)
 첫 오순절에 다음의 세 가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십계명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에 선포되었다.

 (1) 죄의 본성, 죄는 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요일 3:4 영문),

 (2) “의의 법”의 특성(롬 9:31),

 (3) 마지막 심판의 불가피성,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약 2:12), 마지막 오순절에 성령이 교회와 세상에 주어졌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응답으로써, 시내산에서 밝혀진 것들을 강화하기 위하여,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함(convince)이었다”(요 16:8 영문). (439.3)
 오순절은 중보자를 필요로 함
 시내산에서 히브리 백성들은 “중보의 손을” 통해 율법을 받았다. 모세는 적어도 일곱번은 산에 올랐는데, 아마도 “완전한” 혹은 완벽한 여행을 암시하는 듯하다. 예루살렘에서 교회는 하늘의 중보자를 통해 성령을 받았는데, 이 중보자는 지상에서의 희생적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시고는 하늘 시온산에 오르셨다. (439.4)
 모세가 마지막으로 시내산에서 돌아 왔을 때, 그의 얼굴은 마치 거울이 태양을 반사하듯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였다. 그때 성소를 통해 구원의 경륜을,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계시를 가져왔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기대하시는 품행(conduct)의 표준을 제시하며, 성소는 그들이 실패할 때마다 필요되는 용서의 길과 새롭게 되는 방법을 설명한다. 마지막 오순절에 우리의 크신 중보자께서는 하늘 아버지께로 오르셔서, 모세가 보인 것 모형의 실체로서 하늘 성소의 제물과 제사장으로 가납되셨다. 그런 후 예수께서는 지상의 하나님의 가족을 위해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성령을 요구하셨다. 성령의 능력으로 오늘날의 교회 신자들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439.5)
 첫 오순절에는 모세가 일시적인 이스라엘의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호의를 얻었다. (439.6)
 그러나 그는 죽었다. 반면에 마지막 오순절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중보자로서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는 영원히 살아 계신다. (440.1)
 신약 시대의 성령의 부어 주심은 부분적이었음
 누가는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말씀을 듣던 수천의 청중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요엘의 예언이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이라는 통찰력 있는 말을 했다고 전한다[행 2:16, 17, 나의 영의(of My Spirit)라는 표현은 부분적임을 뜻함]. 그 예언의 최종적인 성취는 “마지막 때에” 있을 것이다. 이와같이 오순절의 추수 축제는 종말적인 암시가 많이 있다(욜 2:28, 29). (440.2)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들이 열렬히 간구했기 때문에 주어졌다(행 1:8, 14). 도움을 위한 기도와 하늘의 반응간의 이 밀접한 관련에 대해 성경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 다니엘은, 포로 생활이 정확히 70년 동안 계속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동족들을 제시간에 풀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단 9:1 이하). 안나, 시므온, 나다나엘, 그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야가 오실 시간이 임박한 줄을 알면서도 은혜를 속히 내려 주시기를 하늘에 간구하였다(눅 2:25~28). 성령을 제자들에게 내려 주시겠다고 친히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요 14:16, 17),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내려 주심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행 1:4~8, 14.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까지는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이 생각에 몰두하라고 권하셨다. 도움을 위한 탄원을 하나님의 응답과 연결시키는 이 수직 연결은 “대쟁투”에서의 매우 중요한 원칙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요구하지 않으면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것을, 당신의 백성들이 도움을 위해 기도할 때에 그것들을 하실 수 있으시다. 이것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백성으로 주장하는 이 세상의 군주와 하나님간의 관계의 일면이다. 사람에게 붙들려 그의 백성이 된 사람이 속박을 끊어버릴 힘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을 사단의 속박에서 구해 주신다. (440.3)
 마지막 시대의 성령의 부어 주심에 제한이 없음
 우리가 마지막 시대를 위해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된 늦은비 성령의 퍼부으심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제철에 구하라(pray)는 스가랴의 권면을 명심해야 한다(슥 10:1). 그러면 오순절의 전조(presage)가 성취를 보고(사도행적, 41, 각 시대의 대쟁투, 8, 9), 세천사의 사업이 완성될 것이다. (440.4)
 하나님께서는 성전 뜰의 경배자가, 성소에 있는 금향단에서부터 향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바로 그 시간에 자신들의 간청을 규칙적으로 드리도록 계획하셨다(눅 1:9, 10). 이것은 기도가 그리스도의 공로와 합쳐질 때(blend), 중보가 전능하신 팔을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준다(각 시대의 대쟁투, 611~612, 7BC, 970, 971, 계 8:3~5). (440.5)
 오순절의 축복을 위해서는 연합이 필요함
 성막봉사와 제사장직을 시작할 당시, 아론이 희생을 드리고 향이 침묵의 중보와 함께 올라갔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holy shrine)를 가득 채웠다(출 40:26, 27, 34). (4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