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전 조사심판의 성경적 기초 다니엘 9장의 이슈들 제26장 칠십 이레와 예루살렘의 최후운명
 불행하게도, 가브리엘이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다니엘에게 기쁜 소식으로 보였던 것이(9장), 그 말이 끝날 때는 끔찍하게 나쁜 소식이 되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이 490년 기간 동안에 회복될 것이지만, 그 기간이 마친 얼마 뒤에는 그 둘이 멸망당할 것이었다. 문제는 멸망당하느냐 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그들의 멸망이 누구의 책임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게 될 것이지만 이슈는 26, 27절에 나오는 “왕”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323.1)
 이 두 절은 12행의 운문으로 되어있다. 그 중 몇 행을 나는 상세하게 분석할 것이며, 그 외에는(특히 몇 줄은 매우 모호하다) 간략하게 언급만 할 것이다. 이번에도 검토를 위하여 번호를 붙였다. (323.2)
1. “예순 두 이레 후에”
2.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3. “장차 한 왕의 백성이와서”
4.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5.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6.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7.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8. “그가 그이레의 절반에”
9.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10.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11.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12.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323.3)
 제1, 2행: “예순두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이 절에서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25절에서는 “메시아 왕”으로 언급되었다. 끊어진다는 말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말한다. 히브리어로는 카라트(karath)이며, 메시아의 죽음이 폭력에 의한 것임을 암시한다. 카라트가 수동형으로 되어 있어서, 그 끊는 행위가 타인들에 의하여 메시아에게 가해질 것임을 의미한다. 이 모든 요소가 실제로 예수의 죽음에 해당된다 또한 본문은 말하기를 메시아가 62이레 , 다시 말해서 기원후 27년 그가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끊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기원후 30년 또는 31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이 또한 그리스도와 잘 들어맞는다.

 
가브리엘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합하면 69이레)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러므로 “육십이 이레 후”라고 한 것은 69이레의 끝을 의미한다.

 ✻✻ 현재 그리스도께서 언제 못 박혔는지 확정하기 위한 자료는 불충분하다. 이 문제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보려면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5:251-65; William Shea, “The Prophecy of Daniel 9:24-27,” in 70 Weeks, Leviticus, Nature of Prophecy, 102,103을 참조하라. (324.1)
 〈제임스왕역〉와 〈새제임스왕역〉은 메시아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고”(but not for Himself) 끊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새국제역〉, 〈새미국표준성경〉, 〈표준개정역〉은 그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을 것이라”(He will “have nothing”)고 말한다. 셰이는 이 말에 대한 논의를 “이 진술이 무엇을 뜻하든 간에∙∙∙”1)라는 말로 시작한다. 히브리어로는 에인 로(ein lo)인데, 셰이는 이 말을 “그에게, 또는 그를 위하여 없을 것이다”2)라고 번역한다. 이 말은 메시아에게 필요한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구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셰이는 이 말이 예수에게는 그를 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라고 논증한다. 다시 말해서 그분이 완전히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 맞는 말이다. 그의 친구들까지도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다(마 26:56; 참조 막 14:50). 레이먼드 코트렐은, 에인 로“끊어진 왕에게는 계승자가 없을 것”3)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에게 맞는 말이다. (324.2)
 제3, 4행: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리려니와.”
