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7 부 삶의 순환 속의 그리스도 (죄의 결과(assignations)로부터의 자유) 33. 유월절과 무교절 (나의 모든 보호는 그리스도의 것임)
 “혜롯의 누룩”(막 8:15)은 주님의 또다른 표적(target)이었다. (425.5)
 헤롯은 “영웅” 혹은 “사내다운 사내”(he-man)를 뜻한다. 여러 헤롯이 신약에 언급되었지만, 모두 다 그리스도께, 그분의 가르침과 그분께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헤롯가의 성격을 종합적인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헤롯”은 에돔 태생의 이방 통치자로서 로마에 기대는 입장을 취하면서 유대인들을 무력으로 다스리고자 하였다. 그는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무참히 학살함으로써, 그리고 침례 요한을 몰인정하게 죽임으로써 마음이 검은 사람임을 드러내었다(막 6:14~22). 완고하고 관능적이며 교만하고 잔인했던 그는 결국 방자한 자가 되었다.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눅 13:31)한다는 말은 구세주와 화친하기 어려운 그의 태도를 암시한다. 그러나 드디어 그분을 만났을 때 그는 “기뻐하”(눅 23:8)였다. 헤롯가의 사람들은 헬라와 로마의 관습과 문화를 좋아하는 정치 무리로서 헤롯을 히브리 국가주의의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하면서 그를 지지하였다. (426.1)
 바리새파의 종교주의, 사두개파의 자유주의, 헤롯가의 잔인성 모두 예수께서 비난하셨다. “이 거짓 이론(principles)들은 한번 받아들이면 누룩과같이 퍼져서 품성을 바꾸어 놓고 말 것이다”(시대의 소망, 408). 옛 생애의 누룩을 제거한 후에야 유월절 희생의 신비(wonder)가 이해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살”“피”를 제대로 “먹고” “마시게” 될 것이다. 이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유월절 준비시 각 가정에서 상징적으로 누룩을 찾아 없애 버렸다(고전 5:6~8). 이 의식이 주는 기별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이다. (426.2)
 유월절 양을 나흘 동안 공중에게 보임
 니산월 10일 월요일에 산헤드린에 의해 정죄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유월절 양으로 “보이시기” 위해 나흘 동안 성전에서 당신을 공중에게 드러내셨다. 그런 후 니산월 14일 금요일에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셨”으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셨는데, 이는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었다(사 53:7, 8). 사도 베드로는 유월절 피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 1:19)의 상징이었음을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426.3)
 법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히 7:26)신 흠 없으신 구세주를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양은 흠집이 없는 것을 요구하였다. 방어 능력이 없고 저항하지 못하며(사 53:7, 8) 인내심 있고 사랑스러우며(사 53:5), 해가 없고 온순하기 때문에(행 8:32, 33) 양은 쉽게 죽임을 당했다. (426.4)
 애굽에서 처음 유월절을 지켰을 때, 피가 각 집의 가장에 의해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졌다(출 12:4, 7, 21~23). 그러나 팔레스틴에서는 희생 제물이 성소에서 호주(house holder)나 레위인에 의해 드려졌으며(대하 30:7), 그 피는 제사장에 의해 번제단 위에 뿌려졌다(Pesahim 5:5, 6). “문”은 나가고 들어오는 통로로서 마음의 의사 결정의 기능을 예시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이(마음)에서” 나기 때문이다(잠 4:2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로가 영혼에 사용(apply)되어야 한다”(Bible Training School, 1904. 4). (426.5)
 이 피 뿌리는 의식의 의도를 설명하면서 엘렌 화잇은,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를 쳐들라. 갈바리의 어린양의 피로 문설주를 치라. 그리하면 그대는 안전할 것이다”(RH, 1889. 9. 3). (427.1)
 누룩 없는 떡만 먹을 수 있었음
 유월절 양이 죽은 뒤 한 주 동안은 보통 때 하는 식사와 함께 오직 무교병만 먹을 수 있었다(레 23:6~8). 이 “7” 일은 인간의 지상에서의 순례 생활의 완성을 암시하며, 그 기별은 여전히, “성실과 진정으로 그(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이다(수 24:14). 바울은 이러한 뜻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6~8)고 하였다. 새로운 힘있는(dynamic)원칙이 생애 속에 들어와야 한다. 그럴 때에만 그리스도의 은혜의 누룩이 점차적으로 역사하여 마음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2SP, 247). 엘렌 화잇은 말했다. “무교병의 사용은 또한 매우 중요하였는데 ∙∙∙ 그리스도께로부터 생명과 자양분을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죄의 누룩을 제거해야 한다”(부조와 선지자, 278). 이 유월절의 무교병은 “고난의 떡”이라 불리웠는데, 이는 참석자들에게 그들이 급히 애굽을 떠나도록 강요되고(출 12:11) 내어 쫓김을 당했으며, 그 후 여러 해 동안 곤란한 중에 방황한 것을(신 32:10)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427.2)
 피를 뿌림
