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중심의 성소론 제 7 부 삶의 순환 속의 그리스도 (죄의 결과(assignations)로부터의 자유) 32. 월삭과 나팔들 (나의 모든 시간은 그리스도의 것임)
 속죄일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데 있어서 설날의 나팔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나팔 소리는 먼저 지난해의 떠나감을 알렸다. 그 나팔은 “순은의 혀”(잠 10:20)로 물었다. “지난해엔 무슨 기록을 남겼느냐?” “회개하라!” 그 다음엔 새 시대를 알렸다. “삶이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정신차려 깨어 있으라.” (414.2)
 모든 절기들이 원작에 의존함
 첫 달인 니산 혹은 아빕월의 월삭을 정확히 계산하여 책정하는 것은 한해 동안의 전체 종교 행사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였다. 왜냐하면 그 월삭을 기점으로 하여 봄의 세 절기 즉 유월절, 16일에 첫 이삭을 요제로 드리는 무교절, 50일 후의 오순절 등의 날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414.3)
 가을, 혹은 “끝 절기”, 즉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 등의 날짜는 제7월인 티스리 혹은 에다님월의 월삭에 의존하는데, 이 월삭은 또한 그 자체가 첫 달인 니산월에 의존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 행사력의 마지막 부분에 안식년과 희년이 오는데 이것들은 둘 다 월삭에 의해 결정된다. “태초에” 창조주께서는 달이 “다스리”도록 계획하셨으며, 그 달이 다스린 왕국은 시간이었다. (414.4)
 매월삭마다 “나팔을 불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부조와 선지자, 304)는데 이는 매달을 희망과 가능성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였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 각자의 사정을 들으시고 “기억해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기억한다”는 말은 항상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을 예상하며 듣는 것을 의미한다(출 28:12, 29; 30:16).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레 23:24)이나 “나팔을 불날” 등의 표현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필요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생각에서 이사야는 충성된 자들을 가리켜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사 62:6)이라고 언급하였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그분의 품성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 혹은 “기념물”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행 10:4). 십자가 위의 강도는 이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탄원하였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영문). 이 반응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초청의 말씀에 잘 예시되어 있다.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눅 22:19). (414.5)
 그러나 양각과 은 나팔의 소리는 하나님의 집 가까이에 사는 자들에게만 들렸다. 이 소식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실히 알려지게 하기 위해 커다란 횃불이 감람산 위에 밝혀졌다(로쉬 2: 2~4). 이리하여 소식이 다른 봉우리의 파수꾼들에게 전달되고, 각 봉우리와 언덕의 요새마다 봉홧불이 차례로 켜져 삽시간에 전국이 “불바다”처럼 불 빛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로쉬 2:4). (414.6)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연합하며 저들의 창조주께 경배하고 서로간의 우정을 깊게 하고자 이것을 고안하셨다. (415.1)
 경배를 통한 경축
 이교의 설 축제는 음탕한 농담과 웃음, 술에 취해 흥청대는 분위기가 그 특징이지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트럼펫을 불어 백성들로 하여금 지난해 동안의 창조주의 섭리를 거룩한 기쁨으로 경축하게 하였다. 그들은 희생 제물과 함께 자신들을 재헌신함으로써 오는 해 동안의 축복을 기다려야 했다. 모든 월삭 절기들이 “성회”(레 23:24)가 되어 백성들이 각 지역의 경배 장소에 참석해야 했지만, 오직 나팔절만이 안식일처럼 지켜졌다. (415.2)
 성소에서는 축제 기간 동안 매일 드리는 제물 이외에 특별한 희생이 드려졌다. 이 희생 제물들로서는 황소 한 마리, 수양 한 마리 어린양 일곱을 성 별의 뜻으로 번제로 드렸고, 형편에 따라 전제와 소제를 그리고 속죄제를 위해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드렸다. 이 모든 제물들의 피는, 참된 기쁨은 오직 대속적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제사장들이 아침 예식 중에 전제 포도주를 제단에 붓는 동안 레위족 합창대가 시편 81편을 노래하였고, 저녁 제사 때 그들은 29편을 불렀다. (415.3)
 여인들을 위한 축제