 성읍과 성소의 멸망은 기원후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면 “장차 올 왕”은 누구인가? 그가 예루살렘과 그곳의 성전을 파괴할 것이므로 그는 악한 인물이라는 것이 매우 흔한 해석이다. 레이먼드 코트렐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였다.4) 세대주의자들은 70주일을 마지막 때까지 밀어 내리고, 악한 왕은 환난 기간 동안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칠십 이레의 마지막 이레를 앞의 육십구 이레와 분리해야 할 주석적인 근거가 없으므로, 나는 이 견해를 배제하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325.1)
 하지만 다른 두 해석은 우리가 분명히 고려해야 할 가치가 있다. 하나는 그 “왕”이 예루살렘 공격을 지휘한 로마 장군 티투스라고 하는 견해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장차 올 그 왕의 백성은 티투스의 군대이고, 물론 그들은 실제로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 다른 해석은 이 절의 “왕”25절에 나오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 왕”과 동일한 인물, 즉 예수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왕의 백성”은 유대인이 될 것이며, 그들의 반역 때문에 자신들의 성읍이 멸망당하는 궁극적인 원인이 될 것이었다. (325.2)
 그러면 어느 것이 맞는가? 26절의 본문에서 “왕”이 악한 인물이어야 할 필요가 없음에 유의하라. 성읍과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 왕 자신이 아니라, 장차 올 왕의 백성이다. 앞 절은 “메시아 왕”을 언급하였는데, 지난 2천년간 대다수의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였다. 26절의 제2행은 “메시아”가 62주일 후에 끊어질 것이라고 말하며, 제3행은 “왕”을 언급한다 바꿔 말하면, 26절은 예수를 가리키는 이 두 칭호를 갈라 놓았으며, 각각 분리하여 사용한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26절“그 왕”은 예수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나 성전을 파괴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그 둘 모두 그의 백성, 유대인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파괴당할 것을 예언하셨다(참조 마 23:37-24:2; 눅 21:20). (325.3)
 제5, 6행:“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로마 군대는 정말로 “홍수”처럼 유다를 침략하였다. 그들은 도시를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하였으며 제대로 서있는 건물이 거의 남기지 않았으니, 황폐야말로 당시 성읍의 상황을 묘사하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326.1)
 제7행:“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이 행의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는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제3행의 “그 왕”이 로마 장군 티투스라면, 그라는 말은 그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 왕”이 예수라면, 그라는 말도 그분을 가리키는 것이다. (326.2)
 가브리엘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제7행의 ‘그’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을 것이라고 한다(강조는 첨가된 것임). 여기서 이레는 70주일 중 마지막 주일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우리가 “그”를 티투스라고 한다면, 티투스가 어떻게 누구와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굳게 맺을 것인지 분명히 질문할 것이다. 그가 그러한 일을 했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더욱이 티투스는 그 예언의 70째 주이자 마지막 주인 “한 이레”가 끝난 기원후 34년보다도 훨씬 후인 기원후 70년에야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 반면에, 제7행의 “그”가 메시아 즉 예수라면, 그리고 그 언약이 하나님께서 옛날에 이스라엘과 맺은 것과 동일한 언약이라면, 예수께서는 분명히 유대인들과 맺은 그 언약을 굳게 하려고 하셨다. 그들의 유예기간은 그분이 죽고 난 후에도 기원후 34년까지 이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유대 백성이 예수를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도록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통하여 계속 애쓰셨다. 안타깝게도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낸 선지자들 중 마지막 사람인 스데반을 돌로침으로써, 그분의 택한 백성으로 남는 것을 그분께서 거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재림교회는 제7행을 항상 이렇게 이해해 왔으며,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한 것이 옳다고 믿는다. (326.3)
 제8, 9행:“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우리가 그라는 낱말을 예수로 해석한다면, 예수께서는 그분의 죽음으로써 유대 희생 제도를 종결지으셨다고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기원후 70년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들의 희생을 바쳤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다음에 하나님의 눈에 이 희생들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성전의 찢어진 휘장은 그러한 희생의 종료를 알렸다(참조 마 27:51;막 15:38;눅 23:45). 이것이 재림교회의 표준적인 해석이며, 나는 이것 역시 정확하다고 믿는다. (327.1)
 제10-12행: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날개를 의지하여”라는 말은 “그 직후” 또는 “그 즉시 결과로”를 의미하는 숙어(熟語)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25절에서 가브리엘은 예루살렘이 재건축되고 유대인은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27절의 마지막 석 줄에서 가브리엘은 그곳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즉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황폐를 일으킨 사람, 즉 그 성읍을 황폐하게 만든 사람은 물론 로마의 황제와 그의 군대였다. (327.2)
 슬프게도, 유대인의 회복에 대한 희망적인 예언으로 시작했던 것이 그들의 마지막 반역과 멸망으로 끝났으며, 그 후에는 더 이상 회복이 없을 것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생각에 고착되어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도 자신이 하나님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327.3)