 애굽에서는 우슬초 다발을 사용하여 문 기둥에 피를 뿌렸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우슬초는 성경에서 씻음과 겸비를 나타내었고, 붉은 암송아지와 두 참새를 드리는 예식에 사용되었다(민 19:6; 레 14:4, 부조와 선지자, 277). 하나님께서는 가장 단순하고도 보잘것 없는 수단도 그분의 구속의 피를 가난한자들(needy)의 마음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심어 주시기 위해 이런 피뿌리는 의식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저 문에 피만 바르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아버지들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피흘릴 희생 제물을 준비하여야 했다(출 12:21~23).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갈바리의 희생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러면 주께서는,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출 12:13)라는 당신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427.3)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는 유월절 피가 성소의 뜰에 있는 제단에 뿌려졌으며, 동물의 일부 신체로 그 위에서 살라졌다(Pesahim 5:5, 6, 10). 이렇게 한 후, 어린양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전체가 구워져야(roasted)하였다(부조와 선지자, 277). 가죽을 벗기고 씻은 후에 길다란 석류나무를 목구멍으로부터 항문으로 찔러 넣어서 막대가 양쪽 끝으로 충분히 나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옆에서 짧은 막대기로 흉부의 갈비뼈를 벌려서 불꽃이 안에까지 잘 들어가게 하였다(Pesahim 7:1, 출 12:6~8; 대하 35:13). 불 구덩이의 양쪽에 “Y”자 모양의 막대기들을 땅 속에 박아 세우고 양을 팬 긴 막대기를 그 위에 얹어 놓게 하였다. 이 십자 모양의 구덩이 위에서 양의 시체가 서서히 돌아가면서 통나무들의 불꽃에 의해 구워진다(출 12:8, 9). (427.4)
 15세기 동안 이 장면은 “십자가” 위에서의 하나님의 어린양이 바쳐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뿐만 아니라 귀신들과 사람들의 비방과 원한에 태워지시고, 그들의 증오에 그슬리셔서 당신의 백성들의 생계를 위한 음식(meat)이 되셨다. (428.1)
 뼈를 부러뜨리지 말아야 했음
 하나님께서는 양의 뼈를 부러뜨리지 말 것을 명하셨고(출 12:46), 요한은 이 표상의 성취됨을 언급하였다(요 19:31~37).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시는 인성의 골격, 즉 그가 의지하여 사신 율법, 그의 아버지와의 언약 등이 그분의 당하신 무서운 시련과 고통에 손상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말해 준다(요 14:30, 15:10). (428.2)
 이스라엘 집의 모든 식구들은 구워진 어린양을 먹어야 했다(출 12:8, 9). 유월절은 화목제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 전문 용어 “희생”(출 12:27, 34, 25)이라 불리웠다. 유월절 짐승은 그것을 잡은 당일에 먹어야 했으며, 이는 여호와와의 언약을 조인(seal)하기 위해서였다. “먹는 것”은 그 진리를 예시(示)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이건, 그리스도이건, 경배자는 메시야의 본체(Substance)를 자신의 일부로 삼고, 그 메시야의 원칙과 제휴하기 위해서, 그 메시야의 “살”을 각자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행동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생애를 닮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시대의 소망, 389).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이 언약의 식사를 통하여 당신의 경험의 참여자가 되기를 바라신다(부조와 선지자, 278). (428.3)
 유월절의 전 옥타브(8일간)동안 무교병을 먹었으므로, 이 기간을 무교절이라 불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먹을 뿐만 아니라, 이 마조트(무교병, 혹은 무교절)를 주의 깊게 잘 지켜야 했다(출 12:15~17). “예수께서는 떡을 당신의 성령의 생명을 주는 힘에 비유하셨다. 떡은 신체의 생명을 유지하는 반면, 성령의 능력은 마음을 충족시키며 도덕력을 강하게 해준다”(2SP, 276, 277). 바울은, “우리의 유월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되셨으니 ∙∙∙ 우리가 명절을 지키”자(고전 5:7 영문)라고 말하였다. 사도는 구원의 기초를 예수의 구속하는 피에 두었으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영적 생애는 오직 그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의 성찬(eucharistic meal)도 오직 하나님의 어린 양이 죽으신 후에만 가능하며, 그분께서도 당신이 죽임을 당하셔서 십자가 위에서 전체가 “구워지기”까지는 당신을 우리가 “먹도록” 내어 주실 수가 없으셨다. (428.4)
 발효되지 않은 포도주가 필요했음
 모든 소제에—유월절 떡도 소제물로 여겨짐—발효되지 않은 전제가 함께 드려져야 했다. 아침과 저녁의 번제시에—개인적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였음—제단 위의 타고 있는 희생 제물에 전제를 부었다. 유월절 저녁 식사 때에는 포도주를 마셨다. 그러므로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이 이 식사의 일부였고, 그러므로 완전한 소제(mincah)가 된 것이다. (4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