 랍비들은 월삭을 여인들을 위한 특별한 절기로 생각하였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하와가 남자보다 아래에 혹은 위에 있지 않고 모든 면에서 그와 같은 위치에 서게 하셨다. 그 거룩한 한 쌍은 서로로부터 독립되지 않으면서,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하와의 범죄 이후, 그녀가 먼저 범죄한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그녀를 다스리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그녀는 남편에게 굴복해야 하였고, 이것이 저주의 일면이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저주 때문에 여자의 운명이 매우 비통하게 되고 그들의 생애가 수고로 가득 찬 것이 되곤하였다. 무한하신 지혜자께서는 구속의 경륜을 준비하셔서 인류로 하여금 또다른 시련을 통해 두번째 기회를 갖게 하셨다(3T, 484). (415.4)
 죄 때문에 낙원의 문은 화염검에 의해 차단되고, 생명나무의 열매는, “이혼된”(divorced)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자손에게는 따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쫓아내심”, 창 3:24, 참고, 21:10, 14). 그러나 크신 농부(Gardener)께서는 당신의 크신 계획에 따라 “신부”를 속량하시고 다시 취하셔서, “다시는 저주가 없”을 땅에 그 신부를 위해 에덴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 (415.5)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월삭 축제 동안에는 일상 의무에서 해방되어 그 날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보낼 수 있었다. 성전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희생 제물을 드릴 수도 있었고(이것의 오용에 대한 실례: 렘 44:15~19), 선지자를 방문할 수도 있었다(왕하 4:23). 랍비들은, 여인들이 이같은 특권을 누리게 된 것은 시내산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 때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자신들의 금품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하나님께 충성한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The Jewish Encyclopedia, XII, New Moon). (415.6)
 타락의 결과의 하나는 여인의 월경의 “저주”이다(창 3:16). 그러나 주님께서는 “여자”“결혼”하게 되면 그녀의 슬픔이 “아이”의 출생시에 기쁨으로 변할 것을 암암리에 약속하셨다(딤전 2:13~15). (415.7)
 여인이 승리에 찬 모습으로 발로 “달을” 밟고 서 있는 것을 사도 요한이 보지 않았는가(계 12:1)? 하나님의 상징적 언어에서 “발”은 소유함, 혹은 승리를 암시한다(행 7:5; 시 8:6; 고전 15:25, 26; 히 2:6~8). 이런 것들로 보아 “여자”“달”이 나타내는 모든 것의 주인(mistress)으로 보여지는 듯하다. (416.1)
 어린양의 신부가 달마다 하늘 도성에 가서 신랑과 만나는 일에 대한 계시자의 예언이 귀한 약속에 드리워져 있다. 하나님의 보좌가 거기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한 정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 보좌로부터 끝없이 생명을 제공하는 강물이 흘러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부에게 “와서 마시라”고 초청하신다. 강둑에는 달마다 매우 다양한 과실을 맺히는 나무들이 자라면서, 에덴에서처럼 영원한 활력을 공급한다. 그분의 음성이 신부를 부른다. “마음껏 먹으라.” 이에 “처녀” 성도들은 매달 진주문을 통과하여 신랑—어린양의 임재의 빛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저주가 없으”(계 22:3)리라는 확신 속에서 쉬며, 잔치하고, 경배하고, 사랑하며, 즐거워한다(사 66:22, 23). 에덴에서 발해진 선고는 영원히 철거되고 에덴 동산은 다시 아담과 하와에게 돌아간다. 이스라엘의 월삭 절기는 이 치유 사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416.2)
 축제들은 즐거운 추억이 됨
 이 가족 단위의 축제는 “희락”(호 2:11)으로 가득 찬 많은 추억들을 담고 있어, 이 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의 생애에 특별한 사건이 되곤 하였다. 다윗의 아비 이새는 월삭에 감사의 화목제를 드리고 가족의 모든 식구들이 참석하게 하였다(삼상 20:5, 6, 29). 사울 왕은 월삭에 친척과 친한 손님들을 위하여 특별한 연회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다윗의 자리는 비었으”므로 사울이 궁금 해할 것이었다(왕상 20:5, 18, 24). 신앙심이 돈독했던 수넴 여인은 월삭에 그의 친구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 조언을 들었다(왕하 4:23). 월삭은 연합의 기회였다.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영적, 사회적 축복을 나누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416.3)
 중요한 역사의 추억들이 이 국경일과 관련하여 있었다. 월삭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였던 호렙의 그늘 아래 성막이 세워졌고, 12 지파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다짐하였으며, 기쁜 마음으로 각 지파의 장정의 수를 세었으며(민 1:1, 18, 2:34), 야곱 집이 깨끗함을 확인하였다. 한편 월삭에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소 봉사와 대제사장 중보를 위해 부르신 일에 응하였다. 이것은 언젠가 당신의 왕국의 각 시민들이 어떻게 되게 하시려는지에 대해 표본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민 3:6, 12, 13). (4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