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그림자 제7편 가을 연례 절기 제 30 장 속죄일의 회중의 의무
 하나님께서는 고대의 그분의 백성이 연중 매일 그분을 충실히 섬기기를 기대하셨고, 또한 친히 그들의 섬김(제사)을 받으셨다. 그러나 속죄일이 이르러왔을 때, 그날 동안에는 그들에게 특별한 요구사항들이 부과되어 있었으며, 만약 그들이 그것들을 준수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끊어짐을 당했다. (219.1)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백성의 제사를 받아 오셨으나 이제 실체적인 속죄일이 이르러 조사심판이 하늘 성소에서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실체적인 회중이,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그분의 몫을 충실하게 이루시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충실하게 그 실체의 몫을 이룰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219.2)
 고대에 회중이 하나의 전체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었다(레 23:29~30).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친히 응답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 법정에서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우리의 선조들처럼 행함으로써 자아만족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백성에게서 특별한 봉사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경우가 하늘에서 결정되고 있는 동안에 살아가고 있으며, 사탄은 육체적으로 이전 어느 세대보다도 더 연약한 마지막 세대를 향해 그가 6,000년간의 전투에서 획득해 온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고 있다. 조사심판에서 합당한 자로 여겨지는 자들은 한동안 중보자 없이 살 것이다. 그들의 경험은 이 지상에 살았던 다른 어떤 무리의 경험과도 다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무한한 사랑으로 마지막 세대에게 특별한 의무들을 명하신 데는 많은 이유들이 있는바, 이는 그들이 원수의 공격에 대하여 더욱 강하게 방어되고 그의 궤계에 무너뜨림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219.3)
 고대의 봉사에서, 한 개인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속죄일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의 죄들은 대제사장에 의하여 아사셀 염소에게 고해지지 않으며,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끊어짐을 당했다(레 23:28~30). 실체적인 속죄일, 즉 조사심판 동안에 하나님께서 실체적인 회중에게 명하신 일을 개인 스스로가 소홀히 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그의 경우를 변호하여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마침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으로부터 지워져버린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대제사장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17). 만약 우리가 산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주께서 지시하신대로 기꺼이 행할 것이다. (220.1)
 속죄일-곧 표상적인 구속사업이 수행되던 24시간 동안 그리고 실제적인 봉사의 “모형과 그림자”였던 기간-에 고대 이스라엘의 각 개인에게는 네 가지 일이 요구되었다. (220.2)
 1.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220.3)
 2.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220.4)
 3.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221.1)
 4. “이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레 23:27~28) 등이다. (221.2)
 그날은 성회로 모이는 날이었다. 백성들은 종교적인 예배를 위하여 모여야만 했다. 바울은 대제사장께서 하늘 성소로부터 곧 나오시게 된 이때에 종교적인 회집을 폐하려는 개인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1~25). (221.3)
 하나님을 경배하는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일에 기쁨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양심의 악”(또는 “악한 양심”)을 가졌고,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하늘 성소로부터 곧 나오실 것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예배하는 일에는 특별한 축복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두세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도 친히 그들과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신다(마 18:20). 이 첫 번째 요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의 영적 상태를 시험할 수 있는 하나의 영적 온도계이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임에서 기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예배에 결석한다면, 그의 영성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221.4)
 각 개인은 자기 영혼을 “괴롭게”-자기 마음을 살피고, 모든 죄를 없애버리고,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치도록-해야만 했다. 이것과 연관된 것은 음식을 금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너무나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심지어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제7월 10일에 금식을 하고 있다. (221.5)
 하늘 성소에서 심판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과 자기의 이름이 틀림없이 그 큰 심판대 앞에 제시될 것을 깨닫는 개인은 그의 마음을 살피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적인 생각들로 마음을 채움으로써, 미련한 처녀들처럼 신랑이 온 것과 문이 닫힌 것, 다시 말해서 일이 다 끝나고 우리가 차지할 몫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늦게 발견하는 일이 없도록,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의 역사에 관하여 자주 명상할 필요가 있다. (222.1)
 표상적인 봉사에서 뜰에 있던 회중은 대제사장의 제복에 달린 금방울들의 뎅그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봉사를 따라 행했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자신의 사업의 진도를 알려주기 위하여 하늘과 땅과 열국들 사이에 징조들을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런 징조들이 성취되는 것을 볼 때에는 그분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신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다(눅 21:25~33; 마 24:29~35). (222.2)
 실체적인 속죄일은 상당한 햇수의 기간에 걸쳐 있다. 표상에서는 24시간의 금식이 요구되었다. 이 하루 동안에는 식욕을 완전히 억제해야만 했는데, 그것은 실체적인 기간 동안에 행사해야할 자제(自制)에 대한 표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저희의 식욕의 지배자가 되고 몸을 쳐 복종하게 하도록 계획하신다(고전 9:27). 사탄은 식욕에게 고삐를 늦추도록 하며, 그것이 사람을 주장하게 하려 한다. (222.3)
 신실한 역군들이 부절제의 홍수를 저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너무나 강한 힘으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는 술 취함과 범죄가 놀라운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일찍이 하늘에서 조사심판이 시작되던 해인 1844년에는 오직 남자들과 소수의 여자들만이 담배의 노예였으나 지금은 수천만 명의 자녀들이 그것으로 인하여 파멸되어 가고 있으며, 많은 여자들이 그 불결한 습관에 중독되어 있다. 이 나라에 양조장과 술집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주정음료들이 수천만 가정에서 사용되고 있다. (222.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신령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더욱 명료한 지성을 가지게 되고 또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시는 그들의 대제사장의 사업을 좇아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이 자신의 식욕의 노예가 되는 대신에 그것의 지배자가 되기를 요청하신다. (223.1)
 하나님의 요구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식욕이 갈망하는 것들을 스스로 기꺼이 거절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인가! 선지자 이사야는 여러 시대를 내려다보면서 그 형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사 통곡하며, 애호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사 22:12~13). 이 세계의 현 상태에 대한 얼마나 생생한 묘사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그들의 영혼을(자신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식욕을 조정하고, 좋은 피와 영적 진리들을 분별할 수 있는 명료한 정신을 제공하는 음식을 취하도록 요청하시지만, 그들은 이것을 순종하기는커녕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행로의 궁극적인 결과를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가라사대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사 22:14). (223.2)
 구주께서는 인간 생애의 기록들이 조사를 받고 개인들이 영생에 합당한지 판정 받고 있는 시간 동안에 식욕에게 고삐를 늦추는 죄악에 대한 특별한 경고를 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4~36). 이 경고는 “방탕함”-과식-과 “술취함”-해로운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주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실체적인 속죄일 동안에 그들의 음식의 양(量)질(質) 모두에 주의하도록 계획하신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음식이라도 그것을 과식함으로써 마음을 흐리게 하고 건강을 손상할 수가 있다. 탐식하는 자와 술 취하는 자는 같은 부류에 속한다.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잠 23:20~21). (224.1)
 우리의 첫 조상은 식욕의 시험에서 실패하였다(창 3:1~6). 그러나 그들이 실패한 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하셨다(마 4:3~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 마음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식욕의 완전한 지배자가 되는 것-본성적인 식욕이 아무리 갈망한다 하더라도 해로운 음식은 모두 금하는 것-과 좋은 음식이라도 과식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